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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꺼운 손가락 Oct 28. 2020

지휘자가 되다

플라잉 휠체어 47화

수원시향에 입단하며 수원에 정착하게 되었고,




47. 지휘자가 되다



후배 소개로 수원에 있는 교회도 다니게 되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눈에 띄는 일은 거의 없을 텐데,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나는 단 한 번의 출석으로 전교인이 알게 되었다.


“봤어? 우리 교회에 휠체어 탄 사람이 새로 등록했나봐.”

“그 사람 무슨 악기를 한다던데.”

“응. 수원시향에서 바이올린한데.”


장애를 가진 연주자가 교회에 나온다는 사실은 일주일도 안 되어 교회의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고 그 때문인지 목사님이 집을 방문하셨다. 그동안 장애인 사역과 교회 음악 사역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셨는데, 당신이야말로 그 두 가지를 다 섬겨 줄 수 있는 적임자라며 당장 교회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게 어떻겠냐고 강권하셨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우물쭈물 망설이는 내게 목사님이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무리 장애우 사역에 관심 있다고 하면 뭐합니까. 내가 백 마디 말하는 것보다 실제로 연주를 하고 있는 게 훨씬 파급력이 크겠지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실 분이시지 않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후 교회 앞마당 주차장은 장애인 전용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텅 빈 주차장에 나만 주차하자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었지만, 효과는 곧 나타났다.

휠체어에 앉아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큰 반응이 있었다.

소문을 듣고 집안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용기를 낸 걸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목발을 짚고, 시각 장애인이 지팡이를 두드리며, 휠체어를 밀며 한두 명씩 왔다. 주차장에도 노란 스티커를 붙인 차들이 제법 들어찼다.


나는 강대상 바로 밑 오케스트라의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어떤 이는 힐끗힐끗 나를 보고, 어떤 이는 무안하게스리 대놓고 빤히 쳐다봤다. 어떤 이는 예배가 끝나고 뒷정리가 모두 끝날 때까지 나를 기다렸다가 말을 걸기도 했다.

어떻게 오는가. 가족도 함께 오는가. 직장이 있다고? 어떻게 직업을 갖게 되었는가.

여기 오면 무엇이 좋은가. 여기는 정말로 사람을 색안경 끼지 않고 대하는가.


나는 이 눈빛을 알고 있다. 내 밑바닥 어딘가에도 아직 남아있는 표정이다.

딱히 대상이 없는 불안과 분노로 눈동자는 미세하게 흔들린다.

다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삶에 대한 소망은 가지고 있지만, 밖으로는 가시가 돋아있는 인생이다.


내가 강대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다른 어떤 말보다도 더 큰 증거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 건 없다. 그저 이 말이 전부다.

“나를 보세요.”


오케스트라 규모가 커지면서 지휘자가 필요한 상황이 왔다. 회의와 투표를 거쳐 내가 맡게 되었다.

지휘라니. 이것이야 말로 내가 생각했던 일이 아니다.

지휘를 해 본 적도 없다. 지휘자는 단상에 올라 높은 곳에서 전 단원을 아우르며 음악을 이끌어 가야한다. 성가대와 오케스트라를 함께 이끌어야 하고, 내가 무슨 수로 저 뒤쪽에 앉은 관악기 연주자들에게까지 사인을 줄 수 있을까.


어깨부터 팔꿈치까지는 아예 들을 수가 없는 내 장애 때문에 지휘를 하려면 오른손으로밖에는 할 수가 없다. 뒤쪽에 앉은 연주자들에게 사인을 주려면 몸을 왼쪽으로 기울여서 최대한 오른팔이 높게 올라가게 만들어서 박자를 저어야만 그들에게 내가 겨우 보였다.


지휘란 박자만 휘젓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저 나 혼자 잘난 인생은 없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면서도 마음이 딱딱한 나는 꼭 경험해야만 체득하게 된다.

내게 새로운 길이 열렸을 때는 나보다 열성적인 사람이 늘 옆에 있었다. 늘 그랬다. 그런데도 새로운 일이 생길 때에는 또 혼자가게 되는 거 마냥 덜컥 겁이 난다.


생각해보면 혼자 해내려 하니 겁이 나는 게다. 늘 그랬듯 나는 이번에도 한 발만 내밀어 본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내 팔과 다리가 되어 줄 천사들을 열둘도 더 만났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우현이 없었다면 진즉에 엉망진창이 되었을 것이다. 강제성이 없기에 집안의 대소사나 명절, 중간, 기말고사가 다가오거나 하면 많이들 결석하고 사라지곤 하는데 그는 학생 때부터 흰머리 가득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요리조리 뺀질거리는 친구들에게 화를 내거나 강요하지도 않는다. 늘 먼저 다가가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걸 경험한 이들은 그런 모습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흉내 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내고, 함께 하는 이들이 더 잘 해낼 수 있게 돕는 분위기가 당연한 듯 자리를 잡았다.


나의 가장 큰 무기인 ‘나를 보세요.’라는 말이 무력화되는 순간이랄까.

이건 내가 가르친 것도,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입 밖으로 말을 꺼내본 적도 없는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희망을 얻고 살아간다. 취미로 하는 사람들, 전공을 하고 있는 학생, 정말 드물게 장애우들도 오고 이 연주자들이 모두 섞여서 음악을 만들어 낸다. 수원시향 연주자들처럼 완벽한 음악을 위한 전쟁 같은 연습과정이 아닌, 평화로워지고 연주하는 자가 즐길 수 있는 음악 말이다.

이 시간만큼은 모두의 영혼이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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