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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Dec 05. 2021

19) 새를 바라보는 즐거움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2부)

 강릉에서 살면서 줄곧 내 이목을 끄는 존재가 있었다. 그들을 처음 본 건 이사 온 바로 다음 날부터였는데, 동네 골목, 해변가, 경포호수 등 우리가 발 닿는 곳 어디든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호오~ 신기한데~?' 하며 저 혼자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사람도 자주 보면 정이 들듯, 거의 매일 마주하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속에 친근감 같은 게 피어났다. 그때부터 그들의 행동거지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들은 '새'라는 존재였다.  


 이른 아침, 암막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왔다. 햇살의 강렬한 빛줄기와 알람 소리가 곤히 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시끄럽게 울어대는 알람을 끄고 얼굴까지 이불을 덮었다. 그러기를 두세 번.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발걸음으로 거실로 나왔다. 그러자 뒷 베란다 쪽에서 ‘짹짹짹’하며 밝고 청아한 소리가 들렸다. 뒷산에 자리 잡은 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였다. 우리 집 뒤에는 여러 텃새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직박구리, 곤줄박이, 멧비둘기, 딱따구리, 뻐꾸기 등 종류는 실로 다양했다. 울움 소리가 끊이지 않는 걸 보니, 그들도 아침부터 정신없나 보다.  우리가 아침 일찍부터 밥 먹고 출근 준비하듯, 그들 또한 분주히 먹이를 찾으며 제 할 일 하느라 바쁜 것 같았다.


 카페에서 일하는 날이었다. 매장에서 커피를 내리고 테이블을 치우는데, 어느새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곧바로 음식을 사러 나갔다. GS 편의점 방면으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모래사장에  갈매기 무리가 보였다. 다들 사냥은 안 하고 바다를 응시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대체 바다를 보며 무얼 기다리는 걸까? ‘사냥하기 전에 휴식을 취하러? 파도에 떠밀려 나온 멸치를 먹기 위해? 아니면 사람들이 주는 새우깡을 먹으려고??!!'


 퇴근하고 집으로 온 다음에는 상하의를 벗고 러닝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뛰러 나갔다. 초당에서 시작해 순긋 해변까지 뛰고 반환하는 길이었다. 자전거 대여점 골목을 지나 경포호수로 향하는데 제비 한 마리를 발견했다. 아니, 도시에서는 찾기 어려운 제비를 강릉에서 볼 줄이야!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제비가 어느 자전거 대여점 안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자식들을 키우고 있었다. 어쩐지 골목 사이사이를 날아다닌다더니, 이유가 있었구나. 제비 부부가 드나드는 것을 허락한 주인아저씨의 넓은 마음씨가 느껴졌다.


 경포호수에는 텃새와 철새가 함께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호수 한가운데 청둥오리와, 왜가리, 중대백로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늘 이곳에 서식했다. 먹이도 풍부하고 잠시 쉬는데도 그만인 장소인 걸까? 호수 한가운데 있던 오리 무리가 발장구를 치며 유유히 수풀 가까이로 헤엄쳐 왔다. 그 옆에 우뚝 선 왜가리 한 마리가 꼼짝도 안 한 채 강을 응시했다. 수면 아래로 돌아다니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한껏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한쪽 발만 든 채로 줄곧 서 있어서 하마터면 조형물로 착각할 뻔했다.


 밤이 깊은 저녁, 아침에 재잘대던 새들은 먼저 잠들었는지 조용했다. 대신 뒷산에서 굵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새울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통이 중후한 걸 보니 부엉이나 올빼미 류 같았다.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울음소리를 찾아봤다. 아무래도 수리부엉이 같다. 수리부엉이는 그 후로 일주일 넘게 해가 저물면 어김없이 짝을 찾으러 울어댔다. 


 강릉은 도심에 비해 숲과 산이 많이 보존된 지역이었다. 그렇다 보니 벌레도 무성하고 또 그들을 잡으러 새들도 많이 모였다. 먹잇감이 풍부한 곳에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되는데, 그 모습은 마치 어릴 적 책이나 ‘동물의 왕국’에서 본 장면을 연상케 했다. 우리가 강릉에서 안 살았다면 볼 수 있었을까? 아니 불가능했다. 계속 수도권에서 지냈다면, 방향을 꺾어가며 벌레를 사냥하는 참새도, 나룻배 모퉁이에 서서 물고기를 사냥하는 중백로도,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당황하며 지저귀는 뒷산의 새들도 못 봤을 테니까.


 나는 앞으로도 이곳에서 오랫동안 많은 새들을 만나고 싶다. 참새, 까치, 청둥오리 같은 텃새와 왜가리, 중대백로, 흰 갈매기, 고니처럼 잠시 쉬었다 가는 철새들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나 때문에 화들짝 놀라 달아나지 않도록, 먼 곳에서 지켜만 봐야 한다. 산에 핀 예쁜 꽃을 바라만 보고 오는 것처럼,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을, 강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새들을 놀라게 하지 말고 바라만 볼 예정이다. 욕심내지 말고 한 발짝 더 물러서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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