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하원 하기 전, 모든 시간을 냉장고와 옷장 정리를 하는데 다 썼습니다. 줄 세워진 반찬통과 보기 좋게 정리된 옷들을 보니 '내가 이렇게 정리했다고?!' 하는 마음에 뿌듯하더라고요. 정리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렸고 어쩜 이렇게 정리를 잘하냐는 칭찬 댓글이 줄줄이 달렸습니다.
"후... 이게 뭐야. 집 정리 좀 하자"
"이게 정리한 거라고? 아직 멀었는데?"
바닥에 있는 물건을 발로 툭툭 치면서 '정리가 안된 집' 이것만 해결되면 자기는 바라는 게 없다던 남편에게 이제 큰소리 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퇴근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 '삑삑 삑삑' 현관문이 열리고 지친 표정의 남편이 들어왔어요. 손을 씻고 냉장고 문을 열어 맥주 하나를 꺼내 마십니다. 맥주를 다 마신 뒤 방에 들어가 속옷과 잠옷을 꺼내 샤워를 하러 들어갔습니다.
'어? 왜 아무 말도 없지? 샤워하고 나오면 냉장고랑 옷장 정리했다고 내가 말해야겠다.'
"여보~! 우리 집에서 뭐 달라진 거 없어? 나 오늘 애들 오기 전에 하루 종일 정리했어!"
"(집을 쭈욱 둘러보더니) 뭐가 달라졌는데. 평소랑 똑같이 어지러운데?"
그러더니 한숨을 푸욱 쉬며 거실에 있는 아이들 장난감을 하나씩 줍기 시작합니다.
기분이 좀 이상했어요. 맥주 꺼낼 때 냉장고를 안 봤나? 잠옷을 꺼낼 때 옷장을 안 봤나? 정확히 어딜 정리했는지 얘기를 안 하긴 했지만, 그걸 먼저 알아차리지 않은 남편에게 서운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집 전체를 둘러봤습니다.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컵, 거실 바닥에 나뒹구는 레고 조각, 의자에 걸쳐져 있는 옷, 침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양말들을 보니 하루 종일 정리를 했지만 정리를 안 했더라고요.
서랍 속, 옷장 속을 정리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려면 문을 열거나 서랍을 열어서 들여다봐야 합니다. 하지만 보통 정리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열지는 않죠. 필요한 것을 꺼내고 바로 문을 닫아버립니다. 쉽게 찾아서 좋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정리를 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구나'하는 생각까지는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적어도 저희 남편은요.
반면 거실, 식탁, 발길이 닿는 바닥은 서있기만 해도 눈에 보이는 곳입니다. 보자마자 곧바로 '어지럽다', '깔끔하다'를 판단할 수 있죠. 정리를 해도 한 것 같지 않은 이유는 보이지 않는 곳을 정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죠. 남편 입에서 '집이 왜 이렇게 깔끔해 보이지?'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라도 '티 나는 정리'를 해야겠다고 말이죠.
'티 나는 정리'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정리했구나!'라고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정리하는 것이라고 저만의 정의를 내렸어요. 그리고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게 정리하기 위한 두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바닥에 물건을 두지 않는다.
둘째, 선반 위, 가구 위에는 되도록이면 물건을 두지 않는다.
발에 걸리는 것이 없고 서 있었을 때 혹은 앉아있었을 때 시선이 닿는 부분에 물건이 없으면 없을수록 훨씬 정돈되어 보여요. 그리고 청소도 훨씬 간편해진답니다. 인테리어를 위해 액자나 오브제 등 소품을 올려둘 수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세요. '이게 정말 여기 있어야만 하는가?' 곧바로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다른 곳으로 옮기든지 비우시기를 조심스럽게 권해드려요.
본격적으로 집 안의 공간별로 같은 시간을 투자해도 훨씬 정돈되어 보이게 하는 저의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앞서 말씀드린 것 중에 힌트가 있어요. 바로 '문을 열고'. 우리가 집에 들어왔을 때 혹은 방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곳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자세히 풀어볼게요.
1. 집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 현관
바깥에서 집으로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공간이 어딘가요? 현관이죠.
지금 여러분 댁의 현관 바닥은 어떤가요? 신발 여러 개가 막 뒤죽박죽 어질러져 있나요, 줄지어서 가지런히 놓아져 있나요? 미쳐 뜯지 못한 택배 상자가 쌓여있지는 않나요? 이곳만 정리가 잘 되어있어도 일단 집에 들어오자마자 상쾌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도 좋지만 신발장에 넣어서 보관해보세요. 현관이 훨씬 넓어 보이고 발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서 깔끔해 보일 거예요. 저 같은 경우엔 신발장 안에, 신었던 신발을 보관하는 자리가 있어서 집에 오자마자 신발을 그곳에 넣어 보관합니다. 우리 집은 아니지만 신발장 아래를 띄워놓은 곳도 있어요. 그 아래에 신발을 두면 겉에서는 안 보이지만 신발을 넣고 빼기에 편해지죠. 신발장에 수납할 공간이 없으시다면 최대한 가지런히 정리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런데 가만히 신발장을 살펴보세요. 안 신는 신발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그 신발들을 비우면 신발장이 아주 좁지 않은 이상 신었던 신발을 넣을만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2. 집에서 비교적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거실
방문을 닫는 것도 좋은 방법....^^
집 구조에 따라 다르겠지만 신발을 벗고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 눈에 보이는 곳이 거실이에요. 방으로 곧장 가더라도 거실을 한번 쭉 훑어보게 되죠. 물건들이 바닥에 질서 없이 어질러져 있지는 않나요? 소파 위 담요나 쿠션이 널브러져 있지는 않은지, 거실 장 위에 툭 올려져 있는 낯선 물건들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세요. 그리고 그 물건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두는 겁니다.
바닥에 있는 물건들이 너무 많을 때에는(특히 아이들 있는 집인 경우 장난감들) 하나하나 주으러 다니기 귀찮으니 밀대 걸레를 꺼내서 쭈욱 밀어 한 곳으로 모아 정리해보세요. 시간이 훨씬 단축될 거예요.
만약 물건들 하나하나 당장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시겠다면 일단 빈 상자 하나에 몽땅 넣어두세요. 그리고 시간 여유가 될 때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을 있어야 할 곳에 두는 거죠. 그냥 넣어두기만 하시면 안 됩니다! 꼭 상자 안 물건들을 제자리에 두는 시간을 가지셔야 해요. 안 그러면 이런 상자들이 하나둘씩 쌓여서 또 집 안을 어지럽힐 거예요. 만약 몇 주간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과감하게 그 안에 잇는 물건들을 비우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필요하지 않아 찾지 않았다는 것이니까요.
3. 방문을 열면 가장 눈에 띄는 곳. 침대.
서재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방에 침대가 있을 거예요. 침대는 방에서도 공간을 꽤 많이 차지하는 가구라 침구 정리만 잘 되어 있어도 전체적으로 깔끔해 보일 겁니다. 이불을 가지런히 개어놓을 수 있고 반듯하게 펼쳐놓을 수 있는데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일어나서 침구를 정리해두는 습관을 만드신다면 큰 힘 들이지 않고도 침대 위를 정돈할 수 있을 거예요.
침구 정리가 끝났다면 방을 한번 둘러보세요. 정리가 된 것 같은데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어 보세요. 그냥 눈으로 휘익 둘러볼 때와 사진으로 보이는 방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질 거예요. 만약 사진 속 방을 봤을 때 깔끔해 보인다면 정리 끝. 그런데 사진으로 봤을 때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면 그곳을 치우면 됩니다.
4. 시선이 머무는 곳. 테이블 위, 식탁 위, 싱크대 위
물건들이 밖에 많이 나와있으면 각 맞춰서, 통일된 용기에 정리하지 않는 이상 어질러져 보입니다. 최대한 밖에 꺼내놓는 물건이 없게 만들어서 시선이 닿는 곳에 물건을 두지 않으면 '아, 여기 참 깔끔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요. 특히 이것저것 올려놓기 만만한 식탁. 어디에 둘지 순간 떠오르지 않는 물건들을 식탁에 올려두거나, 잠깐 내려놓을 곳이 필요할 때 무신경하게 식탁에 툭툭 올려놓곤 하는데요, 식탁 위를 비워야겠다 의식하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주방이 훨씬 깔끔해 보이는 효과가 납니다. 식사를 차릴 때 식탁 위를 비워야 하는 과정 하나가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번거로움이 줄어들 것이고요.
위에서 말한 방식대로 보이는 곳을 신경 써서 정리한 뒤로 일단 제가 집에 들어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항상 집 정리에 대해 불만이었던 남편 입에서 '어! 오늘 집이 왜 이렇게 깔끔하지?'라는 말을 듣는데도 성공했고요. 아이들은 집에 오자마자 '엄마~ 집이 정말 깔끔해졌어요'하면서 좋아해요. 비록 금방 어지르긴 하지만요.
갑자기 손님이 오신다든가 시어머니가 방문하신다든가, 저희 남편처럼 집이 항상 깔끔하길 바라신다면 단시간에 효율적으로 제가 알려드린 방법으로 정리해보세요. 물론 시간적 여유가 있으실 때 안 보이는 곳도 구석구석 정리하는 것,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