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해외 출장 후, 나를 다시 찾은 10km 완주
매일 아침 한강 둔치를 달리는 것이 나의 루틴이었는데, 이제는 달리지 않는 것이 나의 루틴이 되어 있었다. 지난 3~4개월 동안, 러닝은 내 삶에서 마치 잊혀진 낙서처럼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러닝과 독서는 내 인생의 중요한 루틴 중 하나였는데, 지난 9월부터 연이은 출장으로 인해 이 루틴이 깨졌다.
출장 일정:
9월 1일~1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14박 14일)
9월 26일~10월 2일: 인도 (7박 7일)
10월 2일~10월 5일: 말레이시아 (3박 4일)
11월 4일~11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4박 5일)
11월 11일~11월 15일: 홍콩 (4박 5일)
11월 27일~11월 29일: 베트남 (2박 3일)
지난 3개월 중 약 40일을 해외에서 보내며 다양한 국가를 이동했다. 이런 바쁜 출장 일정 속에서 운동은커녕 체력은 떨어지고, 살이 찌면서 점점 나태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지막 베트남 전시회가 끝난 후에는 약간의 번아웃까지 왔다. 일이 하기 싫어지고, 다 내려놓고 싶었다.
과거의 경험을 반추해 봤을 때, 이럴 때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 어설프게 뭘 하려고 하면 안 된다.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무장적 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가급적 평일엔 일을 만들지 않고, 해야 할 일들만 하며, 주말엔 최대한 심신을 쉬게 하려고 노력했다. 명상, 멍 때리기 등 나를 얽매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기 위해 노력했더니 점차 회복이 되기 시작했다. 회복이 되었단 의미는 예전의 나로 돌아간 것이 아닌 이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소리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늘어난 몸무게로 무거워진 나 자신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회복이 시작되었다. 이제 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러닝이었다.
막상 달리려고 해 보니, 매서운 겨울 추위가 찾아왔다. 일요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 핸드폰을 보니 영하 10도였다. '이 추위에 뛰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너무 오랫동안 운동을 안 했으니 10km를 뛸 수 있을지 걱정되었고, 체력이 떨어지고 몸무게가 늘어난 상태에서 괜찮을까 고민했다. 러닝 거리를 줄일까, 아예 뛰지 말까 스스로와 계속 타협하며 시간을 보냈다. 러닝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구간은 침대에서 현관 까지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나태한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배워 놓은 명상이 이럴 때도 유용했다. 명상을 통해 그런 나를 내려놓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현관으로 달려가는 건 어렵지만,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아 10분 정도 명상을 하면 현관까지 달려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군대에서는 더 추운 날에도 상의 탈의로 러닝을 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옷을 껴입고 하는데 못할 게 뭐람?'이라고 생각하며 무작정 출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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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몸을 충분히 데운 후 나가니 생각보다 덜 추웠다. 영하 10도의 추위는 내 걱정이 만들어낸 북극이었다.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니 몸이 기억을 해냈다. 이 추운 날씨에도 한강을 뛰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는 서로를 신경 쓰지 않지만, 힘들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페이스를 조절하며 한강에서 러닝을 하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응원을 받으며, 생각 없이 뛰다 보니 어느새 9km를 달렸다. 이쯤 되니 무릎과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만할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나의 나태함과 싸워 물리쳐 보고 싶었다. 그 승리의 증표가 10km 완주다. 그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10km를 완주했다.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말하고 싶다. 10km를 완주하며 느낀 성취감은 단순히 거리를 뛰어넘는 기쁨이 아니다. 나태했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첫걸음이었기에 더욱 값지다. 다시 자신감을 얻었고,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목표를 세워 도전할 준비가 되었다. 올해를 멋지게 마무리하며 내년엔 더 나은 나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