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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Dec 11. 2021

24) 성당에서 올린 결혼식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2부)

 나는 예전부터 결혼식 없이 살림을 가꾸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알콩달콩 잘 살면 충분하지, 굳이 큰돈을 들이면서까지 식을 올릴 필요는 없어 보였다. 비용이 가장 큰 문제였으나, 100~200명의 인원을 초대하는 일도 내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평소 낯을 가리다 보니,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 가면 금방 기가 빨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언젠가부터 소수 인원이 모인 자리에만 참석했다. 게다가 일본에서 10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결혼식에 초대할만한 친구들 자체가 적었다. 금전적인 부담부터 시작해 여러 요인이 겹치고 쌓이다 보니, 결국 결혼식이란 행사 자체를 기피하는 데 이르렀다.


 내 가치관이 확고해진 시점은 일본에서 생활하면서부터였다. 그곳은 결혼식이 필수가 아니었다. 대학생 때 까지는 그 사실을 몰랐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식을 안 올린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비록 성대하게 결혼식을 차리지는 않았지만, 아무 문제없이 배우자와 자녀들과 오손도손 지냈다. 가까이서 그들의 모습을 보며 결혼식에 대한 의구심이 더 커졌다. 하지만 그 중대한 행사를 나 혼자 정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만날 배우자와 그 가족, 그리고 우리 가족의 의견까지 전부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현실적인 면을 감안해, 결혼식의 최대 양보선을 설정했다. 친인척과 친한 친구까지만 초대하는 스몰 웨딩으로 말이다.


 그 시점에서 새미를 만났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자마자 서로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있음을 직감했다. 둘 다 솔직하고 구김살 없는 성격이었다. 그래서인지 빈 말을 건네거나, 가식적인 모습, 보여주기 식 허례허식인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 치를 떨었다. 물론 그런 상황과 마주하는 것을 싫어했다. 마침 둘 다 한국의 결혼식 문화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참이었다.


 다행히 양가 부모님은 개방적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우리가 하고 싶은 방향대로 하도록 지지해 주셨다. 결국 결혼식 없이 결혼하는 데 성공했다. 대신 조건이 따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새미네 부모님의 요청에 따라, 후일 성당에서 혼배미사를 올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우리 집은 불교 집안(지금은 집에서 기도함)이었으나, 가족 구성원 모두 타 종교에 대한 거부감은 적은 편이었다. 우리 모두 가톨릭 결혼식에 대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혼배미사 당일, 우리는 저녁 미사 전에 가장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맨 앞에 자리를 잡자, 곧이어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들어오셨다. 장모님은 한 손에 하얀 미사보를 들고 계셨는데, 우리 쪽으로 다가와 새미에게 건네주셨다. 새미는 머리에 미사보를 씌우고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그 옆에서 손을 꼭 잡았다. 혼인은 관면 혼배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관면 혼배란 천주교 신자가 비신자와 결혼할 때 쓰이는 결혼 방식이다. 가톨릭에서는 이 절차를 밟아야만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였다.


 곧이어 하나 둘 사람이 들어오고, 10여 분이 지나자 성당 자리가 꽉 메워졌다. 우리 집, 새미네 집 가족들도 전부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온 신부님이 십자가 앞에 서면서 미사가 시작됐다. 미사는 기도문 낭송과 설교, 축도까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신부님께서는 축도가 끝난 후 "오늘 결혼하는 부부가 있습니다. 다 함께 축하합시다."라며 우리를 강당 앞으로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신부님과 강당에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손뼉을 치며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모든 순간이 고마웠다.


 강릉으로 이주한 지 7개월, 혼인신고한 지 약 6개월 만에 올린 결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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