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상담을 받고 있는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상담실이란 곳이 있구나.' 그전까지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곳이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친구에게 물었다.
"혹시 네가 상담을 받고 있는 곳이 어딘지 나에게도 알려 줄 수 있어? 나도 상담을 받고 싶어."
힘든 일이 생기면 늘 친구에게 털어놓았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나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짊어진 듯 벅차고 무거웠다. 불안과 걱정이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 없을 정도로 매 순간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일기장엔 존재의 이유를 궁금해하는 물음들이 가득했다. 삶의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이 빈 공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내 의견을 말하려고 하면 목에서부터 막혀서 나오질 않았다. 나의 생각이 세상의 빛을 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만큼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아무도 내 얘기는 궁금해하지 않을 거란 잘못된 믿음이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선 상담을 받으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무료로 혜택을 주는 곳이 있다. 건강가정지원센터, 상담 수련생들이 교육을 받으며 상담을 해주는 센터(적은 비용을 받기도 한다) 등등. 처음엔 그런 곳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가상 담을 받았다는 곳을 찾아갔다. 그것을 시작으로 여러 곳에서 상담을 받았다. 내 돈을 내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고, 상담사는 나를 위해 귀 기울일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란 사람을 마음껏 드러내도 이미 난 부족한 부분에 대해 도움을 받기 위해 간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상담사는 나를 평가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냥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하고 갔다. 덕분에 안심하고 자기표현을 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곳이 상담실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50분 동안 나만 바라봐주는 사람을 만나면서 한 주를 버틸 힘을 얻었다. 앉자마자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당사자에게 직접 전하지 못하는 말을 편지로 대신해 상담사 앞에서 읽기도 했다. 두려운 것, 불안한 것을 이야기하면서 부정적 에너지를 몸 밖으로 내보냈다.
당시 자기표현이 어려웠고, 그 부분에서 본다면 나의 상담경험은 온전한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안전한 곳에서 신뢰가 가는 사람에게 마음껏 나를 내보였다. 그러고 상담실을 나오면 몸과 마음이 가볍고 충만해져 있었다. 땅 위를 사뿐히 나는 듯이 걷는 기분이 들었다.
상담실은 무겁지 않았고 상담사에게선 권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가기 전엔 설렘이 가득했다. '이번 주엔 어떤 이야기를 할까' 하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자기표현이 즐겁다는 걸 느끼게 해 준 곳이 바로 상담실이다. 그곳에 가는 것 자체로 이미 치유가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