임금체불 7일 차
회사 규모에 따라 임금체불이 시작됨과 동시에 찾아오는 반응들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2화에서 언급한 오 씨가 경험한 세 회사의 경우, 규모는 달랐지만 임금체불의 시작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오 씨의 마음만 달랐을 뿐이었다.
월말, 월급이 들어와야 하는데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대표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곧바로 물어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팀원들은 웅성 웅성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평소 HR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런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오 씨는 이야기했다. 오 씨는 처음 회사에서 월급이 안 들어왔을 때 HR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고 했다.
월급이 안 들어왔는데 혹시 어떤 상황인가요?
스타트업의 경우 클라이언트에게서 돈이 바로 들어오지 않거나 투자금 입금이 지연될 수 있다. 오 씨의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대부분 내일 자정 전까지 또는 다음 주 전까지 월급을 지급해 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이때 임금체불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뭐 그럴 수도 있지, 월세 내는 것도 가끔 하루 깜빡할 수 있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주황불이 들어온 것으로 봐야 한다. 근로자와 회사의 관계에서 월급을 제날짜에 주는 것은 법적으로 명시된 의무인데, 사전 안내 없이 늦어졌다는 건 정말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하루라도 월급이 밀리면, 그것이 바로 임금체불이다.
오 씨는 과거를 회상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가장 기가 찬 에피소드 하나를 공유해 주었다.
임금체불을 경험하고 이직한 B회사에서 입사한 지 반년 정도 뒤, 월급이 하루 이틀씩 밀려서 들어왔다고 했다. B회사는 이 회사가 처음인 주니어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해당 직원들에게 물어봤더니 직원들은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오 씨는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런 게 정말 위험한 신호라고 이야기했다.
첫 회사다 보니 비교할 곳이 없고, 그런 대우가 당연한 줄 알았던 것이었고, 처음 대표에게 물어봤을 때도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월급이 늦은 이유를 HR을 통해서 들은 바로는, 대표가 직원들의 월급을 최대한 늦게 줘서 파킹통장에서 이자를 받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 씨는 기가 찼다고 했다. 그 후로 HR과 함께 당일 오전 중으로 월급을 입금해 달라고 거의 3개월 동안 이야기하고 나서야 겨우 제때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B회사에서 제때(당일 오전) 월급을 받기 시작한 지 약 3개월 정도 지난 뒤, 오 씨는 B회사에서 임금체불을 약 두 달 정도 경험했다고 한다.
하루 이틀, 혹은 주말이 껴서 사흘 정도 체불이 일어난 후 운이 좋으면 그 뒤에 돈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때 대부분 '그냥 이번만 그렇겠지'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투덜대며 회사가 왜 이 모양이냐고 하지만, 그것도 일에 치여 잊고 지나가게 된다고 한다. 오 씨는 그러다 직원들은 다음 월급날이 오면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게 된다고 했다.
사실 이 모든 게 실수로 일어나는 일이라면, 모든 상황에 대해 미리 또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제대로 된 설명이 있어야 하지만, 작은 스타트업, 그리고 자금난에 시달리는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그러기가 참 쉽지 않다.
오 씨는 이 과정에서 회사가 향후 벌어질 임금체불에 대한 대응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향후에도 임금체불로 진행될 때 불신의 순간만 가득할 것이라며, 최대한 빠르게 퇴사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임금체불이 발생한 경우(이후 돈이 들어온 상황이라도), 이를 주황불로 인식하고 HR이나 리더에게 번레이트나 런웨이가 얼마나 되는지, 자금 상황이 어떤지 조심스럽게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오 씨의 말에 따르면, 임금체불 발생 후 돈이 아예 안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1회 정도는 어찌저찌 시간은 늦지만 돈이 들어오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그런 위험한 시그널에 노출되지만 점점 익숙해지거나 둔감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우리 회사는 그렇지 않을 거야.'
이런 기대를 품게 된다고 오 씨는 설명했다. 퇴사나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현 상황을 부정하거나 합리화하려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오 씨의 말을 들으면서, 사람은 누구나 불안한 현실보다는 희망적인 가능성에 기대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씨의 경험으로는 임금체불이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위험한 사인이지만, 그걸로 누군가가 액션을 취하는 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부분은 최소 두 번 이상의 임금체불을 경험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액션을 취하게 된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 임금체불이 발생하는 전후로 어떤 과정을 통해 회사가 직원들과 소통하려 하는지, 이런 것들이 이후 상황을 돌파하는 데 중요하게 봐야 할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오 씨는 말했다. "임금체불이 시작되면, 그게 끝이 아니에요. 시작이죠."
다음 화에서는 임금체불이 본격화되면서 회사와 직원들 사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오 씨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이 세상의 임금체불로 고통받고 있거나 받았던 모든 분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