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2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일
오 씨와의 여섯 번째 온라인 커피챗.
화면 너머로 보이는 오 씨의 표정에서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
분노도, 슬픔도 아닌, 오래 끓인 뒤에 남는 단단한 체념 같은 것. 끝을 정리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 회사(C회사)는… 6개월을 버텼어요. 그리고 결국 팀원들이랑 거의 동시에 나갔죠."
'동시에'라는 단어가 귀에 걸렸다. 누군가는 끝까지 남고, 누군가는 먼저 떠나고, 누군가는 남고 싶어도 남지 못하는 게 이런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오 씨의 이야기는 달랐다.
오 씨는 말했다. 그들은 어느 순간, 같이 남아 있는 것이 서로에게 독이 되는 구간에 들어섰다고. 더 버티는 순간, 피해가 개인이 아니라 팀 전체로 커진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차린 순간이었다고.
C회사의 대표는 마지막까지도 '큰돈'의 언어를 놓지 않았다.
"지금 투자가 어떻게 되고 있고요."
"대기업 통해서 얼마를 받을 거고요."
"법인 파산하면 저는 끝인데, 일부러 여러분들을 위해서 파산을 안 하고 있는 거예요."
오 씨는 그 말을 들으며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고 했다.
대표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처럼 말할수록, 그 말이 더 공허하게 들렸다고.
왜냐하면 그 책임이란 결국, 직원들의 월급이 아닌 대표의 서사로만 남는 책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표는 갑자기 자기 얘기로 넘어갔다고 한다.
카드가 막혀서 버스를 못 타고,
폰은 와이파이에서만 되고,
자신도 굶고 있고, 너무 힘들고...
그런 불쌍한 이야기들.
오 씨는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 사람도 힘든 건 맞죠. 근데... 그게 제 월급이 되진 않잖아요."
오 씨는 현실적으로 계산을 했다.
대표가 아무리 "곧 들어온다"를 말해도, 직원들이 결국 받게 될 돈은 순위와 비율로 결정되는 돈이었다.
"CTO든 주니어든, 결국은 다 같은 임금채권이에요. 각자 못 받은 돈에 비례해서 받는 거예요."
"체불이 6개월이면, 투자나 대기업에게 돈을 다 받는다고 회사가 나아질 리도 없고..."
"설령 돈이 조금 들어와도, 그게 직원들의 월급으로 잘 전달될지가 더 걱정됐어요."
현실적으로 계산한 돈은, 대표가 받을 거라고 한 돈을 다 받는다고 하더라도, 인당 50만 원에서 100만 원 정도였다.
C회사에는 오 씨 말고도 또 다른 시니어가 있었다고 한다. 그 시니어가 한 가지 정보를 꺼냈다.
"임금체불확인서를 미리 받아두면, 정부 대지급금을 더 빨리 받을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팀원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대표가 지금 "곧 나가야 한다"며 일부러 부산스럽게 했고, 우리는 다시는 대표 얼굴을 못 볼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대표에게 요구했다.
"이건 해주셔야 하는 일이에요."
"대표님, 언제 나가실지 모르니 지금 빨리 사인해 주세요."
그날은, 오 씨가 말하길 "이때 아니면 끝"인 날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그 타이밍에 서류를 잘 받아냈다.
서류를 챙긴 다음 날, 오 씨는 고용노동부로 향했다고 한다.
대지급금을 받기 위해 서류 신청을 했고, 오 씨와 팀원들은 한 날 한시에 모여서 사건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각자 체불 금액이 얼마죠?"
"소송할 건가요, 말 건가요?"
"형사처벌을 원하나요?"
그 자리에서 누군가는 말했다.
"전 처벌까진 원치 않아요. 돈만 빨리 받고 싶어요."
급한 사람들은 형사 소송을 걸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 마음이 너무 이해된다고 오 씨는 말했다. 당장 월세가 밀리고, 카드가 막히고, 생활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원칙은 사치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오 씨는 달랐다.
"저는 형사처벌을 원합니다."
그랬더니 석연찮은 표정으로, 담당자는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 대지급금을 못 받을 수도 있어요."
오 씨가 이전에 확인했을 때는 형사 소송을 해도 대지급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관련해서 물어보니, 그제야 노동부 쪽에서도 "늦게 받아지게 될 거고 그 기한은 언제라고 확답은 못 드려요"라는 식으로 끌고 갔다.
오 씨는 이 상황이 너무 괘씸해서 아무리 늦어도 형사소송은 절대 취하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대했다고 한다.
"누군가에겐 이게 진짜 생사 문제잖아요."
"대부분 사회 초년생이고, 사기당한 거나 다름없는 상태인데..."
"그런데 가이드는 너무 건조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졌어요."
그날 이후, 오 씨는 형사소송이라는 문을 열어버렸다.
그 문을 열 때 심장이 어떻게 뛰는지, 그는 아직도 기억한다고 했다.
그 사건은 2년이 넘도록 진행 중이라고 했다.
대표는 투자사, 개인 채권자 등 여러 소송에 얽혀 있었고, 항소와 상고 같은 단어들이 현실이 됐다.
중간중간, 연락이 왔다.
"얼마를 주면 취하해 줄 건가요?"
"처벌을 원하는지 다시 확인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대표에게서 협박처럼 느껴지는 메일도 왔다고 했다.
아래 메일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저는 전달받고 읽으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왜 저런 걸 보내는 지도 전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오ㅇㅇ님.
법원의 요청에 따라 오ㅇㅇ님이 수령한 발주처 용역비의 정확한 금액을 확인하고자 연락드립니다.
수령하신 금액과 입금 내역(증빙)을 제공해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기한: 특정 일자 오전)
본 요청은 귀하에게 금전적 손해를 발생시키는 목적이 아니며,
법원이 미지급된 급여 총액을 산정하기 위한 절차임을 안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C사 드림
안녕하세요, 오ㅇㅇ님.
이전 요청에 대한 회신이 없어 안내드립니다.
회신이 없을 경우, 법원에서 사실확인명령 등 법적 절차를 통해 금액을 확인하게 될 예정입니다.
수령 금액에 대한 입금증 또는 확인서 제공을 다시 한번 요청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현재까지 발주처로부터 직접 수령한 금액이 없기 때문에,
요청하신 내용에 대한 회신이 어렵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발주처 측에서는 오ㅇㅇ님의 요청으로 약 수천만 원 상당의 금액을 오ㅇㅇ님에게 직접 송금하였고,
잔여 금액만 C사에 지급하였다고 안내해 왔습니다.
해당 사실이 실제로 없었는지 여부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안내 주신 내용과 관련하여, 발주처로부터 직접 입금받은 사실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확인 감사드립니다.
미지급된 금액에 대해서는 당사에서 지급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오ㅇㅇ님.
발주처 측이 당사에 안내한 내용과 귀하의 회신 내용이 서로 상이하여, 아래와 같은 사실관계를 그대로 법원에 보고할 예정입니다.
이후의 판단은 검찰 및 법원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판단됩니다.
오ㅇㅇ는 발주처 1 및 발주처 2에 대하여 용역대금 지급과 관련하여 공탁, 임금채권, 기타 민사 또는 형사상의 방법으로 요청하거나 신청한 사실이 없습니다.
오ㅇㅇ는 발주처 1 및 발주처 2로부터 당사 용역에 대한 금원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급받은 사실이 없으며, 지급을 약속받거나, 지급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안내를 받거나 의사소통한 사실 또한 없습니다.
오ㅇㅇ는 발주처 1 및 발주처 2로부터 당사 용역대금을 수령하기 위하여 본인 또는 대리인을 통하여 공탁, 임금채권 회수, 기타 민사 또는 형사상의 방법으로 요청 중이거나, 절차를 진행 중이거나, 신청 중인 사실이 없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대표가 연락할 때마다 손발이 벌벌 떨렸어요."
오 씨는 대표 뒤에 누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대형 변호사의 지시로 연락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정작 오 씨가 선임한 건 거대한 로펌이 아니라, 소액 사건을 맡는 변호사였고, 모든 대응이 즉각적일 수는 없었다.
위 메일은 형사 소송에서 감형을 받기 위해 증거자료로 만든 거라는 걸 오 씨는 변호사를 통해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전달받았다고 한다.
"나한테는 돈도 없는데, 변호사 비용을 또 내야 한다는 것." 이게 참 임금체불자로서 힘든 지점이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팀원들의 선택도 갈라졌다.
어떤 사람은 돈이 급해서 합의하고 취하했다.
어떤 사람은 변호사를 따로 선임하지 않고, 통장 가압류를 걸었다.
어떤 사람은 회사 정보를 몰라서 가압류를 못 걸었다.
오 씨는 여기서 '진짜 팁'을 말했다. 그의 말투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단단하게 굳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럴 때는요. 회사 정보를 빨리 확보해야 해요.
법인 등기부등본, 회사 통장, 월급 들어오는 통장, 과제비... 돈이 흐르는 길을 최대한 빨리요.
그리고 가압류를 걸어야 해요.
그 과정에서 오 씨는 체불금의 약 3분의 1을 회수했다고 했다. 그는 덧붙였다.
"인건비는 0순위 채권이라... 결국 신고한 사람들 체불액 비율대로 나눠요. 그러니까 더더욱, 정보와 타이밍이 중요해요."
오 씨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무서워요."
"심장이 벌렁벌렁해요."
"아직도 긴장돼요."
그는 길을 걷다가 대표를 마주칠까 봐 겁이 났다고 했다.
형사 소송 취하를 위해 폭력적인 장면이 벌어질까 봐..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길에서 깍두기 머리를 보면 흠칫 놀라게 됐다고 한다.
아무 상관도 없는데,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임금체불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람의 신경계를 망가뜨리는 일이구나.
오 씨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살면서 누구를 소송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근데 벌어지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그래서 그는 '추천'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싸한 느낌이 들면 자료부터 모아두기
회사 정보(등기부, 통장 흐름, 과제비 등) 캡처하고 확보하기
가능하다면 가압류를 빠르게!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빨리 나오는 게 제일 중요해요."
오 씨는 스스로를 "소액 사기나 보이스피싱 피해자랑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단호하게도 말했다.
"그건 멍청해서 당한 게 아니에요."
"사기는... 누군가 마음먹고 달려들면 당하게 돼요."
"요즘 경제 더 안 좋아졌잖아요."
"AI 때문에 정리해고도 많아지고..."
"투자 지연 때문에 월급이 밀리는 이야기, 이제 남의 얘기 같지 않을 거예요."
돈을 못 받게 되는 상황이 되면, 돈을 빌려준 사람만, 돈을 떼인 사람만 더 초조해진다.
그 초조함은 불안이 되고, 불안은 몸을 망가뜨린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에요."
오 씨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이, 이 시리즈의 모든 문장 위에 얹히는 제목 같다고 느꼈다.
다음 글에서는, 오 씨가 다른 회사에서 겪은 체불 사건을 어떻게 '다르게' 정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초기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려고 한다.
그가 말한 것처럼, 가장 중요한 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니까.
*이 세상의 임금체불로 고통받고 있거나 받았던 모든 분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