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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선 최금희 Aug 14. 2022

개성 향토음식 - 보쌈김치

친정엄마가 들려준 이야기

북한의 김장 전투


해마다 김장철이면 우리 집은 김장을 평균 한 톤씩 담갔다. 식탁이 풍성하지 않은 북한에서 겨울철 김장은 반년 식량으로 여길 만큼 중요했다. 식구 별 배급받은 배추에 의사인 엄마 인맥으로 구한 배추와 마늘 등 엄청난 양의 김장 재료가 복도에 쌓이곤 했다.


재료가 준비되면  집집마다 서로 품앗이를 하면서 김장을 담그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김장철에 보통 북한 주민은 2~3일 정도의 휴가를 받는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한 톤의 김장을 담그는 일은 그야말로 전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남쪽에 와서 어느 날 '사랑과 전쟁'의 고부갈등을 다루는 장면을 보았는데 글쎄 못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100포기 김장을 혼자 담그라고 하는 것을 보고 놀랬다. 나는 그때 100포기는 껌인데 왜 저걸 구박이라고 하지? 하고 생각했으니 ㅋㅋㅋ


그 많은 김치를 아파트에서 어떻게 담가서 보관했을까? 독자 여러분들이 가장 궁금한 문제인 것 같다. 그때 살던 아파트는 베란다가 지금의 한국식으로 크고 넓었다. 화장실은 보통 한국의 아파트 화장실의 1.5배 정도였다.


초절이 : 아파트 복도에서 배추를 다듬어 화장실 욕조에 소금물을 채우서 담근다. 물론 배춧잎 사이사이에도 소금을 뿌린다. 화장실 바닥에 밥상을 놓고 몇 번씩 나누어서 씻는다. 밥상 아래로 배추의 물기를 빼는 구조다. 사실 여기처럼 화장실에 있는 욕조는 자주 단수가 오기 때문에 욕조의 기능을 못하고 평소에 물을 받아쓰는 물탱크의 기능을 한다.

치대기: 품앗이로 동네 주민들과 서로 번갈아가면서 한집씩 양념을 치댄다.

보관: 베란다에 높이가 평균 2미터가량 되는 장독을 4~5개, 장독 사이사이에 김치가 얼지 않도록 볏겨와 동파 방지되는 무슨 하얀 돌을 두었다.(아버지가 회사에서 가져온 가볍고 하얀 돌 모양인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음)


11월 초부터 김장을 담그기 시작하는데 김장철이면 집집마다 어느 집 김치가 맛있는지 서로 한두 포기씩 돌려 맛을 봤다. 김장이 끝나면 엄마는 나에게 김치 치댈 때 도와준 아래윗집으로 김치 한 두 포기씩 돌리는 심부름을 시켰다.


그다음 날이면 의례히 저저마다 금희네 김치가 정말 맛이 좋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엄마표 개성보쌈김치가 으뜸이었다. 특히 5층의 남 과장 아저씨는 자기 아내에게 왜 금희네 집처럼 맛없냐고 늘 투덜거리던 모습이 인상 깊다. 아빠의 직장동료인 남 과장 아저씨는 자주 4층의 우리 집에 오셔서 아빠랑 술 한잔 기울이군 하셨는데 그때마다 우리 엄마의 음식 솜씨를 칭찬했다.


그때는 그렇게 이웃끼리 정도 많이 나누던 시절이었다.


개성 향토음식 - 보쌈김치

개성보쌈김치 (네이버 지식백과)


보쌈김치는 번거로워서 많이 담그지는 않지만 엄마는 가끔씩 몇십 포기 정도는 보쌈김치를 담갔다. 개성 출신인 엄마 덕분에 그 시절 나는 보쌈김치가 궁중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반 김치는 통배추 그대로 담그지만 보쌈김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배추를 먹기 좋게 잘라서 양념에 버무리고 사진 속 사이즈와 똑같은 밥그릇에 배춧잎을 깐다. 가운데 겉절이처럼 양념을 버무린 김치를 넣고 배춧잎으로 잘 싸서 김칫독에 차곡차곡 넣는다.


담그기 번거로운 보쌈김치는 장점이 하나 있는데 한 끼에 한 덩어리씩 꺼내 먹는 편리함이다. 김장철이 오면 엄마와 함께 담갔던 보쌈김치 생각이 나고 엄마가 해주시던 말씀이 떠오르군 한다.


 "보쌈은 말이야 원래는 양념에 버무린 김치를 담고 맨 위에 굴이나 밤도 올려서 싸 먹는 거란다..."


나는 지금 엄마가 그토록 원했던 오리지널 개성보쌈김치 재료가 풍요로운 남쪽에서 살고 있다. 올해는 굴과 밤을 듬뿍 넣어서 보쌈김치를 담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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