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만났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조금 전 화장실로 내려간 동료였다.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반장님! 화, 화장실에 고양이가 있어요!!"
동료의 떨리는 목소리에 순간 흠칫 놀랐다. 하지만 침착하게 답했다.
"알았어. 금방 갈게. 놀라지 말고 거기 있어."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도착하니 동료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변기에 앉았다가 뭔가 낌새가 이상해 돌아봤더니, 변기 뒤에 고양이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놀랐을까. 조심스럽게 변기 뒤를 살폈다.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몸을 둥글게 웅크리고 있었다. 눈빛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고,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쥐도 도망갈 구멍을 찾는다는데, 이 작은 화장실에는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 고양이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어느새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눈이 자신을 향하자 고양이는 더 겁을 먹은 듯했다. 그때, 동료 중 한 명이 나섰다. 평소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였다.
"반장님, 이 고양이 야생이에요. 갑자기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다들 물러나 주세요. 문을 열어두면 제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잡아볼게요."
사람들이 한 걸음씩 물러섰다. 그러자 고양이는 갑자기 벽을 타고 순식간에 문 위로 뛰어올랐다. 모두들 놀라 어버버 하는 사이, 냥이 집사는 침착하게 손을 뻗어 고양이를 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회사 밖으로 데려가 풀어주었다. 고양이는 번개처럼 뒷산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낯선 고양이 해프닝은 10분 만에 끝났다.
"어떻게 여기로 들어왔을까? "
"그래도 다치지않고 돌아가서 다행이다."
"얼마나 놀랐을까?" 모두들 고양이 걱정을 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작업장 라인을 돌리고, 샐러드 랩을 말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작업을 이어갔다. 여전히
"그건 아니지!!" 바로잡는 소리가 들리고 칙폭칙폭 기차소리같은 포장기 소리가 들린다. 원재료가 부족하다고 몇 시까지 도착이냐고 고함치는 전화 소리가 들리고, 작업 지시서의 수량이 이상하다고 묻는 조장님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술이 덜 깨서 헛소리를 하는 동료의 애교 섞인 목소리도 들리고, 조용히 다가와 "예상보다 부자재가 적게 왔어요."걱정하는 책임감 강한 동료의 목소리도 들린다. 정말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평온하게 제 할 일을 해내고 있다. 어느새 모두들 절망하던 고양이는 잊은듯하다. 나는 아직 불안과 공포에 질린 고양이의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문득 저 고양이처럼 도망칠 곳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사람이 진짜 바닥을 보이는 순간은 끝까지 몰렸을 때라고 한다. 내 인생에서 그런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부도로 인해 세 아이와 함께 순식간에 길거리에 내몰렸을 때, 어린 자식들을 돌보면서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시누이까지 보살펴야 했을 때, 그때가 나의 절망의 순간이었을까.
어머니들은 흔히 자신의 일생을 소설책 열 권으로도 담아낼 수 없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이제 돌아보니, 나 역시 한 권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숨 막히는 순간이 닥쳤을 때도 나는 그저 묵묵히 견뎠던 것 같다. 죽겠다고 소리치지도 않았고, 살겠다고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며 초조한 마음을 감추려 애썼을 뿐이다.
젊었을 때는 절망조차도 내 몫이라 여기며 묵묵히 감내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였을까. 가장 힘든 순간에도 손에 쥔 설거지 스펀지를 놓지 않았고, 아무 일 없는 듯 출근 카드를 찍었다. 그렇게 나는 절망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내가 진정한 부모의 정신, 그리고 직장인의 책임감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만약 절대절명의 10분이 주어진다면? 그 순간 나는 어떻게 할까.
아마도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필 것이다. 그 10분이 공포와 혼란의 시간일지라도, 나는 그 안에서 해야 할 일을 찾을 것이다. 해결할 방법을 궁리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움직일 것이다. 예전처럼 설거지를 계속하듯, 출근 카드를 찍듯,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쓸 것이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개척자도 아닌 나는 순응하며 적응하는 인간일 뿐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아마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극한의 10분 앞에서도 무너지고 싶지 않다. 고양이가 순간의 위험에 온몸을 긴장시켜 대응하듯, 나도 마지막 10분을 담담하게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아, 어떻게든 잘 되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있을 것이다. 기다리고 견디면 항상 좋은 결말이 있었으니까.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서 막다른 곳에 몰렸던 고양이. 야옹아, 너는 너의 10분에 최선을 다 했다. 잘 살아라. 행복해라. 저절로 기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