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아이
연말이었다.
연말인 줄도 모르고 특별할 것 없이 눈을 떴다. 어린 시절엔 한 살 한 살 나이 먹는 것이 신기한 일이었고, 생일이 기다려졌고, 크리스마스가 소중했고 새해는 특별했었다. 세상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마음이 둥글러지고 다듬어지며 그 소중하고 특별했던 마음마저 깎여나갔는지 웬만한 '별 것'은 별 것 아닌 것이 되어버렸나보다.
한 해의 마지막 날도 역시 요란할 건 없었다. 그저 여느 날처럼 웃고 부대끼며 하루를 보내다 날이 저물고 나서야 조금씩 진한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의 시간이 가는 것보다 아이의 시간이 흐르는 것이 더 아쉬운 까닭이었다.
"5살아이니 오늘 마지막 날이네~"
"5살아이니 또 보고 싶으면 어쩌지?"
"크큭. 엄마! 밥 쪼끔만 먹고 작아지면 되지~"
잠들기 전 5살 꼬맹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눈에 담고
손에 담고
마음에 담았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아아 엄마는 한살아이니 두살아이니 세살아이니 네살아이니도 보고싶다아~"
말도 안 되는 진심에 푸념이 섞여 새어 나왔다.
"엄마..
한살아이니
두살아이니
세딸아이니
네에살아이니
다서쌀아이니
..
여섯살아이니도 다 아이니야!! "
짧고 통통한 손가락을 하나씩 펼쳐가며 느릿느릿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나이를 세는 꼬맹이였다.
중요한 순간 나보다 훨씬 지혜로운 아이.
왜인지 절대 가늠할 수 없을 엄마의 서운함을 느끼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도닥일 줄 아는 아이.
그래, 한살 두살 세살 네살 다섯살 모두 모이고 쌓여 여섯살이 되는 거였다.엄마의 시간도, 아이의 시간도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라는 대단한 이치를 새삼 깨닫는다.
그 시간들이 바지런히 쌓이고 모여 지금의 너와 내가 되어 있다. 시간이 흐르는 순리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현재에 충실하며 '지금'을 사는 일 뿐이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를 기대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 자칫 바지런히 내일을 준비하느라 잠시 소홀해지는 오늘을 충분히 챙겨 지나보낸다.
내일이면 여섯살이 된다며 한껏 설레어하며 잠이 든 아이를 보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내일 만나게 될 여섯 살 꼬맹이에게 또 기쁘게 인사해주어야지.
"여섯 살 꼬맹이, 반가워. 우리 또 잘해보자."
너의 시간에 겹쳐지는 나의 시간이 유난히 근사하게 느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