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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Jul 02. 2021

아빠, 괜찮아

아빠의 퇴직

“엄마 내일 화분이랑 꽃바구니가 배달될 거야.”

“웬 꽃바구니라니?”

“아빠 이제 퇴직하시잖아.”

“아이고 그거 비싼데 뭘 그런 걸 보내.”

“그동안 일하시느라 수고하셨다고”

“꽃 비싸고 금방 시드는데…….  세상에 우리 딸내미밖에 없네 고마워."


난 이상하게 아빠에게 직접 전해줄 말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하고 엄마로부터 아빠 소식을 듣곤 한다. 아빠와의 통화 중 대화 중간중간에 흐르는 어색한 침묵이 그동안 불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감정표현에 서툴고 무뚝뚝하신 아버지. 아빠가 주로 하시는 말은 정해져 있다. 오늘은 다를까 싶어도 절대 이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빠, 식사는 하셨어요?’”

“응. 먹었어.”

 “아빠, 몸은 좀 어떠세요?”

“응. 괜찮아.”

“일은 힘들지 않아?”

“뭘 힘들어. 괜찮아.”

엄마로부터 아빠가 허리를 삐끗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도

 “괜찮아, 괜찮아. 이제 다 나았어. 아무렇지도 않아.”


꽃과 화분을 보내고 전화를 드렸다. 이날은 좀 다르시려나.


“아빠, 꽃하고 화분 받으셨어요?”

“응. 잘 받았어. 고맙다.”

“그 화분이 행운과 부귀를 상징하는 ‘황금죽’이래. 아빠 퇴직도 하셨고 앞으로 건강 챙기시고 집에 좋은 일만 가득하라고”

“그래. 고맙다.”


 역시나 아빠는 이날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평소와 똑같은 톤에 ‘괜찮아’에서 ‘고맙다’로만 바뀌었을 뿐.

‘괜찮아’, ‘고맙다’ 이 두 말은 아빠가 가장 잘하는 말이다. 진짜 괜찮은 건지 아니면 괜찮은 척을 하시는 건지 그 속을 알 수 없어 답답할 때도 있지만 자식 걱정 안 시키려는 아빠 마음을 알기에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 나이 74세. 아빠는 약 10년 가까이 일하신 아파트 경비직에서 2021.7.1일 자로 퇴직하셨다. 엄밀히 말해 정년 이전에 퇴직하는 명예퇴직도 정년을 다 채우고 떠나는 정년퇴임도 아니었다. 아빠는 아마도 아파트 관리인으로부터 ‘나이가 너무 많으니 이제 나오지 마세요’란 말을 갑자기 들으셨을 것이고 2-3년을 더 일하고 싶었던 아빠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일을 하길 원했고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니 이 나이에 소일거리라도 할 수 있는 걸 다행이라 여기셨다.


하지만 나에게 아버지의 퇴직은 명예로운 퇴직 그 자체다. 지금까지 아무 탈없이 가족 옆에 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30대 때부터 70대인 지금까지 근 40년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애쓰셨다. 그 과정에서 수 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했다. 무역회사 과장, 레스토랑 사장님, 전기기사, 부동산 중개인, 세일즈맨, 택시 기사, 경비원 등 아버지를 거쳐간 직업도 족히 10개는 넘을 것이다. 비록 많은 돈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살기 위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끊임없이 일을 찾아 나섰다. 그 길이 어찌 밝기만 했을까. 그 길 위에는 꽃보다는 차마 마주하기 싫은, 더럽고 피하고 싶은, 자존심 상하는 일들 천지였으리라. 난 일을 구하러 나가시는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와 근심 가득한 표정을 보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모습을 보고 삶의 무게를 짐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결코 삶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제든지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난 이런 삶의 지혜를 몸소 깨닫고 쓰러질 만하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신 아버지를 진정으로 존경한다.


어느새 아버지 머리는 희끗희끗해지고 그마저도 빠져서 휑하다. 허리와 어깨는 살짝 굽어지고 틀니를 끼시는 아버지. TV를 볼 때 멍한 표정을 잘 짓는 아버지. 자신에게 천 원 한 장 쓰는 것도 아까워하시는 아버지. 항상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지만 내 눈에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은 아버지. 내가 기억하는 2년 전 아버지의 모습은 이러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 어떤 모습의 아버지를 마주하게 될까. 아빠가 나에게 수없이 해준 ‘괜찮아’라는 말을 이젠 내가 아버지에게 해주고 싶다.


''아빠 이젠 삶의 짐을 내려놓고 본인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사셔도 괜찮아. 아빠는 그럴 자격 있어. 충분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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