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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는살림 Mar 08. 2022

집 정리를 했는데, 하지 않았습니다.

깔끔한 상태를 좀 더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정리를 빨리 마치고 싶다면?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 집을 둘러봅니다. 갈아입은 옷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식탁에는 컵이 서너 개 올려져 있습니다. 침대 위 이불은 누가 어디서 잤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뭉쳐져 있고 주방 상판에는 조리기구와 그릇들이 불규칙적으로 올려져 있습니다.




 불과 며칠 전,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고 아이들 방, 거실, 안방, 부엌, 베란다까지 쓸고 닦고 물건들을 정리했어요. 사진을 찍어봐도 눈에 거슬리는 곳 없이 깔끔했죠. 하지만 식사를 한 번 하고 나서, 첫째 아이가 숙제를 한 번 하고 나서, 둘째 아이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놀이를 하고 나서 조금씩 물건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하루 이틀이 지난 뒤, 대청소를 하기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가구 위에 먼지는 없었지요.


 큰 힘을 들여서 단정하게 정리를 하고 청소를 했는데 금방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보니 허무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정리된 상태를 유지하겠다고 가족들이 집에서 먹고 노는 것을 못하게 할 수도 없으니, 편하게 생활하면서 정돈된 상태를 비교적 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시작했어요. 왜 이렇게 금방 흐트러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어렴풋이 그 답을 알 것 같더라고요.



우리 집에 이런 물건이 있었다고?

 정리를 해야 할 때 물건의 종류나 개수가 많으면 그만큼 그것들을 관리해야 할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꼭 필요하고 자주 사용하고, 나중에라도 써야 하는 것이라면 시간을 들여서 관리를 해야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실제로 제가 정리를 해보니 유통기한이 지난 약, 사이즈가 작아서 입지 못하는 옷, 취향이 아니라 몇 년째 입지 않은 곳,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 안 쓴 지 오래된 가전제품 등등 쓰레기부터 쓸모를 다한 물건까지 의미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것들이 공간을 차지해서 정작 자주 사용하는 것들이 제자리를 못 찾고 있었던 것이죠. 내 에너지와 공간을 차지하는 쓸모없는 물건들을 비우기 시작하자 '빈 공간'이 생기기 시작하고 물건 정리가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이걸.. 어디에 놔두지?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핸드크림, 장난감 농구공, 인형, 노트 등등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영양제, 빈 컵, 냄비받침

 부엌 상판에 올려져 있는 냄비 뚜껑, 프라이팬, 먹고 난 영양제 봉투, 새 쓰레기봉투.


정리를 하려고 하면 보이는 것들입니다. 사람 사는 곳이니 어질러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문제는 그다음부터!

거실부터 정리를 시작할게요. 핸드크림은 안방 화장대에. 장난감 농구공은 아이들 장난감 두는 박스에, 인형은 둘째 침대 위에, 노트는 책꽂이에.

식탁 위 영양제는 정수기 옆에, 빈 컵은 개수대에, 냄비받침은 주방 고리에.

부엌 상판에 있는 냄비 뚜껑과 프라이팬은 하부장에, 먹고 난 영양제 봉투는 쓰레기통에, 새 쓰레기봉투는 서랍 안에.


뭔가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물건들을 각각 어디에 둬야 하는지 장소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물건들의 제자리가 각각 있다면 정리를 해야겠다 마음먹었을 때, 시간만 있다면 금방 정리가 가능해져요. 만약에 이런 제자리가 없다면 '이걸 어디에 둬야 하지. 여기? 저기? 에라 모르겠다 일단(!) 책상 위에 올려두자.' 이러면 책장 위, 식탁 위, 책상 위가 갈 곳 없는 물건들로 가득 차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는걸...

네, 남의 일처럼 적어놨지만 제가 한 일입니다. 당장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책상 위에 툭 올려놓고, 책장 위에 살포시 올려놓고 그렇게 물건이 쌓여서 날 잡아서 대청소를 하고... 를 반복.


제발 다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놔!! 두 번 일하게 하지 말고.


 친정엄마가 매번 하시는 말씀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습관이 없었던 저는, 정리를 해도 금방 어질러지는 것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죠. 평생이 가도 고칠 수 없을 것 같은 '두 번 일하는' 제 행동은 제가 직접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해보니 완치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증상 완화가 되어서 물건들에게 각각 제자리를 정해두고, 사용하고 나면 그 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100이면 80 정도는 실천하는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역시 저는 직접 겪어봐야 아는 피곤한 타입..^^:)


 무심코 한 행동이 어질러진 집에 한몫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나서부터 집을 깔끔하게 만드는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려고 노력 중이에요. 쓰고 난 뒤 물건은 제자리에 둔다든가, 눈에 보이면 바로 잡아서 쓰레기통이든 원래 자리든 가져다 놓는다든가 말이죠.


사실 살다 보면 집이 항상 깨끗할 수는 없어요. 집은 편한 공간이어야지 조금만 흐트러지면 스트레스받는 그런 공간이 되면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흐트러지는 시간을 조금은 늦추고, 어질러진 집을 정돈되고 깔끔한 상태로 만드는 데에 힘이 들지 않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 오늘도 애쓰는 중입니다.


일단,

이 글을 쓰면서 물 마신다고 옆에 뒀던 컵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노트북도 정리해서 안방 책상 노트북 자리에 가져다 놔야겠어요.




이전 03화 접영을 하려면 일단 발차기부터 시작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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