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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Apr 20. 2021

7살 아들의 최애곡 <한동안 뜸 했었지>

아들, 새로운 꿈을 꾸다

“엄마 나 그 노래 듣고 싶어.”

잠자리에 누운 아들이 갑자기 내게 말했다.

“무슨 노래?”

“그거 있잖아. 따따따따 따따따따 따따따따따 따↗따↘딴”

아들은 나름 리듬을 타고 추임새를 넣어가며 노래를 불렀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체 그게 무슨 노래야?”

“아까 《복면가왕》에서 나온 노래말야.”

복면가왕에서 나온 노래를 하나씩 떠올려 봤다. 얼추 리듬이 비슷하게 들리는 곡이 떠올랐지만 제목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 무슨 노래인 줄은 알겠는데 엄마가 제목을 잘 모르겠다.”


  우리 가족은 일요일 오후 4시 20분이 되면 TV 앞에 앉아 《복면가왕》을 시청한다. 한국에서는 저녁 시간대인  6시 20분에 방송되지만 한국보다 2시간이 느린 하노이에서는 오후에 본다는 편이 낫겠다. 혹시라도 한국의 향수를 느낄때면 시청하고자 달은 한국방송 TV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아이들이 일요일만 기다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게 된 건 단순히 아빠, 엄마의 노래 사랑 때문이다. 우리 남편은 회사 신입사원 노래자랑에 나가 1등을 한 경험을 가문의 큰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당시 반짝이 의상을 구해 입고 90년대 유행했던 가위춤을 춰 무대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고 하니 진심으로 자신의 끼를 발휘할 줄 아는 배짱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도 스웨그 있는 몸짓으로 예전 힙합곡들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내는 걸 보면 아직 실력은 죽지 않은 것 같다. 나도 나름 노래라면 자부심 있는 여자였다. 회사 회식 때면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놓지 않고 ‘마리아~ 아베 마리아~’를 열창하던 내 모습에 사람들은 시선을 집중했고 ‘나름 노래 좀 한다’라는 소리를 즐겨 들었다. (지금은 아니다) 


  노래를 좋아하던 남편과 나는 《복면가왕》에서 아는 노래가 나오면  ‘이 노래가 나올 때  내가 몇 학년이었지?’,  ‘나 이 노래 참 좋아했었는데’, ‘오랜만에 들으니 좋다’라며 옛 생각을 몽글몽글 떠올린다. 예전에 엄마가 《가요무대》를  그렇게 열심히 본 이유가 이해됐다. 엄마는 《가요무대》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옛날 생각이 난다고 하셨는데 내가 딱 그 심정이다. 어릴 적 즐겨 듣던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그 시절 자체를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 같다. 이 선물 속엔 때가 덜 묻은, 순수했던 예전의 내가 담겨있다. 지금보다 힘들었지만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젊음의 내가.


  아빠, 엄마와 달리 아이들의 호기심을 이끈 건 출연자들의 우스꽝스러운 가면 때문이다. 재미있게 분장을 한 가면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웃기도 하고 자기가 마음에 드는 가면이 나오면 ‘난 저 아저씨가 이길 것 같아’ 하며 승패를 예상한다. 만약 찜한 가수가 이기면 자기가 그 가수가 된 것처럼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호성을 지른다. 그러다 7살 아들은 기억에 남는 노래를 한 소절씩 따라 불렀다. 하지만 <한동안 뜸 했었지> 노래는 한 소절씩 따라 부른 다른 노래 그 이상으로 아들에게 다가왔음에 틀림없었다.


“혹시 그 노래 <한동안 뜸 했었지> 아니야?” 

남편이 기억났는지 제목을 생각해 냈다.

“맞는지 한 번 들어볼까?”

나는 불이 꺼진 방에서 핸드폰으로 <한동안 뜸 했었지> 노래를 아이들에게 들려줬다. 이 노래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1978년도에 발매되었다는 것과 ‘사랑과 평화’란 가수가 부른 건 검색 후 처음 알았다.


 한동안 뜸했었지
 웬일일까 궁금했었지
 혹시 병이 났을까
 너무 답답했었지
 안절부절못했었지
 

속절없이 화풀이를
 달님에게 해대겠지

 

  단순한 가사 반복에 리듬이 재미있는 노래였다. 아들은 신이 나서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아들이 처음에 ‘따따따~’라고 부른 부분이 ‘속절없이 화풀이를 달님에게 해대겠지’ 이 부분이었다. 이 부분의 리듬이 아들의 머릿속에 쏙 하고 박혔나 보다. ‘속절없이 화풀이를 달님에게 해’ 이 부분까지는 딱딱 한 글자씩 끊어주고 ‘대지’ 부분에서 리듬감 있게 ‘겠’을 강조하며 불러줘야 맛깔스러운 느낌이 나는 노래다.

 

석절업씨 하풀이를~” 

아들은 어설픈 발음으로 여러 번 되새기며 가사를 외우기 시작했다.

“’속절없이’고 ‘하’가 아니라 ‘화’야. 화풀이를~”

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발음해주며 아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줬다. 

근데 ‘속절없이 화풀이가’ 무슨 뜻이야?”

그건 상대방을 못 만나서 어쩔 수 없이 달님에게 화를 내는 거야.”

노래 가사로 국어 공부까지 되니 신기했다. 

엄마 나 이거 가사 내일 뽑아줘. 이 노래 다 외우고 싶어”

이 노래가 그렇게 좋아?”

응. ‘대지’ 이 부분이 재미있어.”

 

다음날 나는 <한 동안 뜸했었지> 노래 가사를 뽑아줬다. 아들은 가사지를 보면서 첫 소절부터 읽어가며 노래를 불렀다.


엄마 나 가수 되고 싶어. 이 노래 멋있는 거 같아. ”

 

  그동안 꿈이 경찰관이었던 아들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 한 프로그램에서 들은 수많은 곡 중 엄마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이 <한동안 뜸 했었지> 노래로 말이다. 명곡은 세대를 거스르는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 노래는 헬로카봇 노래를 제치고 단숨에 아들의 최애곡으로 등극했다. TV에 나와 멋진 가수로 변신한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행복 한 스푼이 추가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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