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3개월 차

결과론적인 말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by 오유나

오 씨와의 다섯 번째 온라인 커피챗.

화면 속 오 씨의 표정은 유난히 단단해 보였다. 마치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오늘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3개월, 그리고 남은 사람들

오 씨는 세 회사 중 두 곳에서 3개월 이상을 버텼다고 했다.

맨 처음 임금체불을 당한 C회사에서는 무려 6개월을 버텼다. 그 시간 동안 오 씨는 팀을 지키기 위해,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그곳에 남아 있었다.

협력 업체 친한 이 과장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우리 회사가 임금체불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앞에서는 모른 척하면서, 본인 프로젝트 마무리하려고 우리한테 더 많은 걸 요구했죠. 더 빨리, 더 완벽하게.


오 씨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다른 협력 업체는 또 달랐어요. 대표랑 연락이 잘 안 되고 분위기가 안 좋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코드 오픈 관련 계약서를 재검토하겠다고 했죠. 자기들 안전부터 챙긴 거예요.

회사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하나둘씩 퇴사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C회사는 다른 곳에 비해 퇴사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주니어들이 많았던 것도 있지만, 오 씨가 그 내부에서 주축을 잘 잡아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이유들

"사람들이 왜 떠나지 않냐고 물어요.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왜 나는 거기 있었을까."

오 씨는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사람은 2년 이상 다녔는데 제대로 된 아웃풋이 없는 상태로 퇴사하면 이직이 어려워서, 프로덕트를 마무리하기 위해 남았다.

어떤 사람은 서비스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서, 망하기 직전까지 최대한 버텨보려 했다.

어떤 사람은 동료들 때문에 떠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투자심리처럼, '곧 투자금이 들어온다면 내가 쏟은 시간과 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에 버텼다.

어떤 사람은 팀장으로서 남아있는 팀원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어떤 사람은 대표에 대한 신뢰 때문에.


그리고 어떤 사람은... 계속 실패하고 포기한 경험이 쌓여 있어서, 여기서 또 포기하면 내가 인내심 없이 그만두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남았어요.

오 씨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덧붙였다.

그게 저였어요.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오 씨는 결국 부모님께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런 상태가 될 때까지 왜 거기 있었어?"

걱정 어린 목소리였지만, 오 씨를 탓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한다. 그 말에 오 씨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임금체불이 그렇게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임금체불을 당하면서도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무도 헤아려주지 않았어요. 왜 눈뜨고 코 베이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었냐고만 물었죠."

나는 오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떠올렸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어떻게 그런 걸 당해?' '전화를 안 받으면 되지.'

하지만 막상 당하면? 가방끈 긴 사람들도 속는다. 그게 바로 사기의 본질이다.


"절대 당신을 탓하지 마세요"

오 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주변에 임금체불 당한 사람이 있으면, 절대 그 사람을 탓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잔소리는 그냥 멈춰두세요.


그는 이어서 말했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임금체불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그건 스스로 멍청한 일, 실수한 일을 타인이 질책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당신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꺼낸 얘기예요."


오 씨의 목소리가 더 강해졌다.

"그리고 임금체불을 당한 당사자라면, 더더욱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물론 반성할 부분이 있을 수 있어요. 다음번엔 안 그러면 돼요. 인생에서 큰 경험을 치른 거예요."


돈보다 중요한 것

"세상은 가혹해요. 교통사고처럼 생각지도 못하게 당하는 일들이 있어요."

오 씨는 말했다.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 게 가장 슬픈 일이에요. 돈은 좀 잃어도 괜찮아요. 나중에 민사나 형사 소송으로 어느 정도 돌려받을 수도 있어요. 그건 다음 인터뷰에서 자세히 이야기할게요."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이어갔다.

"하지만 꼭 당부하고 싶은 건, 절대 당신을 탓하지 말라는 거예요. 나중에 탓해도 되니까, 지금은 그냥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을지,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머리를 싸매보세요. 그리고 이후에 이 시간을 돌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모두가 상처받는다

오 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임금체불을 겪는 모든 사람은 정신적으로 고통받아요.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울고 있는 사람도. 무표정으로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모두 외상과 내상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를 보듬어줘야 해요."


온라인 커피챗이 끝나고, 나는 한참을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오 씨가 이 인터뷰를 시작한 이유를 이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던 거였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그 한마디를 듣지 못해, 혼자 무너졌던 과거의 자신에게.

그리고 지금 어딘가에서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다음 글에서는 오 씨가 법적 대응을 시작하며 겪었던 일들, 그리고 임금체불 상황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대처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이 세상의 임금체불로 고통받고 있거나 받았던 모든 분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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