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남편의 수고에 감사합니다. 남의돈 벌기가 어디 쉽나요. 누군가는 자아실현을 위해 일은 한다고도 하지만 일이 재미있어서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당장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닐 것입니다. 가정을 꾸리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알람 소리에 벅차고 일어나 매일 아침 출근을 하는 거겠죠.
일도 하고 살림도 하는 워킹맘들도 존경합니다. 친정엄마가 워킹맘이셨고, 옆에서 그 힘듦을 보고 자랐습니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주말에 좀 쉴 수 있으려나 싶으면 평일에 아이와 함께 놀아주지 못하는 마음에 피곤해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애쓰고, 그러지 못했을 때의 죄책감을 크든 작든 마음 한구석에 늘 가지고 계시겠죠. 그럼에도 멋지게 여러분들의 일을 해내시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전 항상 친정엄마를 멋있게 바라봤고, 엄마가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이 글은 자의 반, 타의 반.....솔직히 말하면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업주부가 된 저의 살림을 대하는 태도와 책임감에 대한 내용입니다.
막달까지 일을 했던 나는 첫 아이를 출산하고 본격적인 엄마의 삶, 주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해내고자 하는 마음은 컸지만, 지금까지 살림에 대한 경험도 마음도 없었던 내가 제대로 해냈을 리가 없다. 그저 하루하루 급한불을 끈다는 생각으로 해야 할 일만 했었다. 당장 저녁에 먹을 밥을 만들어야 했고, 아이가 먹을 이유식을 만들어야 했고, 매일 나오는 빨랫감들을 처리해야 했다. 청소를 해도 다시 금방 쌓이는 먼지들 때문에 늘 청소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살았었다. 이때의 나에게는 정리정돈을 해야겠다는 여유조차 없었다. 매일 무언가를 하긴 하는데 어수선한 집을 보면 한숨만 나왔다.
늘 '집 밖'의 일에 온 신경이 가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인정받을만한 성과를 내는 것에 가치를 두었으니 살림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청소를 하면 금방 어질러지고, 먼지는 왜 이렇게 금방 쌓이는지! 아침을 차리고 다 먹은 뒤 그릇을 정리하며 점심엔 뭐 먹어야 하는지(뭘먹여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버거워서 알약 하나를 먹으면 모든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을 누가 개발해줬으면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말리는 건 건조기가 하고,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청소는 청소기가 한다지만
빨랫감을 세탁기에 잘 분류해서 넣어 작동시키는 것,
꺼내서 건조기에 넣는 것,
건조가 끝나면 빨래를 개는 것,
다 갠 빨래를 옷장에 넣는 것,
그릇들을 식기세척기에 넣는 것,
세척이 끝난 그릇을 제자리에 두는 것,
청소기를 작동시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기계들을 관리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하는 거였다.
재미가 없었다. 흥이 나지 않았다. 막말로, '밖에 나가서 일을 하면 돈이라도 받지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늘 불만을 가지고 살았다. 이렇게 집안일에, 육아에 매몰되어 내가 무가치한 사람이 될 것 같은 불안도 있었다. 전업주부인 아내가 집에 있는데도 집안꼴을 보면 없는 것 같으니 남편의 불만도 쌓여갔을 테다.
결국 이 문제로 상담을 받았다. 내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니 사소한 짜증이 늘고, 의욕이 생기지 않아 무기력해진 내 모습이 내가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바꾸고 싶었다! 몇 번의 상담 후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내담자분은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집안일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네요....... 일을 하는 것과 집안일을 하는 것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아세요?! 단순히 봤을 때 일을 하면 월급이라는 보상을 받는데 집안일은 따로 보상이 없으니 더 힘들게 느껴지실 수도 있으세요'
가사노동의 경제적인 가치에 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집에 있는 대신 바깥에 나가서 일했을 경우 벌 수 있는 돈의 가치로 계산하거나 전문가에게 맡겼을 때의 비용을 계산해서 대략적으로 90만 원~100만 원 정도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이혼 시 재산분할이나 보험료 산정을 위한 계산이라고 한다.) 내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에 값을 매긴다는 것이 의미 없을 수 있다. 진짜로 저 월급을 받고 일할 수도 없다. 생활비를 받긴 하지만 '일에 대한 보상'과는 조금 다르다.
돈을 받지 않고 일했던 적이 있었나 돌아봤다. 대학생 때 아동센터에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돈을 받지 않고도 시간을 쓰는 게 아깝지 않았다. 돈이 아닌 다른 내적 보상이 있었기에 시간을 쓰고 마음을 썼던 것이다. '살림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볼까?' 내가 이 일을 잘 해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 일의 가치를 찾아보는 것이다.
깔끔하고 정돈된 공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음먹고 대청소를 한 날, 5살인 둘째가 유치원에 갔다가 집으로 들어오면 '우와~~~ 엄마! 집이 정말 깨끗해요! 깨끗해서 좋아요~!'라는 말을 한다.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왔을 때의 표정도 다르다. 무엇보다도 집에 오래 머무르는 '내'가 정돈된 집에 있을 때 기분이 좋다. 옷을 차곡차곡 보기 좋게 개어놓으면 남편과 7살 5살 두 아이가 입고 싶은 옷을 스스로 잘 꺼낸다. '그때 그 아울렛에서 샀던 줄무늬 니트 어딨어?', '엄마, 공룡 있는 티셔츠 어딨어요?' 이런 질문이 줄어든다(없어지진 않음! ㅎㅎ). 그럼 난 여기저기 불려 다니지 않아도 된다. 신경 써서 식사를 준비한 날에는 7살 아들이 나에게 쌍따봉을 날려준다. '엄마가 해주는 밥 정~말 맛있어요!'. 밑빠진 독에 물붓는거라고만 생각했던 집안일이 가족들에게 물주는(?) 일이었다. 남편과 두 아이가 이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내 일인 것! 가족들의 고마움이 있다면 금상첨화! 이걸 보상으로 따지자면.. 가족의 행복. 가족에게 듣는 격려의 말이지 않을까.
도전의식을 가지고 해내서 성취감을 얻는 것도하나의 '보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전 '켈리델리'의 '켈리 최' 회장님의 인터뷰영상을 봤다. 유익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내 마음을 건드린 문장이 있었다. '본인이 있는 분야에 최고치를 찍어보세요.' 지금 난 집에서 빨래나 개고 있지만 언젠가 사회에 나가면 (해보진 않았지만) 뭐든 잘 해낼 수 있을거야!하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어서 이 말을 듣자마자 띵~하고 울리는 기분이었다. 지금 내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데, 다른 일도 잘 해낼 수 있을까?!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물론 개인마다 잘하는 일이 있고 적성에 맞는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나도 결혼 전에는 아이들에게 화도 안내고 매 끼니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해주며 살림도 잘해내는 현모양처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다. 직접 해보기 전에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집. 전업주부로서 해야할 살림. '업'이라 생각하고 책임감을 다해 해보자는 도전의식이 생겼다! 내 살림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자는 내적동기가 생겼고, '성취감'을 보상으로 삼았다.
그렇게 조금씩 해나가다보니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갖는 것도 중요해졌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내 취향의 그릇이나 냄비, 조리기구를 쓰는 것은 매일 하는 요리에 소소한 재미를 줬다. 침실에 좋아하는 포스터를 두니 오며가며 눈이 즐거워졌다. 화사한 꽃다발을 테이블위에 두어 기분전환을 하는 것도, 식물을 키우는 것도 반복되는 일상에 활력을 주었다. 마음에 드는 의자 하나만 뒀는데도 그 의자가 있는 공간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사치의 끝은 '리빙'이라는 말을 얼핏 들은 것같은데, 수십만원하는 예쁜 의자나 조명에 마음이 가는걸 보면 최소한 나에게는 맞는 말이다. '살림'에 활력을 주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내 취향의 것들로 살림살이를 채우는 것도 일종의 '보상'이었다.
살림하는 과정을 블로그에 적어 금전적인 보상도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
가족의 행복, 성취감, 내 취향의 살림살이들... 이 일에서 의미를 찾고 해야할 이유를 찾고난 뒤 책임감이 생겼다. 비록 월급은 없지만 생활비를 받고 가정살림을 책임져 '경영'하고 있다 생각하니 살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엄마'인 나, '아내'인 '나'도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렇다고 사회생활에 대한 내 갈망이 아주 사그러든건 아니다. 일단, 지금 나의 우선순위를 전업주부로서 일을 잘 해내는 것으로 두고 업무(살림)외 개인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효율적으로 집안일 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책임을 다한 후 생긴 그 시간에 합법적(?)으로 개인의 성장을 위한 딴짓을 하기 위해서. 언젠가 아이들이 내 손을 떠날 날이 올 것이고 엄마의 손이 덜 필요하게 되는 그 때, 아이들에게 기대지 않고 쿨하게 내 할 일 하는 엄마사람이 되고싶어서! 언젠가는 진짜 월급이 받고싶어서!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가족들이 내가 '편안한 집'을 만들기위해 노력하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겨줬으면 한다. 고맙다, 수고했다 한마디라도 건네주었으면 한다. 남편이 힘들게 돈을 벌어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지내며 유치원 생활을 잘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서로가 서로의 일을 존중하고 서로 격려해주는 것이 큰 힘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