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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희 Sep 10. 2020

당당한 자폐 6

자폐 엄마의 미국 유학 일기 

미국 초등학교 적응하기

        나의 사랑하는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아이는 미국에 왔던 만 8세까지 한글을 숙지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요, 알파벳은 공룡 이름 노래로만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평가 때 보니 숫자는 20 정도 까지만 셀 수 있는 아이였다. 학교를 가는 날까지 글씨를 써보라고 하면 늘 연필만 부러뜨렸지, 숫자 1 한 번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너무나 나를 닮아 호불호가 매우 강하고, 본인의 세계가 분명한 나의 아이는 한국에서 꽤나 유능한 인지 선생님들에게 꾸준히 배우기도 했지만, 일단 공부를 시키는 수업은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나오지를 않기 때문에 학습에 대한 것은 사실 나도 큰 기대가 별로 없었다. (여기서 분명히 할 점은 자폐 아이들이 다 나의 아이 같지 않다. 자폐 아이들은 열이면 열 성향이 다 다르고, 순종 적인 아이들도 많고, 학습이 잘 되는 아이들도 많이 있다.)  



        나의 낮은 기대 수준과는 별개로 이 아이를 선생님께 맡기고 오자니,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한국말도 잘 못 알아듣고, 한국 말을 좀 하기 시작한 지도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기 때문에 영어를 가르쳐서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런 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낼 때는 정말 너무나 무거운 짐을 선생님들께 지우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너무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아이가 어떻게 적응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첫날 엄마가 자신을 학교에 버려두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는 좀 우울해했었지만, 다행히 둘째 날부터는 잘 적응을 하기 시작했는데, 일단 학교에는 우리 아이가 보지 못했던 다양한 장난감이 있기도 했고, 중증 자폐 프로그램의 선생님들은 거의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일하는 것도 익숙하셔서 인지 나의 아이의 언어의 부족함도 크게 문제 삼지 않으셨다.   



        오히려 선생님은 아이가 자꾸 교실에서 신발을 벗는다고 난감해하셨다. 사실 아이가 다닌 한국의 어린이 집이나 학교는 모두 교실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거나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가는 시스템이었으니 아이가 교실에 들어가며 신발을 벗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걱정했던 것과 전혀 다른 부분을 의아해하시는 선생님을 보며 나는 한편 안심도 되고 새롭기도 했는데, 이런 작은 문화적 차이들은 이따금 문제가 되기도 하였지만 비교적 쉽게 해결되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나의 아이가 I want _______. 혹은 _______, please와 같은 표현을 매우 빨리 익혔다는 점이다. 하긴 이 말만 하면 선생님들이 칭찬하면서 장난감도 주고 쉬는 시간도 더 주니 마치 이 말들이 무슨 마법 주문 같았을 것이다. 또 하나의 기적 같은 일은 오전 8시에서 12시까지 수업을 갔던 그 3주 동안 아이가 영어로 이름 쓰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내 아이는 12살이 된 지금도 한글로 이름을 쓰지 못한다. 글씨 한번 가르쳐 보겠다고 시간당 7-8만 원씩 내며 2년을 치료실에서 배워도 안됐던 것인데 이걸 학교에 다닌 지 3주 만에 하는 것을 보고 적어도 이 때는 미국에 잘 왔구나 싶었다. 






        물론, 미국 특수 교육 시스템에 장점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자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분들이 교사로 계시면, 학부모들은 보통 버티는데 까지 버텨 보다가 홈스쿨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말이 우아해서 홈스쿨이지, 홈스쿨을 하는 자폐 아이의 부모는 도저히 학교에서 아이를 감당하지 못하니 그냥 본인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홈스쿨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집에 데리고 있는 형태는 아니다. 체계적이고 의미 있는 홈스쿨을 하는 가정도 많이 있다. 미국은 홈스쿨 프로그램이 꽤 발달했고, 보통 집에 아이들이 여럿이 있는 경우에 홈스쿨을  많이 하는데 매우 체계적으로 잘 운영하시는 경우도 꽤 보았다. 이러한 가정의 경우 홈스쿨을 하지만 하지만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주변 차터 스쿨로  주 2회 정도 가서 또래와 교류하기도 하고 그 지역에서 운영하는 다른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정말 공교육보다 더 체계적으로 아이의 성장에 맞추는 바람직한 홈스쿨도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자폐 아이를 학교에 보내다가 홈스쿨로 돌리는 경우는 대부분, 학교에서 그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지도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모가 그 아이를 집에서 돌보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영어 한마디를 못하던 내 아이가 낯선 미국 학교를 좋아하면서 다닐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받아들여짐 (acceptance)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 비해서 미국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조금 더 발달했고, 아이의 선택과 결정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내 아이의 특이한 부분을 꺾으려고만 하지 않고, 여러모로 인정해주고받아들여줬던 것 같다.   



        미국에서는 공공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무조건 선생님 말씀을 따르는 아이로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아니다. 본인의 의견을 정확히 말하는 것을 권위에 순응하는 것보다 더 중요시하고 이를 매우 장려한다. 그래서 본인의 호불호를 너무나 정확히 전달하는 나의 아이는 한국에서와 달리, 의사표현을 잘하는 아이로 여겨지게 되었고, 선생님들의 사랑도 받을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 아이가 학교를 좋아했던 이유는, 일대일 수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무언가를 해 나가는 환경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 아이의 특수 교육 반은 3학년에서 6학년이 있는 반이었으므로 3학년인 나의 아이에게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형, 누나였고, 도움을 주시는 선생님들도 형이나 삼촌처럼 젊은 보조 선생님부터 할머니 같은 보조 선생님들까지 구성원이 다양했기 때문에 집이나 치료실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28개월부터 해온 일대일 수업은 너무나 지겨웠고, 학생이 너무 많은 것도 적응 못하던 내 아이는 학생 6명 선생님들 6명 정도가 함께하는 이 교실에 적응하며 비교적 큰 문제없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제목 배경 사진 출처: https://www.pinterest.ca/pin/14080622214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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