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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써니 Oct 20. 2022

엄마는 그래야한다

게으른 엄마의 반기

엄마는 부지런해야한다

엄마는 깔끔해야 한다

엄마는 힘이 세야 한다

엄마는 양보해야한다

엄마는 희생해야 한다

엄마는 지치지 않아야 한다





화이트톤의 밝은 거실벽은 누런얼룩 하나 없다. 어디서 파는지도 모르겠는 파스텔톤의 아기자기한 장난감들과 원목의 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흔들말은 고급스럽기 그지없다. 한켠에서 놀고 있는 꼬마 아이는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옷이 걸치적거리지도 않는가보다. 잔머리 하나 없이 반듯하게 묶은 머리에는 빨갛고 노란 리본이 올라가있다.  웨이브 헤어 에이라인 롱스커트가 제법 멋스러운  옆의 호리호리한 여인은  공주님의 엄마인가보다.


삼시세끼 예쁜 식기에는 레스토랑에서나 봄직한 오밀조밀한 유아식이 담겨 나온다. 단탄지의 비율을 꼼꼼히 신경 쓴 그 식단은 아이의 건강과 발육을 위해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인 듯 하다. 보기좋은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으니 노랗고 하얀 꽃모양의 지단은 아이를 위해 어찌보면 선택불가결한 일일지도 모른다.


부지런한 엄마들에게 칼라프린터와 코팅지는 필수품이다. 손품을 팔아 강아지도 만들고 코끼리도 만들어야 한다. 많은 알파벳도 일일이 오리고 붙여 온리원, 우리 아이만의 멋진 교구를 완성한다.


엄마의 성의와 노력, 자애로운 애정에 아이는 누구보다 월등할 거다. 발육은 물론 인지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뒤쳐질 것이 없을 게 분명하다.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네모난 작은 상자 안의 그 집은... 그래, 우리집이 아니다. 어쩔 때는 스타워즈의 그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나 싶기까지 한 '가정판 판타지물'로만 느껴지는 '남의 집'의 이야기다.







납작하고 네모난 상자 안에 즐비한 '남의 집'들과 우리 집은 다르다. 원더우먼처럼 바지런하고 깔끔한 엄마가 없는 탓이다. 비슷하게 따라해보려 파스텔톤의 식기를 사보았지만 꽃모양의 지단은 커녕 조미김에 둘둘말은 투박한 김밥이 원픽이었다. 기껏 묶어준 양갈래 머리는 아무래도 높이가 맞지 않고, 기껏 준비한 칼라 프린터는 오래 쓰지 않아 잉크가 굳어버렸다. 엄마 역시 에이라인 롱스커트는 무슨 무릎 나온 츄리닝 바지에 질끈 묶은 머리가 실전형이다. 아참, 호리호리 하지 않은 건 물론이다.



부지런하지도, 깔끔하지도, 티나게 희생하지도 않는 이 집의 엄마는 수시로 노곤노곤 방전이 되기까지 하지만 누구보다 잘 웃고 아이와 함께한다. 이미 부지런하고 멋진 엄마의 이야기들은 차고 넘치니 나는 조금 촌스럽고 투박하고 게으른 엄마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래야만 한다는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들에 소심한 반기를 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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