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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바보 아빠가 죽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


문득 글을 쓰고 싶었다.

아니 쓰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버지와  나눈 대화들.

따뜻한 물로 손수건을 적셔 얼굴을 닦아드릴 때 손끝에 스치는 마르신 아버지의 얼굴 윤곽 아직 손끝에 남아있는 듯하다.

돌아가시기 전날도 가재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드리고 머리를 닦아드리며
"아파도 우리 아빠는 유럽 중년 신사같이 멋지네."
라고 이야기하면 아빠는 쑥스러운 듯
"파"
하고 소리 내며 웃곤 했었다.

다소 부은 아버지의 손과

암 때문에 부은 다리와 나중에 다리에 물이 빠지며 생긴  튼살들을 수건으로 닦아드리며 로션을 발라드리면 우리 딸 덕분에 호강한다는 아버지의 웃는 얼굴.


스무 살이 되자 밤 10시 통금을 정해주시고, 9시부터 전화하시며 꼭 역 앞으로 마중 나오시던 아버지. 시간이 안되시면 오빠라도 꼭 마중 나오게 했던 아버지.

고등학교 때 아버지와 나눴던 교환 편지와

늘 무거운 비행 케리어 번쩍번쩍 들어주던 나의 슈퍼맨.

태풍이 불던 날 비행하는 딸이 걱정돼서 잘 도착했는지 몇 번이고 검색해 보셨다는 나의 아버지. 화상통화로 얼굴 보시고, 카톡 메시지로 잘 들어가라고 남기셨던 그 마음이 참 따뜻했다.

딸바보 아빠였던 우리 아빠



그런 강인한 나의 아버지가

폐암에 걸리시고 폐암 1기부터 말기까지 삼 년 반의 시간을 투병을 하게 되시면서 어느 순간 내가 아버지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받았던 사랑을 이제 돌려드릴 시간이라고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같이 머릿속을 스친다.

아파트 정문에서 차를 가져오기 위해 기다리 아버지의 모습.

암 치료로 병원을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는데 아이 같이 자전거에 앉아 웃으시던 모습.

내가 끓인 전복 우렁 된장국이 너무 맛있다며 한 그릇 뚝딱 비우시던 모습.

과일과 견과류를 챙겨드리면 맛있게 드시던 모습.

맛있게 드시고 피곤하셨는지 흔들의자에 앉으셔서 잠이 드셨던 모습. 그 옆에 무겁게 놓여있던 아버지의 폐에서 물을 빼기 위해 연결돼있던 빨간 피가 들어 있던 주머니.


호스피스 병동에서 이미 대학 병원에서 너무 많은 주사를 맞아 더 이상 주사를 맞을 혈관이 없어 목에다 중심 혈관을 잡으시고도 운동하자며

힘겹게 내린 두 다리로 손 잡고 산책했던 실내 정원.

어느 날은 병동에 예쁜 노란 꽃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함께 마스크를 벗고 꽃향기를 맡던 시간들.

아빠와 함께 맡았던 노란꽃 향기,


문득문득 웃으며 아버지가 나한테 오실 것 같아서

아버지가 서 계셨던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아직은 죽음을 모르는 세 살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이제 하늘로 가셨어. 이젠 아프시지 않아. 할아버지 보고 싶으면 하늘 보고 인사하면 돼."

라고 하자 하늘에다가 손 흔들며

"할아버지 이제 안 아파. 사랑해요."

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괜스레 눈물이 차올랐다.

그곳에서는 아프지마시고, 편히 쉬세요.


아이를 돌보느라 슬퍼할 시간도 없는 아기 엄마인 내가 문득 샤워를 하며 머리를 감기 위해 눈을 감았는데,

호스피스 병동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사랑해요.  아빠."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 작별 인사를 건네자

"내가 더 사랑해.  예쁜 딸"

이라고 말하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해.

머리를 감으며 흐르는 샤워기 소리에 감춰 엉엉 소리 내어 울 버렸.

흩날리는 바람에
생각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사무치는 그리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푸르른 산을 볼 때면
찬란한 자연을 만날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딸 바보 아버지가 죽자

그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딸이었던 나는 깨달았다.

나를 평생 보호해주던 든든한 울타리가 사라졌다는 걸.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해주던 한 사람이 사라졌다는 걸.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세상에 이런 이별이 존재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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