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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Apr 02. 2021

난 시댁이 참 좋다

그리운 시어머니 음식

내가 모임에서 ‘난 친정보다 시댁이 더 편해요’라고 말하면 다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그래?'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런 반응들을 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우리 시댁이 특이한 건지 갈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도 정상이고 우리 시댁도 정상인데 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시댁이 편하고 적응을 잘했던 건 아니다. 친정과 시댁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N극과 S극처럼 정반대다.


“엄마 이번 명절에는 어떻게 할까?”

“엄마 다리 아파서 음식 못해. 나가서 뭐라도 사 먹자.”

“알았어. 힘든데 음식 하지 마. 그냥 나가서 먹자.”


난 엄마께 음식 하지 말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가끔씩은 사위들한테 음식 좀 만들어 주시지’라고 생각했고 나도 결혼하니 엄마 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다. 아마 엄마의 사랑이 더 먹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술을 안 좋아하시는 친정부모님과 술을 좋아하는 사위들이 모이면 당연히 친정부모님 승이다. 우리는 술 없는 저녁 식사를 하며 우리 자매가 그동안 못 본 사이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친정 아빠, 엄마는 조용히 식사에 집중하신다. 가끔씩 친정엄마는 평소 술을 먹고 다니는 사위들에게 ‘술은 몸에 안 좋으니 그만 먹고 다녀’ 라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늘어 놓곤 한다. 그렇게 고요한 식사를 마치면 언니와 내가 번갈아 계산을 하고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반면 시댁에 가면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남편 포함 3남매 가족과 이모님들, 외삼촌들까지 모이는 날이면 그야말로 대식구다. 그 대식구를 위해 시어머니는 아픈 다리를 이끌며 항상 음식을 직접 준비하신다. 그냥 밖에서 사 먹자는 자식들 말에 어머니는 고정 멘트를 날리신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은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어. 이 대식구들이 밖에서 사 먹으려고 해 봐라. 어디 비싸서 배불리 먹을 수나 있겠니? 내 몸이 허락하는 날 내 식구들 음식은 내가 해서 먹인다.”


시어머니도 은근 음식에 자신감이 있으신지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시곤 한다.


“이래 봬도 내가 예전에 식당 하라는 얘기 많이 들었다. 내 음식 맛 아직 쓸만해”


그런데 시어머니 음식은 정말 맛있다. 웬만한 식당보다 맛있어 어떤 때는 남편에게

 ‘오늘은 뭐 해주신 데?’라고 물으며 은근히 기대감에 차기도 한다.


메뉴도 그때그때마다 다양하다. 간단히(?) 고기를 구워 먹는 날도 있고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회를 공수해오기로 한다. 김장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보쌈이 빠짐없이 등장하고 닭백숙을 한 솥 끓이시기도 한다. 바닷가 여행을 갔다 오신 후에는

 

“너희들 줄려고 킹크랩 넉넉히 사 왔으니 어서들 많이 먹어라.”


하며 한바탕 킹크랩 만찬이 벌어진다. 술이 등장하면서 화기애애한 식사자리는 2~3시간 가까이 이어지다 한밤중에야 마무리된다.


친정에선 나는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다 큰 어른이지만 시댁에선 내가 마치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40이 되어서도 부모님이 사랑을 주시면 이렇게 행복하다니 그 사랑을 계속 느끼고 싶다. 이순간만큼은 그냥 철없는 아이가 되고 싶다. 특히 시어머니 음식 앞에서 나는 그야말로 무장해제된다. 어린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 엄마처럼 시어머니는 맛있게 먹고 있는 자식과 며느리, 손주들을 뿌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신다. 시어머니는 가족들을 위해 사랑을 담아 정성껏 요리하셔서 기쁘고 우리 자식들은 그 사랑을 온전히 느끼며 맘껏 먹어서 기쁘다. 엄마에게서 못 느낀 정을 시어머니가 대신 채워주신 기분이 들었다.


비단 음식만으로 시댁이 편한 건 아니다. 예의를 지키면서 며느리를 편하게 대해 주시는 시어머니의 배려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얼마 후 그날도 시댁에서 저녁식사를 거하게 한 후였다. 정리를 하려고 엉덩이를 들려는 찰나에


“우리 설거지 담당은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며느리만 설거지하라는 법 없지.”


갑자기 시어머니께서 외치셨다. 형님과 둘째 며느리인 나를 포함한 나머지 가족은 모두 ‘좋아 좋아’를 외치며 가위바위보를 준비했다. 우리 가족은 은근히 아무것도 안 하신 시아버지가 걸리기를 바랐다. 이번이 시아버지에게 설거지를 맡길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비장해졌다. ‘설거지 안 할 좋은 기회야. 절대 지면 안돼’를 마음속으로 외쳤다. 시아버지를 포함하여 모두들 '나만 걸리지 말자' 마음으로 가위바위보를 했다.


“가위바위보”

"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속에서 혼자 망연자실한 표정을 고 계신 시아버지가 보였다. 그랬다. 모두의 바람대로 패자는 시아버지였다.


“에이 다시, 다시 하자”

“그런 게 어딨어요. 약속대로 아버지가 하시면 돼요.”


옆에서 시누이 언니가 거들어 최종 패자는 시아버지로 확정됐고 그날 설거지는 시아버지가 혼자 다 하셨다. 마무리도 유쾌하게 하는 시댁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날 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가족 분위기에서 자란 남편이 부러웠다. 항상 자존감 높은 남편이 신기했는데  이런 든든한 가족과 함께하니 자존감도 높았던 거구나. 나도 원래부터 이 집의 식구였다면 지금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지금이라도 이 집의 며느리가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나? 친정에서 난 왜 이런 사랑을 못 느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얼마 전 된장이 다 떨어져 마트에서 새로 산 된장으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마트에서 된장을 산적은 결혼하고 처음이다. 결혼 후 된장 담당은 항상 우리 시어머니였다.


“사 먹는 된장은 맛없어서 못 먹어. 이건 시골에서 직접 담근 거라 맛있어”


하며 떨어질만하면 챙겨주셨다. 내가 하노이에 가기로 했을 때 다른 건 몰라도 시어머니가 주신 된장은 꼭 챙겨 오고 싶었다.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그 마음과 맛을 알기에 그거라도 가져와서 어머니의 음식 냄새를 느끼고 싶었다. 고이 품고 온 그 된장은 하노이에 온 1년 7개월 동안 내가 한 음식에서 조금이나마 시어머니의 사랑과 손맛을 느끼게 해 줬다. 이제는 사랑스러운 구수한 냄새 대신 낯선 냄새가 진동하니 우리 집 부엌도 낯설게 느껴진다.

 시어머니의 음식을 무장해제하고 맛있게 먹는 날이 언제 올까?  나에게 가족의 사랑이 무언지 가르쳐준 시댁이, 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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