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오 씨와 정기적인 커피챗을 진행하기로 한 첫 번째 날.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인터뷰 형식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그냥 수다처럼 이야기를 이끌어야 할까? 다양한 유튜브 채널의 인터뷰와 임금체불 관련 변호사, 노무사들의 영상을 보면서 개괄적인 포인트를 정리했다.
온라인으로 만나기로 한 오늘, 오 씨가 들어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오 씨는 제시간에 딱 맞춰 들어왔다.
가볍게 안부인사를 나누고 한 주 동안 잘 지냈냐고 물었을 때, 오 씨는 일상 이야기보다는 이 온라인 커피챗에 대한 소감을 먼저 털어놓았다. 한 주 간 이 시간을 기다리며 설레기도 하고 겁나기도 하고,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많은 시간을 걱정하며 보냈다고 했다.
글을 쓰기 위해 녹음보다는 그 온도와 미묘한 표정까지 잘 기록하고 싶어서 미팅 녹화에 대해 물어보았다.
오 씨는 이 말을 듣자마자 약간 얼굴이 경직되며 몸이 굳는 게 느껴졌다.
나는 오씨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저는 인터뷰를 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그냥 오 씨를 더 자세히 알아가고 싶었고, 짧은 온라인 커피챗을 통해 들려준 이야기가 너무 몰입도 있었어서요. 오 씨의 마음, 이런 임금체불 관련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 동조하며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임금체불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신 오 씨가 다닌 회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일을 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어떤 제품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오 씨가 다닌 스타트업은 여러 곳이었지만, 가장 핵심적으로 등장할 세 회사에 대해서만 설명하려 한다.
직접적인 이름을 밝히기는 어려워, 꼭 필요한 정보들만 포함하기로 했다.
오 씨의 임금체불은 세 곳에서 일어났다.
A회사: 공학 박사 출신 CEO, 글로벌 스타트업, 약 60명 규모에서 Team Lead
B회사: 부유한 비공학자 석사 출신 CEO, 약 10명 규모에서 CTO
C회사: 비공학자 학사 및 온라인 MBA, 군인 출신 CEO, 약 30명 규모에서 CTO
위 정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A, B, C만 보면 어떤 회사에 가고 싶은가? 너무 편향적인 정보를 노출했기 때문에 '이 회사가 그나마 나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들 것이고, '이 회사에서 임금체불이 일어났다고?' 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내부를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외형만으로 이런 회사에서 임금체불이 일어날 거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나 또한 그랬다. 오 씨가 내부 사정을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해 줘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외형적으로 채용 공고나 기사만 보고는 이 회사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을 거 같았다.
세부적으로 회사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오 씨가 설명해 준 세 곳 회사의 임금체불 전조증상을 정리해 보았다. 이렇게 공유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 회사마다 상황과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어떤 힌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글에 담기로 했다.
1. 정리해고가 일어나거나 리더급의 자발적 이직이 발생한다
2. 회사 복지가 하나둘씩 사라진다
개인 법인카드 사용 금지
점심 식대를 지출결의서로 정산받기
간식 구비 금액대가 줄어드는 상황
강의나 교육 지원에 대한 검토가 까다로워짐
3.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게 한 번에 일어나면 누구나 회사가 힘들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오 씨의 말을 빌리면, '이 모든 건 한 번에 오지 않는다. 순서도 다르고, 제가 설명하지 않은 다른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미묘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냥 회사가 힘든가 보다. 다른 회사들도 힘들다고 하던데 뭐...'
어떻게 보면 회사가 힘들어서 지출이나 운영비를 아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거기서 임금체불로까지 이어지는 것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회사마다 힘든 순간은 있을 것이다. 임금체불로 가느냐, 아니면 위기를 기회로 극복해서 나아가느냐 하는 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대표에게도 처음일 수 있다. 임금체불 상황은 보통의 대표라면 처음 겪는 일이라 대응이 매우 어설플 수 있다. 큰 회사에서 스타트업으로 넘어온 HR이나 경영지원팀도 이런 경우를 많이 맞이하지 않아서 대응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 B, C 회사는 직접적인 임금체불이 있기 전까지 각각 다른 스타일을 보였다.
A회사의 경우, 임금의 약 20%를 줄여서 약 3개월간 지급하겠다는 서명과 점심 식대를 지원하지 못한다는 동의서를 받았다고 한다. 서명하지 않아도 그렇게 반영될 거라는 설명과 함께 모든 게 진행됐다. 너무 갑작스럽게 흘러갔지만, 대표가 3개월 내에 많은 것들을 해결하고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모두가 함께 긴축재정을 하자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B회사의 경우, 원래도 월급을 조금씩(1-2일) 늦게 줬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조금 늦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기간이 점점 길어짐을 느꼈다. 그 이유를 물어봤을 때 재정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은행 문제나 매출 수금이 지연된다는 등 외부 핑계를 대서 '이번만 잠깐 그런 거겠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C회사의 경우, 제때제때 돈이 들어오다가 갑자기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해당 대표도 클라이언트에서 돈을 안 준다거나 투자사들이 입금을 늦게 한다는 이유로 며칠 임금이 밀렸다고 했다.
미세하게 상황이 다르지만, 초기 체불이 발생했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지 않으면, 오 씨의 설명에 따르면 돌이킬 수 없이 상황이 빠르게 돌아가서 선택지가 점점 없어지고 심리적으로 쫓기고 불안한 상황이 온다고 했다.
이 자세한 이야기는 이후 글에서 풀어나가고자 한다.
온라인으로 나눈 이야기 끝자락에 나는 물어봤다.
"'임금체불의 전조증상'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하세요?"
오 씨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잘 모르겠다고 했다.
오 씨조차도 다시 그 상황에 간다고 했을 때,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알 수가 없을 것이고, 리더급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 정보를 알아차릴 수 있는 시간은 늦어질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상황과 맥락을 조금 더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임의로 정리해 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오 씨가 설명해 준 여러 회사에서 체불이 벌어졌을 때 분위기 변화나 직원들의 변화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이 세상의 임금체불로 고통받고 있거나 받았던 모든 분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