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혹시 '달콤달달'인가?

은밀하지 않은 은밀한 이중생활

by 달콤달달

나는 원래 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한 발짝씩 늦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도 서른둘에 시작했고 결혼은 서른다섯에 했다. 결혼 이듬해 인 서른여섯에 엄마가 된 건 그나마 운이 좋았다. 2018년도에 인스타그램을 (역시 남들보다 늦게) 개설했다.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다고, 인생이 그렇게 늘 장밋빛일 수는 없다면서 SNS를 은근히 낮잡아 보았던 내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다니!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처음으로 꿈틀, 실체를 드러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만 한_명품스타그램, 먹스타그램, 여행스타그램 같은_ 아이템이 없는 평범한 삶이었기에 나의 시작은 그저 '책 한 권'이었다. 나와 가장 밀접한 것.


2021년에 들어 인스타그램을 본격적으로 북스타그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대놓고 #북스타그램 이라고 해시태그를 달자니 어쩐지 민망했다. #책 #책읽는밤 #오늘도읽는다 #오늘도쓴다 소심하게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책에 대한 감상을 한 줄씩 담아 피드를 채워가자 다양한 출판사와 여러 책인플루언서들의 피드가 점점 눈에 들어왔다. 빅데이터인지 알고리즘인지를 통해 '책'을 매개로 한 세상으로 내가 불쑥 빨려 들어간 것 같았다.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서평단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나와 비슷한 책쟁이들의 피드를 자주 찾게 되었다.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났고 서평의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인스타그램을 핑계 삼아 책에 한 걸음 다가가려 노력했더니 신기하게도 글이 성큼 곁을 내어주었다. 책이 멀고 멀리 있던 글과 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바람에 나는 '달콤달달'이 될 수 있었다.


2022년 새 해가 되자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이다. 제대로 집중해서 읽은 책이 없고 당연히 서평 한 편도 쓰지 못한데 반해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1월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건만 브런치에는 10편의 글을 발행했다. (그중 4편이 다음 메인에 걸렸다.) 내가 쓴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고, 좋다고 표현해주는 독자님들이 생기고, 댓글로 응원해주는 작가님들과 소통하다 보니, 고개를 푹 숙이고 혼자 걷고 있던 길이 사실은 앞에도, 옆에도 온통 같은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는 단순한 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글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나름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했으나 한 발자국씩 곱씹어보니 글의 소재가 될 만큼 강렬한 이야깃거리가 없다. 햇빛 아래 반짝 이는 조약돌처럼 빛나는 글들과 이름만 들어도 굳이 찾아서 읽게되는 작가님들 사이에서 나의 글쓰기는 무엇을 태워 빛을 발할 것인가.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보아도 책이다, 책뿐이다. 글쓰기 스승인 책에서 멀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다급함이 쾅쾅쾅! 마음을 두드렸다. 독서와 글쓰기의 균형을 맞추어야겠다. 책을 놓은 채 글만 쓰다가는 가뜩이나 부족한 필력이 더욱 밑천을 드러낼 게 뻔할 일이다.


A와 B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는 것과 건강을 위해 식단을 조절하는 것, 일과 삶 사이에도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하기 위한 줄타기는 계속되며 사랑도 중심을 잃으면 집착으로 변질되기 쉽다. 책과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칼도 매일 사용해야 녹이 슬지 않듯이 글도 매일 써야 윤이 날 것 같아 글쓰기에 몰입하다 보면 책을 읽지 못하고 하루가, 일주일이 흘러간다. 반대로 책 속에 빠져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문장을 밑줄 긋고 필사하다보면 나의 문장은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새벽을 맞는다. 고민이 깊어지는 밤에 나는 또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이라면 11시쯤 글을 마무리하고 잠들기 전 두 시간 정도는 온전히 책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브런치 알림에 낯익은 이름의 구독자 한 명이 늘었다. 짐작되는 사람이 있었지만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며칠 후 팀장님께서 카톡으로 "혹시 달콤달달이라는 필명으로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있는가?" 라며 슬쩍 내 정체에 대해 물으셨다. 'ㅎㅎㅎㅎㅎ 들켰네요, 어떻게 하셨어요?' 했더니 다음에 올라온 글을 우연히 보고 다른 글들도 읽다 보니 내가 보이더란다. 정말 친한 몇몇에게는 이야기를 했지만 주변에 브런치를 아는 사람이 드물어 은밀한 듯 은밀하지 않은 이중생활에 대해 안심하고 있었는데 팀장님이 먼저 알아봐 주시니 감사하기도 하고 드러내 놓고 자랑할 글솜씨는 아니라 부끄럽기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읽고 나를 알아봐 주길 원하면서도 그들이 알고 있는 내가 아닌 브런치 작가 '달콤달달'을 알게 될까 전전긍긍하게 되는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독자님들이 나의 글을 읽으면서 내 마음이 그 마음이라며 고개가 끄덕여지고, 어느 날엔가는 명치 끝까지 먹먹하다 못해 가슴이 찡하고, 또 어느 날엔가는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듯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그런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달콤달달'이라는 필명 대신 나의 이름 석자를 내걸고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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