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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하는 CEO Aug 20. 2021

프랑스 화장품 대기업과 일하기 _ 06마지막 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 경영진이 보고 싶어 하는 JASON 

프랑스 본사 구매팀으로부터 온 메일의 내용은 이랬다. 


Dear Jason, 

I hope you have been great at all times. 

I inform you that some of our C-levels will visit Korea in 2 weeks. They would like to meet you. Actually, a regulatory team leader wants to meet you. 

Please let me know when you will be available and I will arrange a meeting for you. 

Thank you. 
Best regards, 



경영진이 날 보고 싶어 한단다.... 좋은 일로 보는 것이었으면 좋았으련만, 경험상 이번엔 결코 좋은 일로 보자는 것이 아님은 알았다. 그간 우리가 저지른 수많은 Major 한 실수들이 떠 올랐다. 순간 너무 피하고 싶어 퇴사 욕구가 솟구쳐 올랐지만, 가벼운 통장 잔고를 생각하며 다시금 마음을 잡았다. 미팅을 잡고 보니 미팅은 2주 뒤였고, 남산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었다. 

 

2주가 정말 손살같이 지나갔다. 여전히 엄청난 업무 양을 소화하며 이메일은 또한 여전히  'I am sorry for that~'으로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포라는 하다가 안되면 말고 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는 '전사적'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렸다. 비록 초기엔 모두 아무것도 몰랐지만, 전 직원 모두가 세포라의 성공적인 런칭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 경험으로 인해 회사는 큰 성장을 할 수 있는 초석을 다졌다고 생각한다. 


2주의 시간이 지나 미팅을 하기 위해 남산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로 출발했다. 글로벌 대기업답게 호텔과 연간 계약을 맺고 직원 출장 시 사용한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그랜드 하얏트 호텔을 가봤다. 사실 해외 출장을 다니다 보니 국내 호텔 갈 일이 별로 없긴 했다. 


미팅 장소는 호텔 커피숍이었다. 영업 사원은 항상 미팅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있어야 한다는 철칙이 있기에 그날도 미팅 시간 20분 전에 도착해있었다. 자리에 앉아 차분히 자료 검토와 미팅 준비를 했다. 미팅 시간이 다가왔고, 누가 봐도 세포라 임원으로 보이는 세 분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4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세련된 외국인 3명이 테이블 앞자리에 앉았다. 


먼저 서로 통성명을 했다. 구매팀 이사, 품질팀 이사, 개발팀 이사였고, 이메일 참조에 많이 봤던 사람들이었다. 사실 좀 믿기지는 않았다. 글로벌 화장품 대기업의 이사님들이 내 앞에 있다니... 그것도 세명씩이나... 


살짝 감격에 겨워지려고 할 찰나 미팅의 목적을 생각하고 정신을 차렸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브리핑을 해야 했고, 또 색다른 방법으로 사과를 해야 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 개발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 진행되게 하는 것이었다. 


나의 브리핑이 끝나고 구매팀 이사가 말을 했다. 

한국에는 세포라 공급업체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과 미팅도 하고 시장조사도 할 겸 겸사겸사 방문한 것이고, 일반적으로는 매출 규모가 큰 공급업체들과만 미팅을 한다고 했다. 각자의 스케줄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셋이 같이 오긴 했지만 같이 미팅을 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살짝 의아해했다. 

'우리는 사실 아직 공급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고, 매출 규모도 다른 공급업체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되는데, 왜 이사님들이 세명이나 같이 미팅을 하고 있지?' 


다음 말을 듣고 이해가 되었다. 사실 아직도 7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I've never seen a supplier like your company, what's wrong with you? 


당신 회사와 같은 공급업체를 본적이 없습니다 라니... 그 말을 듣고 순간 내 귀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의구심이 들었다. 나를 특정해서 심한 말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하니, 세포라의 공급업체들은 사실 수준이 높고, 서로 최고의 전문가들이 상대하기 때문에 약간의 실수도 용납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조그만 실수도 아닌 Major 한 실수들을 매일 같이 하는 회사였으니, 저런 말을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나 궁금했으면 세 명이나 미팅에 참석을 했겠는가? 


멘털적으로 약간의 위기가 있었지만, 사과의 달인답게 빠르게 인정하고 미리 준비한 변명(?)과 함께 대책을 읊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반대로 빠른 인정은 관계 회복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매일 실수는 했지만, 다행인 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았다. 그저 글로벌 대기업과 협업이 처음이기 때문에 경험 부족이 주된 요인이었다. 국내와 해외의 문화적, 용어적, 시스템적인 차이도 있었다. 


 대면 미팅이었기 때문에 심각해질 수 있었던 분위기는 나의 빠른 인정과 미리 준비해온 대책 때문인지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믿어보자는 분위기가 되었고, 다행히 마무리는 화기애애했다. 사진도 한 장 남겼지만, 초상권 침해 문제로 인해 기재하진 않겠다. 


그 뒤론 사과할 일이 많진 않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고객과 문제 해결 능력 향상이 많이 되었다.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렇게 회의를 마무리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한국에 오신 손님들이기 때문에 식사 대접을 하려고 했으나 바쁜 스케줄 때문에 커피숍에서 마신 커피만 우리 회사에서 내기로 했다. 결제를 하기 위해 계산서를 보는 순간, 금액을 보고 눈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 4명이서 그저 커피와 차를 마셨을 뿐인데 7만 원이 넘게 나왔다. 호텔 커피숍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호텔 물가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래서 다음부턴 호텔에서 미팅하지 않는다. 역시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미팅을 마치고 다시 현업으로 복귀했다. 한 번 얼굴을 보고  미팅을 하고 서로의 입장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해서 그런지 세포라 쪽도 더 협조적이었고, 우리도 Major 한 실수는 하지 않았다. 여전히 업무 양은 많았지만 나름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그토록 기다리던 발주서가 접수되었다. 8개월 동안 몸과 마음고생을 하며 이 발주서 하나를 얻기 위해 달려온 것이 아닌가? 기쁘기도 했지만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수능 시험 마치고 고사장을 나오는 기분이랄까? 


발주서 내용은 5 품목, 총수량 50만 개, 금액으로는 약 2억여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 당시 회사의 연 매출이 50억 원 정도였는데 한 번에 5%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주한 것이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니 나와 회사는 한 단계, 두 단계 성장을 했다. 그 뒤로 세포라와는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수많은 제품을 론칭했고, 회사의 매출 성장에 많은 기여를 했다. 


개인적으로 그들과의 협업 경험을 통해 뜻하지 않게 유럽 수출 전문가가 되어 있었고, 두 차례의 세미나 강연까지 할 수 있었다. 그 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입사 2년 만에 대리에서 차장으로 승진하며 팀장 직책을 달게 되었다.

 

What makes you comfortable can ruin you. Only in a state of discomfort can you continuously grow. 
당신을 편하게 하는 것은 당신을 망칠 수 있고,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은 당신을 지속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세포라와 업무를 하며 정말 너무 불편했고, 너무 불편하다 못해 퇴사하겠다는 마음을 몇 번 먹었다. 하지만 그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을 견뎌냈고, 결국 나와 회사는 성장을 했다. 그렇게 팀장이 되었고, 좋은 팀원들을 만나 영업팀과 회사는 더욱 성장을 거듭했다. 회사의 성장과 더불어 팀원들도 역할을 잘해주었기 때문에 팀장인 나는 사실 편해졌다. 팀장의 고충도 있긴 했지만 세포라와 직접 업무를 할 때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는 누구나 다 편함을 느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난 반대로 편함을 느끼면 두려워진다. 

편함을 느꼈다는 건 좋은 징조는 아니다. 안주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사람들이 묻는다. '아니 왜 본인이 다 만들어놓고, 회사만 좋은 일 시키고 퇴사하냐고....' 

난 말한다. 난 퇴사한 게 아니라 졸업한 것이라고... 그 편함을 느낀 시기에 졸업을 했기 때문에 그 뒤로 이사도 할 수 있었고, 이렇게 한 회사의 대표도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불편함을 받아들이자. 불편함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자. 성장이 뒤따를 것이다. 

프랑스 화장품 대기업과 일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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