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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Apr 30. 2021

결혼한 나와 결혼하지 않은 친구와의 통화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 하는 그것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어느 일요일, 갑자기 휴대폰이 쩌렁쩌렁 울리며 집안의 허공을 가로질렀다.

“딴따따딴 딴따따딴~딴따따딴~”

특유의 경쾌한 소리. 카카오톡 전화 벨소리다. 카카오톡으로 전화가 왔다는 건 한국에서 온 전화다. 휴대폰에 뜬 이름을 확인해 보니 고등학교 친구였다. 그것도 페이스톡. 그때 내 상태는 집 밖으로는 도저히 입고 나갈 수 없는, 단지 편안하다는 이유로 집어 입은 꽃무늬 원피스와 추레한 얼굴,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집에 있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줘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나의 친구였다. 내 24년 지기 친구. 반가운 마음에 얼른 녹색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지현아? 정말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만이야?” 내가 먼저 운을 띄웠다.

“미연아~ 잘 있었어? 보고 싶었어. 하나도 안 변했다.”


대체 이게 얼마만의 통화인가? 이렇게 얼굴을 보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조차 힘들었다. 사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친구와 연락이 뜸했다. 그 친구는 예전에 살던 그 동네에 그대로 살고 있었지만 나는 어릴 때 살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 신혼집에 몇 번 초대를 했으나 도저히 일정이 맞지 않았다. 주말밖에 시간이 안 되는 나와 주말에 바쁜 친구. 학원을 운영하랴, 피아노 연주회를 하랴, 성당에 다니느라 바쁜 친구와 일하랴, 아이 키우랴 눈코 뜰새 없는 시간을 보낸 나와는 그사이 몇 년의 시간적 거리가 생겼다. 첫째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 친정집 근처에서 잠깐 만나 점심식사를 한 게 마지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제 만난 사이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동안 못했던 수다를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 아이들 사진으로만 봤지? 보여줄게. 얘들아 엄마 고등학교 때 친구야. 인사해~”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휴대폰 화면으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인사는 어색했지만 아이들은 엄마 친구에 관심이 있는 듯 왔다 갔다 하며 수시로 휴대폰 화면에 자신의 예쁜 얼굴을 비췄다.  


“딸이 너랑 똑같이 생겼다.”

“그래? 다들 닮았다고 그래.”

“아들은 아빠 판박인데? 오래됐지만 남편 얼굴이 기억나거든. 아빠랑 닮았어.”

“맞아. 아들은 아빠랑 똑같아.(웃음)”


그 친구와 대화할 때면 나는 항상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고등학생 신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 든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열심히 노력한 순수한 나로. 그리고 우리로. 그 친구와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준 내 아이들과 함께 얼굴을 마주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17살 고등학생과 41살의 아기 엄마의 모습이 이리저리 교차해서 튀어나오는 그림이랄까? 친구와 대화할 때는 고등학생의 모습이, 아이들을 대할 때는 다시 엄마의 모습이. 신기하게 그동안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세월은 기억나지 않았고 중요하지 않았다. 24년 전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만 있을 뿐.


“요즘 피아노 학원은 어때? 코로나 때문에…….”

내 말끝에는 ‘이런 시기에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기에 힘들지 않아?’란 속뜻이 숨어 있었다. 한국의 상황을 알기에 결코 기분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줄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여기 코로나 상황이 안 좋아서 며칠 학원 문 닫았어. 이제 다음 주부터 다시 문 열어.”


내 친구는 소위 말하는 자영업자다. 대학교에서 피아노 전공 후 초등학교 옆에 조그만 피아노 학원을 운영 중이다. 피아노 학원 원장이 된 지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다. 한 곳에서, 무엇보다 엄마들의 입소문이 가장 중요한 학원이라는 시장 경쟁 속에서 내 친구는 살아남았다. 새삼 친구가 대단해 보였다.


“코로나 때문에 수입이 반 이상 줄었지 뭐. 대신 내 시간이 많이 생겨서 좋았어. 수영도 하고 필라테스도 하고 자기 계발하면서 지냈어.”

내 친구 특유의 발랄함과 긍정적인 마인드는 세월도 코로나도 막을 수 없었다. 친구는 힘듦 속에서도 항상 긍정적으로 상황을 이겨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혹시 결혼할 남자 친구는 있어?”

“아니 없어.”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냐?”

“아니야. 인연을 만나는 게 쉽지 않네. 가끔 성당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노골적으로 나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 캐묻더라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마땅한 직업도 없는 사람이고. 결혼은 참 쉽지가 않다.”


내 친구는 미혼이다. 지금 시대에선 전혀 이상하지 않은, 굉장히 흔한 40대 미혼 중 한 명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순간 난 그 보통이 아닌 일을 경험한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결혼 안 하고 혼자 살아도 괜찮은 거 같아.” 내가 말했다.

“하하하…… 왜 그렇게 생각해?”

“아무래도 결혼하고 아기가 생기면 나보다는 가족을 더 챙기게 되더라고. 챙겨야 할 가족도 많아지고 이래저래 신경 쓸 일도 많고. 솔로로 살면서 자기 계발도 하고 여행도 마음대로 다니면 좋잖아. ”

“그래도 난 결혼하고 싶어.”

결혼하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진짜? 빨리 인연 만나야겠네ㅎㅎ.”

“늙으면 외롭잖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게 나에겐 최고의 행복이야. 집에 들어가면 사랑하는 가족이 반겨주면 좋잖아. 물론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좋겠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맞춰서 살면 되지.”

 그 말은 마치 가보지 않은 세계에 발을 한쪽만 들이민 체 가봤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나에겐 추상적으로 다가왔다.


“누가 그걸 모르냐?(웃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결혼하지. 그렇게 생각해도 의견 충돌이 생기고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서운한 부분이 생기고 그래. 결혼은 서로의 희생이 필요한 게 맞아. 그 희생이 굉장히 즐거울 때도 있지만 버겁고 힘들 때도 있어. 나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가정의 평화가 찾아와.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결혼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야. 난 다시 태어나면 골드미스로 살면서 결혼 안 하고 싶어”

“그래? 그래도 난 어서 좋은 인연 만나서 결혼하고 싶어.”


한 점처럼 가까웠던 우리는 결혼의 유무의 따라 생각의 각도가 한층 벌어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여유시간에 온전히 자기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친구를 부러워하고, 친구는 가정을 꾸려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나를 부러워하고. 우리는 어쩌면 커다란 언덕에 가로막혀 가보지 못한 ‘어떤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직 직접 가보지 않아서, 남들이 사는 게 좋아 보여서, 그곳에 가면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을 품고서. 만약 우리가 반대 입장이 되어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내가 아직 미스로 남았어도 똑같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거야'라고 말했을까? 그 친구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난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고 싶어'라고 말했을까?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새삼 진리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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