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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꺼운 손가락 Oct 26. 2020

기억에 남는 연주들

플라잉 휠체어 46화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내한했을 때





46. 기억에 남는 연주들



수원시향과 연주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2000년도에는 파바로티*와 잠실 주경기장에서 공연을 했다. 20세기를 넘어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예술가의 내한으로 우리도 바짝 긴장한 상태로 그를 기대했다.

우리는 그의 음악보다 그의 까탈스러움을 먼저 겪었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그를 위해 하는 수 없이 70명의 단원들이 파바로티가 묵고 있는 호텔 컨벤션 홀로 갔다.


호텔 측에서도 세계적인 손님을 위해 극진히 대접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가 통째로 여기까지 왔건만 파바로티는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더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단원들은 웅성거리고 실무 팀과 기획사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 그의 매니저가 도도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파바로티는 지금 낮잠을 자고 있고, 시차 적응 때문에 깨울 수가 없으니 기다리라면서 시작시간과 상관없이 약속된 리허설 시간에는 마칠 것이라고 내뱉고는 쌩하니 가버리는 게 아닌가.


20~30분이 더 지났을까 TV에서 보던 그 커다랗고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파바로티가 나타났다. 컨디션이 충분히 회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몇 곡만 맞춰보겠다고 했다. 우선 오케스트라 소리를 들어보고 싶으니 해보라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한국을, 우리를 우습게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싶어서 너무 불쾌하고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뭐.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 그의 전속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아리아의 전주를 연주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소리를 듣던 파바로티가 육중한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첫 음을 탁 내뱉었다. 순간 우리 모두는 넋을 잃고 말았다. 너무 놀라서 반주를 멈출 뻔했다. 그는 50%도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지만 그 자체로도 상상 이상이었고 온몸의 털이 쭈뼛하고 일어났다.

음반에서 들었던 그의 소리는, 레코딩은 그의 음색을 완전히 담지 못하고 있었다.

오 주여. 제 생애에 이런 소리를 가까이서 듣다니요.

연주 때 하기로 한 노래 중에 두 세 곡, 그것도 부분 부분만 맞춰봤다. 하기야 그는 이 노래를 수 만 번은 불러 봤을 테니.


즐겁고 영광스러운 순간이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2009년에 뉴욕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은 여러모로 잊기가 어렵다.

2003년에 일본 공연을 경험하면서,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앞으로는 해외나 지방 공연은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해외 공연을 간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부러워한다. 그렇지만 연주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아름다운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게는 도착해서 바로 연주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여행을 간다고 해도 짐이 굉장히 많은데, 악기, 연미복, 구두까지 챙겨야 하니까 짐이 두 배로 많아진다.


공항에서 단원들이 악기를 메고 주르륵 가는 모습을 보면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쳐다본다.

내가 봐도 우리 단원들이 멋있는데, 남들이 보면 오죽할까. 남이 보면 멋있지만 알고 보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스케줄이다.

도착해서 연주하고 바로 돌아오는 2박 4일의 일정도 빠듯하고 15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에 단체 이동이 부담스럽고 미안해서 연주를 빠지려고 했었다. 고민을 한참 하고 있는데, 친한 단원 몇몇이 업고 들고 하는 거는 내가 맡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피곤하고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카네기홀인데 같이 연주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카네기홀에서의 공연은 협연자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었는데, 앳된 얼굴에서 나오는 진지함이 베토벤 협주곡과 너무나 근사하게 잘 어울렸다.

우리나라에 이런 연주자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서도 덤덤한 얼굴로 걸어 나오는 김선욱의 옆모습을 보면서 아시아인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내 유학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아무리 이를 악물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어도 뭔지 모르게 작아지는 느낌이 들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아 눈에도 힘을 주고, 입도 앙 다물어도 보고 별 짓을 다 해봤지만 왠지 실패한 거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3층까지 꽉 찬 관객, 쏟아지는 환호성도 별 거 아니라는 듯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김선욱의 걸음걸이는 전쟁 같던 내 젊은 날에 대한 위로였다.


수원시향에서의 연주생활은 감사함과 기쁨이었다. 이렇게 깊고 응집력 있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교향악단이 우리나라에 몇 군데가 있을까. 처음엔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교만이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이곳의 일원이 되었다는 건 큰 행운이었다.


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좋았고, 연습 전에 동료들과 함께 마시는 모닝커피 한 잔은 꿀처럼 달았다. 오늘 연습할 베토벤, 브람스, 차이콥스키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얼마 전에 태어난 누구네 첫 아이 사진도 함께 보고, 우리가 언제 이렇게 흰머리가 많아졌지? 하며 잡을 수 없는 세월에 대해서도 함께 한탄했다.


늘어나는 주름만큼 멜로디를 점점 더 근사하게 만들어 내는 관악기 주자들의 소리를 매일 감상하며, 지금 깨달은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우리는 다 대가가 되었겠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브루크너 교향곡을 연주하면서 현악기 연주자들끼리 누가 누가 더 많이 음을 쪼개어 트레몰로를 만들어 낼 수 있나 내기하듯 연습했다.


젊은 시절에는 모차르트의 성숙함을 표현할 길이 없어 쩔쩔맸었는데 나이 들어 연주하려니 모차르트의 재기 발랄함이 버거웠다.


실력이 출중한 후배 단원들을 보며 발전하는 수원시향의 음악이 흐뭇했다. 이런 후배들 사이에서 함께 하고 있음이 감사했다.

어린 시절의 음악은 경쟁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프로세계의 음악은 긴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팀워크에서 나온다는 것을 해를 거듭할수록 깊이 체험하게 된다.


※ 파바로티 Luciano Pavarotti 1935~2007. 음악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너로 평가받는 이탈리아 출신의 성악가.


※ 김선욱 1988~ 클라라 하스킬 국제 콩쿠르, 리즈 국제 콩쿠르 등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하며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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