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중현 Dec 12. 2021

25) 연말 크리스마스 파티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2부)

 거리를 걷는데 가게에서 크리스마스 캐럴 송이 들려왔다. 재즈, 피아노, 팝송 등 다양한 캐럴이 울려 퍼지고 뒤섞였다. 귓가로 음악을 듣고 있자니 연말이란 사실이 새삼 실감 났다. 이 맘 때면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온 발걸음을 멈춰 뒤돌아 보고 싶어 진다. 올 한 해는 어떻게 보냈더라? 잠시 숨을 고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렸다. 서울의 행복주택이 떨어지면서 새미와 함께 강릉으로 가기로 정했고, 양가 부모님께 허락받아 결혼과 동시에 강릉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 해보는 카페 일과, 다시 처음부터 적응해야 할 생활 패턴과 인간관계, 새로운 반려 동물 가족이 생기는 등 강릉에서 생활하는 매시간 매 순간 새로운 경험을 누렸다. 스스로 꽤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고 자평했다.


 나는 2019년을 끝으로 카페 일을 그만둔다. 대신 내년부터는 시내 서점에서 일할 예정이다. 카페 일에 싫증이 난 건 아니었다. 같이 일하는 직원도 모두 착하고 근무 여건도 좋았다. 다만 커피를 평생 업으로 삼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커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애정도 깊어졌지만 내로라하는 업계 종사자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실력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커피 업계에 발을 들이면서, 주위에 실력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뛰어난 실력과 오랜 경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항상 새로운 지식을 탐구했다. 다수의 거래처를 두고 그때그때 맛 좋은 원두를 구입하며, 새로운 커피 도구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며, 커피 시장의 최신 트렌드도 놓치지 않았다. 커피를 향한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이 피부로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내가 과연 이 사람들처럼 커피에 모든 열정을 불태울 수 있을까?' 아니었다. 내 수준은 기껏해야 일반 사람들보다 커피를 좀 더 안다 뿐이지 그 외에는 차이점이 없었다. 나는 그들만큼 커피에 관심을 쏟고 공부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정도로 호기심이 깊지는 못했다. 그 사실은 커피를 내리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카페에서 일하는데 한계를 느낄 무렵, 마침 시내 서점에서 구인 소식이 올라왔다. 그곳은 서점과 카페를 같이 운영하는 중대형 규모의 서점이었는데, 글을 본 순간 '이 때다!'라고 직감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강릉에 오기 전부터 이 서점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구인 소식이 없었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드문드문 구인 정보를 찾아볼 뿐이었다. 그런데 약 10개월 만에 소식이 올라왔다. 이를 놓칠 수 없었다. 구인 글을 보자마자 이력서를 써 내렸다. 예전에 쓴 이력서 내용을 수정하고, 카페 경력과 과거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한 부분을 덧붙였다. 특히 15년 전 영풍문고에서 일한 경력을 자세히 적으면서 책에 대한 애정을 강조했다. 며칠 후 인사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오고, 곧바로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 자리에는 3명의 인사 담당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들 앞에서 책에 대한 애정과 일하는 데 앞서 마음가짐을 전달했다. 몇 가지 질문에 대해 대답하고 얼마 후 답변이 왔다. 합격이었다. 


 그 시점에 강릉과 야탑을 오가며 일한 새미도, 야탑의 일을 모두 정리하고 강릉에 정착했다. 12월부터 관련 직업을 검색했는데, 운 좋게 워크넷에 새미의 경력을 살릴만한 구인 공고가 떴다. 곧바로 그동안의 경력과 자기소개를 적어 지원했고, 면접을 거친 뒤 합격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 프리랜서로 일하며 불안정한 근무환경과 수입 때문에 마음고생, 몸고생 하며 지냈는데, 정규직으로 뽑히면서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강릉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일자리 고민 때문에 걱정에 시달렸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서로 머리를 맞대며 고민하던 찰나, 시기적절하게 구인 소식이 올라왔고 운 좋게 취직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크리스마스 날 저녁은 평소와 달리 집 안이 분주하게 돌아갔다. 주방 앞에 선 나는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한 바퀴 두른 다음, 그 위로 돼지고기 목살을 얹었다. 그다음 미리 썰어놓은 양파, 피망, 새송이 버섯, 고추를 순서대로 넣고 볶았다. 고기와 야채가 절반 정도 익을 즈음 굴소스를 두 세 숟가락 넣으면서 재료에 골고루 양념이 베이게 섞어주었다. 새미는 옆에서 노브랜드 표 냉동피자 꺼내어 에어프라이어에 돌렸다. 나는 프라이팬 안의 요리를 뒤섞는데 집중하고, 나머지는 전부 새미가 담당했다. 요리가 끝나갈 무렵 행주로 식탁을 닦고 이마트에서 사 온 레드와인을 올려놓았다. 앞접시와 젓가락, 와인잔을 올려놓은 후 요리가 다 되기만을 기다렸다. 우리 모습을 본 나지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밥 달라며 ‘냐옹냐옹’ 울부짖었다. 고양이들도 저녁 먹을 시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삐이-' 소리와 함께 에어 프라이어기에서 요리가 끝났다. 돼지고기 볶음도 다 구워놨겠다, 이제 아이들 밥을 챙겨 줘야지. 조금 전부터 쉬지 않고 울어댄다. '나지야 그러다 목쉬겠어. 알았어 알았어 이제 다 됐어. 금방 줄게~!' 오늘은 연말이니까 특식을 줄 예정이었다. 애들이 좋아하는 츄르에 습식 사료를 섞었다. 전부 참치 맛이다. 나무 탁자에 그릇을 올려놓자 아이들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자~ 특식은 오늘만이야. 내일부터 다시 건사료 먹자~!”


  요리가 끝난 피자와 돼지고기 볶음을 차례차례 그릇에 담아 식탁으로 옮겼다. 와인도 코르크 마개를 따서 잔에 부었다. 이제 준비 끝! 오늘은 2019년을 마무리하는 날이자, 새롭게 찾아올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 둘 다 내년부터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예정이었다. 과연 어떤 순간이 찾아올까? 어서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 ‘째앵~’하며 와인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전 13화 24) 성당에서 올린 결혼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