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리 프로젝트; 어지러운 집을 정리하기 위해 서랍부터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살기 싫다
최소한으로 해야 할 것만 하면서 무기력하게 살던 그때,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세상을 보는 데 사용하며 저를 갉아먹기만 했습니다. 제 삶에 만족이 없으니 그 해결되지 못한 감정에 대한 ‘화’는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갔죠.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아이들에게 ‘괴물’이 되어있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다가 문득 제 머릿속에 작은 생각 하나가 툭 하고 튀어나왔습니다. ‘이렇게 살기 싫다.’
툭 튀어나온 그 생각을 잡았어요. 진짜로 이렇게 살기 싫었거든요. 주체적으로 제 삶을 살고 아이들에게 편안한 엄마, 남편에게도 좋은 아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사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어요.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누군가가 '나'를 바꿔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변하는 게 더 빠르다는 생각을 했고, 당장 할 수 있고 가장 빨리, 눈에 확 띄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바로 어지러운 집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 자주 사용하는 주방을 정리하는 것! 다른 건 몰라도 이것은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제가 움직여서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집을 바꿔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학생 때 수영을 배운다고 처음 수영장에 들어갔을 때 수영강사들이 접영을 하는 게 멋있어 보였어요. 그렇지만 초보인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물에 들어가서 발차기 연습을 하는 것뿐이었죠. 멋있어 보여 하고 싶다고 '당장' 접영을 할 수 없었어요. 몇 달이 지나서야 겨우 접영 발차기를 배울 수 있었고, 강사님들처럼 멋있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었습니다. 30여 년을 정리와 담쌓았기 때문에 며칠 만에 집 전체를 정리하고 정돈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럴 능력도 없었고 말이죠. 그래서 처음 수영장에 가서 발차기를 연습했듯이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렇게 저만의 <작은 정리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몇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첫째, 정해진 시간 안에 마무리할 것.
30분, 시간을 정했습니다. 완성도를 생각하며 하다 보면 끝이 없을 테고, 금방 지쳐서 다른 곳은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았거든요. 정리도 중요하지만 이것 말고도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많았기 때문에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밀도 있게 끝내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둘째, 완벽하게 할 생각을 내려둘 것.
완벽한 정리에 끝이 있을까요?! 하루 이틀 사용할 것도 아니고, 분명 오늘 정리해도 다음날 보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금방 흐트러져서 다시 정리해야 할 순간이 올 것 같았어요. '완벽하게 정리해야겠다'생각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정리를 했는데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허무함이 느껴져서 작은 정리 프로젝트에서 손 놓을 것 같은 미래가 보였습니다. 게다가 살다 보면 또 비워야 할 것이 생기기 마련이고 오늘은 여기에 있던 걸 내일은 저기에 두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르니 말이죠.
셋째, 비교는 금물. 비교대상은 오로지 '어제의 나'
관심을 가지고 찾다 보면 잡지에 나올 것 같은 정리가 아주 잘 되어있는 집 사진을 볼 수 있어요. 실제로 저도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계정을 찾아 팔로우하며 찾아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딱 거기까지! 참고만 하고 배울 것만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집들과 우리 집을 비교하며 '언제 저렇게 되지', '우리 집은 왜 저렇게 되지 않는 걸까', '저렇게 완벽한 집이 있는데, 이걸 정리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의 늪에 빠지면 스트레스만 받고 의욕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비교'는 멈추고, '적용할 점'만 생각했습니다. 비교대상은 오로지 '정리 전의 우리 집 상태', '어제의 나'로 삼고 예전의 공간과 비교했을 때 나아졌다면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점점 발전하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고요.)
가장 만만했던 것이 주방 서랍 정리였어요. 일단 공간범위가 좁아서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정리한 후에는 정리된 상태를 자주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정리의 과정은 간단해요. 다 꺼낸다-비운다-정리해서 넣는다. 기한 지난 쿠폰, 안 쓰는 고무줄, 구부러진 빨대, 이사 오기 전 동네 전단지, 녹슨 못(못이 왜 여기에?) 등등 서랍 안에 있는 것들을 다 꺼내고 나니 버릴 것들이 눈에 보였어요. 왜 이런 걸 여기에 뒀나 싶은 것들, 더 이상 안 쓰는 것들을 버리고 나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다시 차곡차곡 서랍 안에 넣었죠.
정리된 서랍 한 칸을 보고 나니 뿌듯해졌어요. '고작 서랍 한 칸 정리하고?' 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스스로 이곳을 정리했다는 성취감, 무언갈 해냈다는 작은 성공의 경험, 뿌듯함이 생겨서 다른 곳도 정리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정리의 범위를 점점 넓혔어요. 서랍으로 시작해서 냉장고 선반 한 칸, 화장대 서랍 한 곳, 책장 한 줄 등등. 이렇게 작은 정리 경험들이 모이면서 전문가까진 아니더라도 저만의 정리 방법이 생기고 이젠 어느 곳이든 잘 정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정리 DNA라고는 1도 없던 제가 말이에요! 물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긴 하지만
참 신기하죠. 정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제가 작은 곳부터 정리하기 시작하고 조금씩 집안이 정돈되어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정리된 공간을 보며 활력이 생기고 깔끔해진 공간에서 무언가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죠.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지만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인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집을 가꾼다는 것이 단순히 '살림을 잘한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내 마음을 다스리고 변화시키는, 내 가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는 것을요.
필요 없는 물건을 비우고 정리정돈을 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 치트키가 될 순 없겠지만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정리를 하고 집을 가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