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카테린부르크

우랄지방 최대의 중공업 도시

by 혁꾸

예카테린부르크


두 번째로 길었던 3일간의 열차 여행의 마침표에 도착했다. 2등석 칸 열차는 분명 넓은 침대와 함께 편안하고 쾌적했으나, 3일간 샤워를 할 수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리는 씻고 싶었다. 예카테린부르크는 당일치기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역 플랫폼을 나오자마자 역 짐 보관소에 짐을 맡길 수 있었다. 짐을 맡기고 자유로워진 두 손과 발에 기분이 들떴다.


러시아의 사우나...?


당일치기 여행이라 샤워를 할 숙소가 따로 없었던 우리는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러시아의 사우나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네이버 및 구글 검색해본 결과, 역 앞에 아주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는 '마린스키 호텔'에 사우나가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우리는 떡진 머리에 덥수룩한 턱수염을 한 거지꼴로 고급 호텔에 걸어 들어갔다. 번역기로 카운터에 사우나를 이용하고 싶다고 보여줬더니, 옆에 있는 경비원에게 우리를 안내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 들어찬 넓은 홀에는 고급스럽게 꾸며진 식당과 객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에, 호텔 경비의 따라오라는 손짓에 샤워시설이 시급했던 우리는 호텔 경비를 따라가기 위해 부리나케 일어섰다.


호텔 경비는 비상구를 통해 지하 깊숙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레슬링 선수처럼 우람한 몸과 얼굴을 하고 있는 경비원이라 심히 위축되어 있는데 어두컴컴한 지하로 우리를 데리고 내려가기까지 한다. 하지만 분명 레슬링 선수도 삼대 일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야. 우리는 작고 왜소하지만 세명의 용감한 한국인이니까.


체감상 약 지하 2층까지는 내려온 것 같다. 지하 2층으로 내려오고 나니 기다란 복도가 이어졌다. 역시나 어두컴컴하다. 복도 중간중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흑백사진이 액자에 걸려있다. 젠장, 이러다 이곳이 내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가 되는 건 아닐런지. 구불거리는 컴컴한 복도를 지나고 나자 사우나의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점점 안심하고 있었다.


우리는 카운터 직원을 따라 사우나를 구경했다. 러시아의 사우나는 우리나라처럼 대중사우나가 아니었다. 호텔의 객실처럼 우리는 사우나를 대실 해야 했다. 직원은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몇 개의 방을 보여줬는데, 모든 사우나 시설은 셋이서 사용하기에 너무 넓고 비쌌다. 하지만 절실하게 샤워가 필요한 데다,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걸,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가장 작은 사우나방을 빌리기 위해 가격을 물어봤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이번엔 가격이다. 한 시간에 1800 루블, 우리나라 돈으로 2만 6천 원 정도다. 하지만 머릿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최소 2시간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2시간까지는 사우나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비효율적인 가격에 부담스러워할 때, 갑자기 성진이가 나섰다. 성진이는 표정과 번역기를 통해 한 시간만 이용하고 싶다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직원의 "No"라는 대답에, 성진이도 "No, No, No"하며 되받아쳤다. 잠깐의 공방이 펼쳐졌는데 직원도 이런 상황이 어이가 없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진이의 한 시간을 받아들였다. 세상에, 이게 되다니 ㅋㅋㅋ 징징대서 안 되는 건 거의 없구나 ~



사우나의 진실


사우나에 입장하고 타이머가 시작됐다. 우리가 가진 시간은 1시간, 하지만 1시간이면 충분히 만족스럽게 샤워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러시아의 사우나 안에는 샤워기 하나, 탕 하나, 찜질방 하나, 방 두 개?, 소파?, 테이블? 뭐지?


우리는 사우나의 용도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세히 관찰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사우나는 사우나 겸 유흥시설이라고 볼 수 있었다. 푹신한 소파 테이블에 있는 카운터로 통하는 전화기와, 술을 구매할 수 있는 메뉴판, 스트립 봉이 설치되어있는 사우나, 야릇한 조명이 침대를 비추고 있는 두 개의 작은 방까지. 워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사우나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뚜렷하다. 들어가자마자 사우나 전원을 켜고 유리로 된 사우나 안이 증기로 가득하길 기다리며 한 명씩 샤워를 즐겼다. 제기랄, 물도 미지근한 상태가 계속 보면 분명 여기는 씻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상쾌한 샤워와 찜질을 즐겼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부르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허겁지겁 사우나에 들어온 나머지 입장한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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