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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장 두려운 말.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실체를 보던 날.


삶을 살며 들을 수 있는 가장 두려운 말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한 가장 두려운 말은 드라에서 본 적 있던 바로 이 말이었다.

"암입니다. 유감스럽지만 3개월 남았습니다."

의사의 입에서 나온 시한부 선고.
주인공의 좌절하는 표정과 병원을 나갈 때 허탈한 발걸음. 그것과는 상반되는 밝은 햇빛이 내려쬐는 날씨. 그 장면에서 난 간접적으로나마 그 주인공의 참담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이 두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주인공은 암에 걸리신 아버지 나는 그의 딸로

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간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네모난 진료실엔 하얀 가운을 입으시고 안경을 쓰신 교수님이 앉아계셨다.

계속해서 폐에 물이차는 그 이유와 결과를 듣기 위해 들어간 이곳엔 보이지 않은 두려움의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적막 가운데 의사 선생님께서 아버지의 흉수가 가득 찬 왼쪽 폐를 찍은 CT 사진을 보시는 마우스 소리가 적막을 깼다.

"폐에 왜 물이 찰까요? 교수님"
용기 내어 물었다.

"병이 나빠졌어요. 계속해서 물을 뺐는데도 이렇게 안 빠지면 지금 상태로는 항암을 못할 수도 있어요.
지금 해야 할 일은 폐에 물 빼는 것밖에 없어요. 물 더 빼시고 다음 주에 뵐게요"


항암을 못한다는 건 암 환자에게는 사형선고와 마찬가지란 걸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대답을 듣고, 메모장에 적어놓은 질문들을 마저 하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벌써 삼 주째.

나는 주인공인 아버지 옆에 불안한 눈빛으로 서서

매주 사형선고를 마주하는 아버지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다.


내가 인생에서 겪은 가장 두려운 순간은

교수님의 입에서 결과의 말이 나오기 직전.

그 순간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을 꼽으라면 그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픈 환자들이 가득한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다음 예약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삶과 죽음은 하나의 선이니깐 너무 슬퍼할 것도 없다."

라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는 말없이 끄덕였다.
수납을 하고 진단서를 끊어서 나왔다.

아버지는 복요리가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자주 가시는 복집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반찬과 음식을 맛있게 드셨다.
이렇게 맛있게 음식을 드시는 것만으로도 큰일을 하시는 것을 알기에 아버지 그릇에 가득 덜어들였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식사 맛있게 드시고, 폐에 물 잘 빼시고, 다음 주 화요일에 결과 듣고 항암 할 수 있으면 하시고, 항암 잘되고 암세포 죽으면 또 공기 좋은 곳 내려가셔서 농사짓고 산책하시면 되니깐 너무 걱정 마세요. 긍정적인 면을 보자고요."

그러자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빠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우리의 탄생의 순간이었고,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태권도 9단을 따셨을 때라고 말씀하셨다.
택시를 타고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에 대해서 이토록 많은 질문을 여쭤본 게 언제였더라?'

문득 든 생각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이었다.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많은 질문을 했던 건-

늘 곁에 계셨지만 그 존재는 늘 당연했고, 익숙했다. 그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음으로 바뀐 지금. 아버지와 함께하는 이 순간순간이 소중했다.


왜 사람은 곁에 있을 때의 소중함을 익숙하다는 이유로
느끼지 못하는 걸까?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는 나와,

늦은 밤까지 나의 아기를 봐주시는 엄마,
주말에 아버지는 오빠가 케어하겠다는 전화,
밑찬을 해주시러 멀리서 오신 고모들.
그 행동 하나하나에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묻어있었다.


매주 사형 선고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와 나는 한줄기 희망을 지고, 하루하루 버티듯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와 내가 아버지의 여동생인 고모의 초대를 받아 고모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아침 일찍부터 병원을 다녀왔던 터라 아버지도 나도 피곤했지만, 약속을 했기에 집에서 잠시 쉬었다가 고모네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고모 두 분과 고모부가 환한 미소로 아버지를 맞았다.

마르신 아버지의 얼굴을 보시고는 그저 건강만 하라는 고모들의 응원과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걸로 가득 찬 상을 보니 울컥 눈물이 났다. 더 드시라며 아버지 국그릇 가득 떠주신 추어탕과 맛있는 반찬들.

밥 한술을 뜨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보이지 않게 한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곳은 보이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눈물 맛이 나는 밥을 소리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오늘 하루 보이지 않는 두려움 가득했던 진실에서부터 사랑이 가득한 이곳에 오기까지.
참 하루가 길고도 고됐다.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일장춘몽'
아버지가 오빠에게 말하셨다는 사자성어를 다시 되내어본다.

'한바탕의 봄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가 꿈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한낱 꿈, 부질없는 일, 쓸모없는 생각 등을 가리킨다.'


나조차도 영원을 살 것처럼 하루를, 그리고 일 년을 그리고 인생을 살아간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내 앞에 선명하게 눈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삶과 죽음의 순간을 마주하며,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을 매 순간순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삶은 영원하지 않다.

아프신 중에도 아버지께서는 늘 나에게 묻하셨다.


'딸아, 유한한 삶에서
너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니?'


나의 존재의 이유던 아버지.

나의 근원이었던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버지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나는 눈물 흘리며 아버지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두려움과 보이지 않는 사랑을

마치 실체가 있는 듯 마주한 오늘.


아버지를 배웅하기 위해 택시를 타러 가는 길.

아버지 양팔에 팔짱을 끼고 응원하는 고모들과 묵묵히 고모들이 싸주신 밑반찬을 들고 계셨던 고모부.

그들을 등지고 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는 눈물이 고여 말씀하셨다.


"오늘 참 감사한 하루였다. 그렇지?"


나는 눈물 고인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버거웠지만, 누군가의 사랑으로 참 따뜻했던 까만 밤이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얼굴을 손으로 가린 사진 : https://m.blog.naver.com/lyilove11/1338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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