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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동에서, 그날 우린.

죽음도 준비가 되나요?


나는 지금 호스피스 병동에서 사랑하는 아버지를 마주하있다.

오늘은 내가 아버지께 드릴 중요한 부탁이 있는 날이다.
아버지가 편찮으시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

이 말을 꺼내게 된 건 어제 남편이 나에게 건넨 진심이 담긴 말 때문이었다.

"여보. 자기가 지금 호스피스 병동 가는 이유는 아버지를 보살펴 드리러 가는 거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자기가 준비해 드려야 해.
자기는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게 된 다 다른 사람들한테 아버지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시길 원해? 아버지 가시는 뒷모습 아름답게 기억되실 수 있게 힘들겠지만 정신 차리고 잘 준비해드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내가 정리해 드린다.'


나에게 갑자기 막중한 임무가 맡겨진 기분.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버지를 호스피스 병원에서 보살펴 드리고, 저녁에는 간병인이 상주하고 있기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는 밀린 살림을 대충 정리하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느라 쓰러지듯 잠드는 일상이 이어졌다.

하지만 남편의 말을 들은 그날 밤은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막중한 임무를 가슴에 품고 어렵사리 잠이 들었다.

 일산으로 차를 타고 아버지가 계시는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는 길.
차 안에 적막을 견디기 어려워 오디오 북을 틀었다. 책을 들으며 달리는 차 안에서 빛나는 단풍을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완연한 가을, 독서의 계절이 왔음을 깨달았다.
창문을 열었다.
코끝엔 다소 차갑지만 기분 좋은 시원한 가을바람이 스쳐왔다.

'아빠와 함께 이 코끝 차갑지만 시원한 가을 공기를 느꼈으면, 낙엽 향을 맡고, 바스락 거리는 낙엽 들을 밟으며 같이 손 잡고 걸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버지가 건강하셨을 때는 너무도 당연했던 이 바람이 이젠 우리에게 사치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어느새 나는 호스피스 병원에 도착했다.

아프시지만 나에겐 늘 멋지신 아버지가 침대에 기대어 앉아 계셨다.
따뜻한 물로 손수건을 적셔 얼굴을 닦아드리고, 미지근한 물로 다시 수건을 적셔 머리를 닦아드렸다.

"오늘 헤어스타일은 유럽 중년 신사 스타일로 가르마를 내볼께요."
라고 현란한 손동작을 해 보이는 딸을 보며

"파."

아버지는 소리 내서 웃었다.
얼굴에 로션을 발라드리며
"유럽 중년 신사같이 멋지네. 우리 아빠."
라고 말하 아버지는 기분 좋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유럽 중년 신사 같은 아버지의 얼굴에 로션을 다 발라드리고 의자에 앉았다.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시간.
입이 무겁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입에 무거운 추를 달아 바 깊은 곳으로 가라앉히고 싶다.

이 말을 꺼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게 되면서 여기 계신 원장님께서 나에게 면담을 요청하셨다.

"어려우시겠지만 아버지의 마지막을 미리 준비해 주세요."

라는 남편과 같은 부탁을 나에게 건네셨다.

사실해야 한다는 것 있었.

다만 외면했을 뿐,
암이 커지면서 점점 식사를 드시지 못하시고, 기력마저 없으신 아버지의 마 얼굴을 마주 보고 있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았다.

사실 건강한 가족이 있는 많은 분들은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아픈 가족을 둔 가족들은 사실 아프신 분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 '희망'을 놓는 순간 정말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기에-

오랜 기간 암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신 친구의 아버지의 장례식 장에 갔을 때 영정 사진부터 장례식장까지 아무런 준비를 못했다는 말이 그때는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내가 막상 아픈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순간을 아가 보니 그 친구의 마음충분히 이해되었다.

그 친구는 준비를 안 한 것이 아니었다.
못한 것이었다.


투병 기간이 길다 누군가의 죽음을 준비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고 하더라고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은 준비되지 않는다.

아니 준비될 수가 없다.

나에게도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이 갑작스러웠던 것처럼
호스피스 병원에 오시게 되고, 식사를 드시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언젠가는 호전되셔서 식사를 잘 드시겠지 막연히 생각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는 건 넘으면 안 되는 금기된 선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깊은 심호흡을 했다.

내 입 밖으로 나가는 글자 하나하나에 무거운 추를 달아놓은 듯한 느낌으로 말을 시작했다.

"아빠. 나 오늘 아빠한테 어려운 부탁할 거예요. 아빠도 힘들겠지만 들어주세요."

입에 달려있던 무거움을 힘겹게  내려놓았다.
나는 언젠가 다가올 내 아버지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사람이기에.

"나는 언젠가 찾아올 아버지의 마지막을 잘 준비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아빠가 살면서 도움받고, 고마움 전하고 싶은 분들께 자식으로서 예의 갖추어 인사드리고 싶어요. 그분들이 아버지의 마지막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실 수 있게요.
지금은 아빠도 저도 어렵지만 잘 준비해 놓으시고 한결 편한 마음으로 지내시다가,
오빠 결혼식도 보시고, 손자 손녀도 낳고 행복하게 사는 거 보시면 되잖아요. "

사실 두 달 후면 친오빠의 결혼식이었다.

얼마나 보고 싶으실까. 이렇게 멋지게 키운 장성한 아들의 결혼식을.

그 아들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내고자 그 무언가를 삼키기도 힘겨운 입으로 식사를 드시려고 애를 쓰시는 아버지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미어 고개를 떨구었다.


다이어리에 적힌 무거운 숙제를 아버지와 함께 풀었다.


마음을 다 잡고, 다이어리를 폈다.
아버지께 여쭤볼 리스트가 적혀있었다.

"우선 영정 사진.. 같이 골라봐요. 아빠."

어렵게 말한 나의 입을 보시고 아버지는 본인의 핸드폰을 가리키셨다.

"잘 나온 걸로 예쁜이가 골라봐."

아버지의 말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눈물을 훔치며 핸드폰을 켰다.
사진첩에 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자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았다.

"다 잘 생겼는데, 어떻게 하나만 골라요. 같이 골라줘요. 아빠"

눈물 섞인 투정에 아버지힘겹게 웃어 보이셨다.
천천히 사진들을 둘러보았다.

가족들과 생일 때 행복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 여행 가셔서 찍은 사진, 그리고 딸 바보 아버지답게 내가 유니폼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들이 여러 장 담겨있었다.

그 작은 핸드폰 속에 아버지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행복해 보이시는 아버지의 그 많은 사진 중 '영정 사진'을 고르는 건 꽤나 려웠다.
시간은 들여 사진첩을 모두 둘러본 후 가장 멋지게 나온 두 사진 중 아버지와 내가 만장일치로 뽑은 사진이 선택을 했다.

'상장을 들고 도복을 입으신 누가 봐도 너무나 건강해 보이시는 사진.'
그 사진을 내 핸드폰에 전송했다.

"다음은 아버지가 인생을 살면서 감사했던 분들 성함 알려주세요."

그러자 아버지의 입에서는 내가 몰랐던 이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펜을 들고 그 이름을 적었다.
어떤 부분이 감사했는지 그 이유까지 적었다.  나중에 아버지의 감사한 분들께 연락드릴 때 그 부분도 함께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았다.

다 적은 후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다음 질문을 드렸다.

"아버지 돌아가시면 저희가 어디에 모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묻자 아버지는 곰곰이 생각하신 후,

"아빠는 아빠 고향 뒷산이 좋겠는데, 우리 아들 딸이 찾아오기 힘들겠지? 너희들 오기 편한 대로 결정해."

라고 대답하셨고,

"아무래도 저도 아기가 있고, 오빠도 결혼해서 아기 낳으면 아빠 고향까지는 너무 머니깐 근처에  좋은 곳으로 알아볼게요."
그러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굵직한 질문은 마무리가 되었다.

문득 마음에 두고 있던 시가 생각이 났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두 번은 없다.'
끝과 시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에서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라는 말을 입으로 몇 번 되내어 보았다.


죽음이라는 인생의 마지막을 어떠한 준비와 훈련 없이 맞이한다는 것. 그 일은 꽤나 어려운 일이라는 걸 몸소 겪어보며 깨달았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일을 나와 아버지는 묵묵히 준비하고 있었다.


다시 다이어리를 보았다.

하얀 종이 위 검은 펜으로 적어놓은  글자들의 조합.

그곳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꼭 하셔야 하는 일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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