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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Nov 22. 2021

18) 한 여름 피서는 대관령에서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2부)

 여름이 찾아왔다. 혹시 이런 생각한 적 없는가? 동쪽으로 바다를 접한 강릉은 사시사철 바람이 불어, 여름철 더위도 너끈히 견딜 것 같다고. 그래서 에어컨 없이도 한여름을 날 수 있을 거라 예상하지 않았는가? 나 또한 그런 줄 알았다. 실제로 더위가 찾아오기 전까지 말이다.


 4월의 꽃샘추위가 데려온 서늘한 바람도, 달력이 넘어가자 한 순간에 따뜻한 날씨로 변했다. 대지를 향해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려오자, 대기 상태가 온화하게 바뀐 것이었다. 처음엔 봄 날씨를 마음껏 즐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5월 말 초여름에 들어서자 몸이 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동네를 걸으며 돌아다닐 뿐인데도 송골송골하고 몸에서 땀방울이 맺혔다. 


 이러면 큰일 나겠다 싶어 전자랜드에서 부랴부랴 에어컨 설치를 예약했다. 날씨는 5월 중순부터 따뜻해져서 9월까지 이어졌다. 한여름이라 할 수 있는 8월에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온과 습도 모두 상승했다. 하루는 최고 35도까지 올라갔는데, 더위로 유명한 '대구'보다 더웠다 한다. 기막힌 상황이었다. 영동지방에서는 폭염주의보 소식이 며칠 째 이어지고 있었다. 


 바닷가도 상황은 똑같았다. 더위에 맥을 못 추는 내 모습을 본 직원들이 말했다. 강릉 사람들은 한여름에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대관령으로 가 쉰다고 한다. 구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대관령 휴게소가 있는데, 더위 때문에 잠조차 설칠 때는 거기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한다 한다. 텐트 또는 돗자리를 펴고 자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고.


 정말일까? 휴일에 드라이브 겸 자동차를 이끌고 대관령과 진부산 일대로 향했다. 집에서 대관령 휴게소까지는 약 40분 거리였다. 강릉 시내를 벗어나 굽이진 대관령 옛길을 따라 한참 동안 올랐다. 구 대관령 길은 어렸을 적 부모님 따라 간 이후 처음이었다. 20년 도 더 전의 이야기. 당시 뒷좌석에 앉아 놀이기구를 타듯 대관령 옛길을 즐겼었는데.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오른 끝에 마침내 풍력 발전소가 있는 휴게소에 다다랐다. 차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 건 강풍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세던지 머리카락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휴게소 입구 양 옆으로 풍력발전소가 설치된 이유가 궁금했는데, 비로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관령 날씨는 직원들 말대로였다. 한여름에 그늘이 없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시원했다. 아니 서늘함까지 느껴졌다. 동쪽과 서쪽 양옆에서 연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게다가 고도가 800m 일 정도로 높다 보니, 평지에 비해 기온도 낮고, 공기 밀도와 습도도 낮았다. 서늘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실감했다. 더위에 지칠 때는 대관령을 가라더니 사실이었구나. 정말 시원해. 


 지금이야 집집마다 에어컨을 설치했기 때문에 굳이 대관령을 갈 필요가 없어졌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 말에 따르면, 퇴근하고 대관령에서 하룻밤 자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한다. 그리고는 아침 일찍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곧바로 일터를 향해 출근한다고. 강릉에서 대관령까지 30분 전후 거리이기에 가능한 얘기였다. 다른 지역이었다면 엄두조차 못 냈을 게 분명했다.


 우리는 내친김에 차를 몰아 북쪽의 진고개 휴게소로 향했다. 진고개 휴게소는 오대산과 황병산 사이 국도길에 위치한 작고 아담한 쉼터였다. 대관령 휴게소를 나와 북쪽으로 향하는데, 길목에서 신기한 광경을 마주했다. 왼쪽은 햇살이 맑고 쨍쨍한데 비해 오른쪽은 다소 흐리고 구름이 꼈다. 국도길을 기준으로 날씨가 경계선을 이뤘다. 동쪽에서 몰려온 먹구름이 대관령을 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걸까? 다행히 비소식은 없었다.


 진고개 휴게소에 도착한 우리는 시원하 바람을 쐬기 위해 등산로로 향했다. 안내판을 지나 나무 데크를 올라가자 산길과 함께 울창한 산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길을 밟으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 순간 머리 위에서 바람이 불었다. 

‘쉬이이이 쉬이이이’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청량한 소리를 냈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라보자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려 서로 부딪혔다. 그들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자, 쌓인 피로가 한순간에 사르륵 씻겨 내려갔다. 푸른 하늘 청정한 공기, 녹음진 나무들, 그리고 은은하게 느껴지는 피톤치드 향까지, 두 팔 벌려 온 몸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받았다. 이런 게 삼림욕이구나 느끼면서.


 집에 설치한 에어컨으로 한여름 더위를 날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쉬는 날에는 가끔씩 대관령으로 가 탁 트인 개방감을 만끽하면서 여름철 피서를 나 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낀 기억은 오래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산 바람 특유의 시원하고 청량한 공기는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이기에 앞으로도 종종 찾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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