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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Dec 08. 2021

21) 뜨지 않는 비행기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2부)

 제주도에서 다시 강릉으로 가는 날, 돌아가는 항공편에 결항 소식이 떴다. 큰일 났다. 지금껏 살면서 비행기가 결항한 건 처음인데 어떤 수속을 밟아야 하나?!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카페에는 뭐라고 말하지?! 아 우선 침착하자 침착해 이중현!!


 우리는 지금 제주도 성산에 위치한 어느 호텔에 와 있다. 일본에서 대학교 동기이자 단짝 친구 상현이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비행기를 타고 간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가기 전부터 제주도로 태풍이 다가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출발 당일, 카페 직원들에게는 일 끝나고 제주도로 간다고 말하자, “이거 결항 뜨겠는데요?” “근무 날에 못 돌아오는 거 아니에요?”라며 걱정 섞인 말을 들었다. 나는 비행기 이륙 시간과 태풍이 상륙하는 시간대가 차이 나는 것을 가리키며 “이거 봐 봐요. 꽤 차이나죠? 큰 문제없으면 뜰 거예요. 걱정 말고 내일 결혼식 끝나고 바로 올게요. 그럼 모레 봐요~.”라고 대답했다. 믿는 구석이라고는 기상청 예보와 Windy가 전부였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결혼식 날, 일본 오키나와 남쪽 해상에서 태풍이 발생했다. 태풍은 서서히 올라오더니 오키나와 부근까지 다다랐다. 기상청에 따르면 제주도에 상륙하기까지 하루는 더 걸릴 예정이었다. 다만 제주도 남동쪽 성산 지역은 이미 태풍 영향권에 들어섰는지, 아침부터 거센 비바람이 일었다. 바닷가에서 우레와 같은 파도 소리가 들렸다. 결혼식장까지 이동하기 위해 우산을 썼지만 바람 때문에 곧바로 뒤집어졌다. 있으나마나였다. 비바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강도가 더해졌다. 감히 돌아다닐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무섭게 몰아쳤다. 할 수 없이 식장까지 카트를 타고 가야 했다.


 다행히 결혼식은 무사히 치러졌다. 식이 진행되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상현이와 제수씨 얼굴에도 안도하는 기색이 감돌았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식장 분위기와 달리, 유리창 건너 바닷가는 여전히 비바람이 몰아쳤다. 아니 더 강해졌다. 소리는 안 들렸으나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충분히 자연의 맹위가 느껴졌다. 그 기세가 어찌나 거셌던지, 하늘에서 내린 빗방울이 바람에 의해 다시 위로 솟구칠 정도였다. 


 식이 끝나자 사람들은 옆에 앉은 친구, 지인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에서 온 상현이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비행기가 결항할까 봐 식사도 거른 채 먼저 출발했다. 일부 사람들이 항공편을 변경해서 가는 모습을 보자, 우리들 마음에도 불안한 감정이 싹텄다. “만약 안 뜨면 어떡하지?”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속으로는 온통 비행기 생각뿐이었다.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항공 일정을 변경하고 싶어도, 양양행 비행기는 하루에 한 편만 있어서 변경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이륙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태풍이 천천히 올라오길 염원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 방에서 운항 스케줄을 살펴봤다. 오전에 확인할 때까지만 해도 모두 정상적으로 이착륙하고 있었다. 성산 지역은 아침부터 태풍 영향권에 들어가 연신 매서운 바람이 불었으나, 북쪽의 제주 공항은 아직 정상적으로 가동했다. 우리 비행기는 4시였다. 아직까지 결항 소식은 없었다. 저녁 무렵부터 제주도 전역에 강풍이 몰아쳐, 그때부터 줄줄이 항공편이 결항될 터였다. '그래 그 전까지만 제발 버텨줘라. 이대로 계속 가길.'


 오후 1시, 출발 준비를 하기 위해 짐을 싸맸다. 새미에게도 슬슬 공항으로 가자고 말을 건네던 그때였다. 무의식적으로 운항 스케줄을 새로고침해서 확인했는데, 우리 항공편 결항 소식이 떴다. ‘어??? 어 왜??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정상 운행한다고 했는데? 다른 비행기들은 그대로 정상 운행 중인데 왜 우리만 결항인 거야?!!’


 예상대로라면 저녁부터 항공편 결항이 줄줄이 이어질 터였다. 그런데 정상 운행할 거라 믿어온 우리 비행기가 가장 먼저 결항하다니. “왜 그런 거지? 왜?! “ 짐작 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비행기가 소형이란 점이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1*2 배열에 총 50 좌석짜리 제트 비행기였는데, 알고 보니 비행기는 그 크기마다 풍속에 대한 규정사항이 존재한다고 한다. 순간 풍속 몇 m/s 이상이면 소형 비행기는 못 뜨고, 그보다 더 세지면 중대형 비행기도 못 뜬다고. 그중 소형 비행기는 안전상의 이유로 가장 먼저 결항이 뜬다 한다. 크기가 작다 보니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으리라는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항공 운행에 따른 풍속 규정이 존재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결항 소식을 들은 나는 곧바로 카페 매니저에게 전화했다. 곧바로 사과부터 했다. 미안하다며, 태풍 때문에 나 때문에 내일이랑, 모레 둘 다 출근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마음씨 착한 매니저는 화내지 않고, 대신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해 스케줄을 조정해 주었다. 곧이어 출근 시간이 3일 후 마감 조로 조정됐다. 근무 일정도, 항공편 스케줄도 다시 잡았다. 다행이었다. 걱정을 한시름 덜어 놓자, 곧이어 자책감이 밀려 들어왔다. 출발할 때 직원들에게 별 일없이 돌아온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사고 치고 민폐나 끼치다니 말이다. 


 방 한편에서 혼잣말하며 반성하고 있자, 새미가 다가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내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새미네 가족 단톡방이었다. "신혼여행이네. 즐겨, 다시 오지 않아."라고. 장모님께서 항공편 결항 소식을 듣고, 위로에 말씀을 건네주셨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태풍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꼬였으나, 다들 배려해 준 덕분에 근무 일정도, 항공편도 조정했다. 그리고 비행기가 뜨는 일은 내 능력 밖이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의 걱정거리는 없었다. 남은 일은 이틀 동안 이곳 제주에서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만 정하면 됐다. 그러고 보니 우리 둘은 아직 신혼여행도 못 간 상태였다. 신혼여행과 안 어울리게 비구름 가득했지만, 날씨 따위야 아무렴 어떨까 싶었다. 그래! 장모님 말씀대로 이대로 둘만의 시간을 보내볼까? 우선 시내 맛집부터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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