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일탈을 꿈꾸는 공무원입니다.

당신의 삶에도 숨겨진 반전이 있나요?

by 달콤달달

낮과 밤의 온도 차는 요즘 같은 늦봄의 기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인과 글쟁이 사이에서도 뚜렷하게 감지된다.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하는 공무원의 일이라는 게 솔직히 재미는 없다. 어제 낮에는 지원금의 자금을 이체하고, 지출결의 문서들을 처리하고, 클린카드 부적절 사용 건에 대한 점검 결과를 취합했으며 보조금 사업비 세입이 지연된 부서에 확인 전화를 돌렸다. 처리한 업무들은 모두 법령과 지침에 의거하며 재량은 1도 끼어들 틈이 없다. 반면 달콤달달이 되어 글을 쓰는 일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다. 어젯밤에는 자료를 찾고, 송고할 기사를 쓰고, 생각나는 글의 주제에 대한 초안을 작성했다. 모든 글들은 나에게서 창작되는 결과물이다. 내 마음대로란 얘기다.


하는 일이 뭐냐고 누가 물어봤을 때 '공무원이에요.' 답했는데 '공무원처럼 안 보인다.'라고 하면 기분이 좋다. 실제의 나와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가 다르다는 데서 오는 묘한 흥분감과 더불어 '공무원스럽다'라는 말이 긍정보다는 부정적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는 걸 의식하기 때문일 거다. 고리타분하고 틀에 박힌, 무채색과 무표정으로 연결되는 이미지의 연결 고리들 말이다. 작년, 겨울이 막 시작할 때쯤 히피펌을 했었다. 미용실 원장님께 가수 설현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해주세요.’ 했는데 영화 해리포터 속 헤그리드가 되었더랬다. 아무렴 좋았다. 글쓰기에 막 재미 붙일 때라서 자유분방해 보이는 것이 조금 '방구석 작가'처럼 보이기도 했다. 공무원과 방구석 작가 사이의 간극이 내 삶의 일탈이다.

<좌, 내가 하고 싶었던 / 우, 현실의 내 머리, 이미지출처 네이버>


손목에 타투를 했다. 의미 있는 그림이나 글귀를 크지 않게 해 보고 싶었다. 티가 나지 않게 손목 안쪽으로 위치를 정했다. 머리 모양을 바꾸는 것보다 조금 더 파격에 가깝다. 공무원에게는 품위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실제로 2020년에 병무청에서 얼굴 등에 타투와 피어싱을 없애라는 명령에 따르지 않은 공무원에게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개인 표현의 자유와 공무원 품위유지 의무에 있어 무엇이 더 중한 가치인가 비교했을 때 후자가 더 중요한 덕목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사실 손목 위 작은 나비는 2주 후면 사라진다. 진피층까지 염료를 침투시키는 문신이 아니라 표피층에만 헤나 염료로 염색을 했기 때문이다. 나의 일탈은 주말에 아이, 아이 친구들, 친구 엄마들까지 함께 과학 행사에 가서 체험 활동을 통해 얻은 매우 건전한 결과물이었던 것이다.(진피, 표피 등에 대해서도 주최 측에서 친절히 설명을 해주셨다.)


반전은 일탈과 비슷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나의 반전은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데 있다. 술을 엄청 잘 마시게 보이지만 간의 해독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바, 일단 마시면 다음 날은 하루 종일 변기와 한 몸이 되거나 심한 경우 응급실 행이다. 또 하나의 반전이라면 욕을 엄청 잘한다는 점이다. 욕을 잘하게 보이지 않지만 발음과 억양을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것은 기본이고 찰지고 맛깔스럽게 욕을 할 수 있다.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 쇼를, 선 보기 하루 전에 홀딱 삭발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지는 못하지만 누구나가 알고 있는 혹은 기대하는 나의 모습에서 조금 벗어난 뜻밖의 행동들은 잔잔한 물가에 일렁이는 파동처럼 삶에 재미를 더해준다. 단, 공공연하지 않아야 한다. 술은 못하지만 지인들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서 맥주 한두 잔은 맛있게 마실 수 있고, 욕은 잘 하지만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하지는 않는다. 반전의 반전 또한 숨겨져 있을 때 맛이 산다.


내가 아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타인이 아는 나는 또 어떤 사람인가? 내가 보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는 같은가? 내가 해보지 못한, 해 보고 싶은 일탈은 무엇이며 내 안에 감춰진 반전은 무엇인가? 자문하고 답하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모른다. 그래서 MBTI나 혈액형처럼 어떤 정해진 카테고리 안에서 우리 자신을 정의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너(연인이든, 배우자든, 자식이든 그 누구이든)의 속마음을 궁금해하기 전에 내 마음 먼저 헤아려 주면 어떨까? 타인의 기대 속에 갇혀 억누르며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거든 망설이지 말고 빗장을 열어 보드라운 흙을 밟게 해 주고, 시원한 바람을 쐬게 해주자. 비를 맞아도 좋다, 젖은 옷은 다시 빨아 내리쬐는 햇볕에 말리면 그만이다. 일탈이 그렇게 거창할 필요는 없다.



* 자우림의 <일탈> 가사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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