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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Jul 18. 2021

연리지처럼

꿈꾸는 가족의 모습

얼마 전 기사를 통해 가수 이지훈이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1996년에 꽃미남 외모와 더불어 ‘왜 하늘은’ 이란 노래를 불러 데뷔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은 가수다. 그가 14살 연하의 일본 여성과 결혼한다는 소식보다 나를 흥미로 이끈 점은 그의 신혼집이 공개되고나서 부터다. 기사에 따르면 그의 가족은 서로 돈을 모아서 5층짜리 단독빌라를 지었고 그 집에 가족과 다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1층에는 부모님, 2층은 형 네 가족, 3층은 누나네 가족, 4층은 이지훈 네 부부.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주거 형태를 보고 나서 나는 '힘들겠다'와 '부럽다' 란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힘들겠다'는 감정은 순전히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겼. 아무리 넓고 잘 지어진 집이라 할 지라도, 아무리 사이좋은 사이일지라도 시댁 식구들과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바로 옆집에 살아도 신경쓰이는데 한 집의 위아래층을 쓰면 언제든지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어 사생활이 보장될까 의문이 든다. 며느리 입장에서 가뜩이나 어려운 시댁 식구들과 이렇게 지내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매일 얼굴 보며 안부 인사를 드려야 하고 부부끼리만 외식을 나가고 싶어도 옷을 편히 입고 싶어도 괜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또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 언제든지 시댁 가족들과 불쑥 마주할 수 있고 친구를 집에 부르는 일도 편치 않을 것이다. 이지훈 본인도 ‘결혼을 포기하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 며느리 입장에서 이런 주거 형태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두 번째로는 이지훈의 부모님과 형제자매 입장에서 봤을 때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는 내가 초등학생 시절 ‘이렇게 살아 보고 싶다’는 가족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외할머니가 계셨고 외갓집과 가깝게 지낼 때라 이모, 삼촌들과 함께 넓은 집에 모여 다 같이 사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가족은 할머니, 엄마 아빠, 이모네 부부 세 쌍, 삼촌네 부부 한 쌍, 결혼 안 한 막내 이모, 사촌들과 언니와 나까지 9명, 가족만 총 20명이다. 집에는 방이 대략 16개, 화장실은 7개가 있으며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넓은 거실이 있고 각자의 가족이 생활할 수 거실도 따로 있다. 집 앞에는 넓은 정원이 있고 그곳에 꽃과 채소와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할머니, 엄마와 이모는 우리가 학교에 간 사이 정원에 물을 주고 채소를 따기도 하고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하며 먹거리를 준비한다. 우리는 학교가 끝나면 사촌들과 정원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삼촌, 이모들이 퇴근하고 오시면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저녁식사 시간에 넓은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게 식사를 하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이야기한다. 식사 중 한바탕 큰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고민거리가 있으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힘을 얻는다. 설거지는 당번을 정해 가족들이 함께 한다. 식사를 마치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쉰다. 나는 사촌 언니 방으로 가서 언니가 즐겨 듣는 음악을 함께 듣는다. 우리 집은 다 함께 모일 수도 있고 각자의 프라이버시도 존중되는 그야말로 '따로 또 같이'가 통하는 곳이다.


지금에서 보면 이는 지극히 순수한 초등학생다운 생각이었고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이상(理想) 속에나 존재하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어른이 되어 대가족과 한 집에서 산다고 가정한다면 해결해야 될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우선 집을 얻거나 지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가족 간의 이해관계도 맞아야 한다. 서로 직장의 위치와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있는지도 중요 고려 대상이다. 집안일과 관리비 등은 어떻게 해야 공평할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가족끼리도 사이가 좋아야한다.


내가 한때  함께 살길 희망했던 그 가족들은 지금은 직장을 찾아 멀리 떨어져 산다. 몇 년 만에 한 번 보는 사이로 이웃사촌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었고 돈 문제가 엉켜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주고받으며 오해가 쌓여갔다. 우린 가족이란 실타래로 묶여 있었지만 서로 각자의 매듭을 지으며 실은 점점 엉켜갔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그 시작점 조차 찾기 쉽지 않다.


내 경험으로 짐작해 보면 이지훈네 가족이 함께 살자고 결정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된 요소는 아마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돈의 이득과 각자의 욕심보다는, 함께 살면서 겪게 될 고충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들이 원했던 것은 기쁜 일과 힘들 일 앞에서 가족이 함께 부둥켜 안아 기뻐하고 서로를 감싸고 위로해주는 행복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때 꿈꾸던 가족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꼭 다 같이 살지 않더라도 가족끼리 자주 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맛있는 거 해 먹고, 이야기 웃음꽃을 피우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로 용기를 주는 든든한 버팀목과 같은 존재 말이다. 힘들고 지칠 때 기대 쉬고 싶을 때 부모라는 이름의 나무가 한그루라도 있는 게 낫고, 한그루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채워진 빽빽한 숲이 더 든든하게 느껴진다. 이 든든함은 세상은 안전한 곳이고 내가 언제든지 무너져도 나를 일으켜 주는 존재들이 주변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 어른이 되어보니 이런 가족의 모습을 유지하는건 참 힘든 일이 었다.


숲에서는 가끔 연리지(連理枝) 현상이 일어난다. 우종영 작가가 쓴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서 연리지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무가 가까이 자라면 약육강식에 의해 한 나무가 죽게 되지만 의기투합해서 두 나무가 한 나무가 되면 거대한 나무가 된다. 몸집이 커지니 뻗어나갈 수 있는 가짓수도 많아지고 병충해 같은 외부 재해로부터도 강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쳐지기 전의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흰꽃을 피운 가지엔 흰꽃이 피고 붉은 꽃을 피웠던 가지엔 붉은 꽃이 핀다. 연리지가 된 나무가 크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따로 또 같이 그렇게 제 색깔을 유지하면서 한 발짝 물러서서 한 몸을 이룰 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가족도 연리지처럼 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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