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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Mar 23. 2021

죽음을 맞이하는 나의 자세

우리 할머니

  1994년 내 나이 14살 어느 날,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내 기억 속에 할머니 모습이 저장된 날이. 할머니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가족은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평소 간경화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한 할머니의 모습을 봐왔던 터라 집으로 오신다고 했을 때 기뻤다. 병이 다 나아서 오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마주한 할머니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건강한 모습이 아니었다. 더 비쩍 마른 몸, 해골을 연상케 하는 얼굴, 하얗게 쇤 머리, 실핏줄이 올라온 손,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위태한 모습으로 할머니는 방에 누워계셨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병이 다 나아서 집으로 오신 게 아니라 병원에서 더 이상 손쓸 수 없어 집에서 마지막 여정을 보내기 위해 오신 거였다.


  며칠 후 할머니는 75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임종 소식을 듣고 할머니 집으로 갔을 때 할머니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고 대신  할머니가 누우신 자리에 병풍이 하나 쳐져 있었다. 병풍 너머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계신 거였다. 그 병풍은 마치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경계선 같았다. 한쪽에는 산 사람들이 있고 반대편에는 죽은 할머니가 계시다. 하루 사이에 할머니와 나 사이에는 다시는 건너올 수 없는 경계선이 쳐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 경계선을 넘으면 죽음의 나라로 갈 것만 같아 차마 넘을 수 없었다. 내가 그 경계선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동안 서산에 계신 큰 이모가 울면서 달려오셨다. 이모는 바로 병풍을 걷어내고 할머니에게 달려가셨다. 병풍 뒤에서 ‘엄마, 엄마’라고 부르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이모를 따라 ‘할머니, 우리 할머니’라고 외쳤다. 그 당시 나는 이모가 할머니를 따라 죽음의 나라로 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이 장면은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목격한 순간이다. 당시 14살이었던 나는 더 이상 죽음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내 곁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걸 알았다.


  할머니의 사망 원인은 간암이었다. 간암은 평소에 술을 많이 마셔야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그렇지 않다. 우리 외가쪽 가족은 모이면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엄마로부터 물려받고 또 할머니의 엄마는 또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모계 직속 B형 간염 환자들이다. 현재 우리 엄마가 그러하고 우리 이모, 삼촌들도 그러하고 나 또한 그렇다. B형 간염주사가 없던 시절 속절없이 병을 물려받아야 했던 거다. 이 병을 더 이상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없어 내 1,2호에게는 태어나자마자 B형 간염주사를 맞혔다. 내 마지막 모습은 어떨까 상상하면 항상 할머니가 떠오른다. 나도 ‘할머니와 같은 이유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구나’라고 항상 생각했다.


  나중에 엄마에게서 들은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이랬다. 할머니는 평소대로 새벽에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고 이웃에게 인사말을 하고 방 청소를 깔끔하게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누워서 편안한 모습으로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주삿바늘,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는 모습과는 다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의 마지막 모습도 할머니처럼 편안하게 고통 없이 맞이하고 싶어졌다.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가 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책을 통해 ‘Well-dying’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는 암으로 10만 명 당 150명의 사람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2위를 기록한 자살은 10만 당 24.3명의 수준이다. 1위와 2위를 비교해보면 얼마나 압도적인 차이로 암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많은 지 알 수 있다. 문제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모습이다. 지금은 90년대와 다르게 대부분의 죽음을 병원에서 보낸다. 임종을 앞둔 몇 개월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시간도 갖지 못한 체 죽음을 맞이한다. 병원에서는 끝까지 병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강한 항암제를 투여하고 대신 통증을 조절하는 모르핀 사용량은 현저히 낮다. 이유는 모르핀을 처방하면 예산이 삭감되고 의사가 처방하고 싶어도 처방할 수 없는 시스템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2017년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법’이 제정되어 2018년 2월부터 스스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무의미한 진료를 거부하기 위해 환자가 건강할 때 미리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면 명시적으로 본인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란 19세 이상의 사람이 향후 겪게 될 임종 단계를 가정해 연명의료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미리 밝혀두는 문서를 말한다. ‘국립 연명의료관리기관’이란 곳에서 등록기관을 검색하고 신분증을 지참 후 방문하면 작성할 수 있다.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용인시를 쳐보니 총 6군데에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도 이 문서를 작성할 것이다.


  

자기 의지대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마지막 모습은 조금이나마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니 역으로 삶이 너무 소중해졌다. ‘죽어서도 후회 없이 지금 현재 내 앞에 주어진 삶을 더욱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말이다. 내 꿈은 우리 할머니가 그랬듯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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