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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Mar 18. 2021

접는 김밥에 도전해 봤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안 통하네

“혹시 접는 김밥 알아요? 요즘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핫하더라고요.”독서모임을 같이 하는 한 언니가 말했다.

“접는 김밥이요? 그게 뭐예요?”

“접어서 먹는 김밥인데 자기가 넣고 싶은 재료를 넣고 돌돌 마는 게 아니라 접어서 먹는 거예요.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먹으니 재미있어해요. 꼭 요리 교실 하는 거 같아요.”

“오~ 재미있겠어요.” 내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언니, 그거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우리 집에서도 딸이랑 자주 해 먹어요. 남편도 만들면서 재미있다고 또 해 먹자고 해요.” 옆에서 듣고 있던 동생도 거드니 더 도전해 보고 싶어 졌다.

 

  평소 김밥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간 반가운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하노이에 와서 김밥은 나의 최애 음식 되어 버렸다. 한국처럼 다양한 재료를 구해 한식을 해 먹기 쉽지 않은 탓에 항상 먹는 음식을 또 해 먹곤 한다. 그중에서 아이들도 함께 먹을 수 있는 김밥을 가장 자주 해 먹는다. 어느덧 나는 밖에서 사 먹는 김밥보다 내가 만든 김밥이 더 맛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 입맛에는 그랬다.


 김밥을 자주 만들다 보니 어느새 나만의 루틴이 생겼다. 김밥은 준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루틴을 만들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사실 김밥에는 어떤 재료를 넣어도 맛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재료를 준비하면 된다. 내가 김밥 만드는 루틴은 이렇다. 먼저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밥을 안친다. 밥이 만들어지는 동안 준비한 재료를 준비한다. 당근은 씻고 채 썰어 후추와 소금 간을 하고 볶는다. 단무지와 우엉은 물이 담가놓고 안 좋은 물질을 걸러낸다. 햄과 어묵은 길게 자른 후 기름에 살짝 볶는다. 게 맛살은 길게 3등분으로 자르기만 한다. 밥이 완성되면 밥을 덜어내 식히면서 소금, 참기름, 깨소금을 뿌리며 간을 해준다. 이쯤 되면 집안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난 이 냄새를 참 좋아한다. 김밥 하나 만드는 것뿐인데  잔칫집이 된 거 마냥 기분이 들뜬다. 마지막 재료는 계란지단이다. 계란 5-6개를 풀어 얇게 여러 장 부친다. 다 부치면 겹쳐서 채 썰어 식힌다. 준비된 재료를 식탁에 진열하면 이제 돌돌 마는 임무만 남았다. 식힌 밥을 김에 얇게 깔고 재료들을 차곡차곡 넣는다. 흐트러지기 쉬운 당근은 단무지와 햄을 양 옆에 기둥으로 세워 그 사이에 채워 넣는다. 김밥을 10줄 정도 만들면 재료가 어느 정도 소진된다. 이제는 기둥처럼 쌓인 김밥을 썰 차례다. 자르기 전, 김밥과 썰 칼에 참기름을 바른다. 참기름을 바르면 윤기가 자르르 흐르며 더욱 먹음직스럽다. 예쁘게 썰고 그릇에 담으면 이제 맛있게 먹는 일만 남았다.


  이렇게 먹던 김밥이었는데 다르게 먹는 방법이 있다고 하니 내 귀는 더 솔깃해졌다. 마음속으로 ‘한 번 만들어 먹어봐야지’하고 집에서 유튜브로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김밥을 이렇게 먹는 방법도 있다니 색다르게 먹는 김밥을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았다. 나는 기분이 들뜬 채로 재료를 간단하게 준비했다. 스팸, 당근, 단무지, 계란이 끝이다. 이것만 넣어도 맛있을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아이들이 하원 하기 전에 재료를 다듬고 저녁 먹을 시간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접는 김밥을 만드는 시간이 다가왔다.


“얘들아 오늘 김밥을 만들어 볼 건데 평소에 엄마가 만들어 주던 김밥이 아니라 접는 김밥을 만들 거야. 재미있겠지?”

“접는 김밥?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엄마가 만드는 방법을 유튜브로 보여줄게. 이대로 재료 넣고 이렇게 접기만 하면 돼.” 접는 김밥 만드는 화면을 유튜브로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재미있겠다며 흥미를 보여 내심 뿌듯했다. 아이들이 화면을 보고 재료를 넣기 시작했다.

“엄마 밥 어떻게 넣는 거야?” 예상과 달리 밥 넣는 것에서부터 아이들은 헤매기 시작했다.

“엄마 김이 찢어졌어.” 2호의 외침이 들린다.

“어차피 접을 거니 조금 찢어져도 괜찮아.” 나는 애써 아이를 위로했지만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즐거운 김밥 만들기 시간'은 어딘가 삐그덕 거리고 있었다.

 “엄마 나 당근 안 넣을래.” 1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야채는 조금이라도 넣어야 해.”

“그럼 진짜 조금만 넣는다.” 1호는 당근 3가닥을 집어 든 체 자기 김밥 속으로 넣었다. 내 속은 부글부글 했지만 이 시간은 ‘즐거운 김밥 만들기’ 시간이 아니던가.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

“이제 다 접었으면 양손으로 들고 먹으면 돼.”

아이들은 김밥을 양손에 집은 체 먹기 시작했다.

“엄마 김밥이 자꾸 벌어져” 1호가 말했다. 정말 그랬다. 김이 벌어진 사이로 재료가 떨어지기 시작한 거다. 심지어 1호는 재료들을 하나씩 빼서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먹는 거 아니야. 재료만 먹으면 짜. 한꺼번에 손으로 잡고 먹어야지.” 내가 아이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부푼 마음으로 머릿속에 그려온 요리하는 모습은 이미 저 세상으로 간지 오래다.

 “엄마 나 맛없어. 그만 먹을래.” 잠시 후 1호가 먹기 포기를 선언했다. 맛있을 수밖에 없는 조합이 맛이 없다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럼 엄마가 평소 먹던 김밥처럼 말아줄까?”

“응”

나는 평소대로 김밥에 재료를 넣고 돌돌 말기 시작했고 아이는 그 김밥을 들고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곧이어 남편이 들어왔다.


“김밥 만들고 있었어?”

“응. 오늘은 직접 만들어 먹는 접는 김밥이야.”

“그게 뭐야?”

“내가 유튜브를 보여줄게. 그대로 재료 넣고 만들면 돼.”

화면을 본 남편이 결정적인 한마디를 날렸다.

“아우 귀찮아. 나 그냥 밥 먹을래.”

“······”

 남편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꺼내 볶고 밥 위에 얹어 먹기 시작했다. 난 씁쓸한 기분으로 남아 있는 재료를 넣어 평소 우리가 먹던 김밥처럼 돌돌 말았다. 다른 집 남편과 아이들은 재미있어하며 맛있게 먹었다 길래 우리 집도 그런 줄 안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처음에는 기분이 상했지만 ‘다른 집에서 즐겁게 한 놀이가 우리 집에서는 재미없을 수도 있지.’라고 다름을 인정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앞으로 우리 집은 무조건 돌돌이 김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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