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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선 최금희 Jan 15. 2022

어느 날 문득 호號를 가지고 싶었다.

호를 화선花仙이라 지었다.

어느 날 문득 호(號)를 가지고 싶었다.


예로부터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시고  호는 자신의 인생관이나 등을 고려해서 본인이 가지는 두 번째 이름이다. 어릴 적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이규보의 작품집을 비롯하여 조선 건국 전후 시대의 역사도 즐겨 읽었다. 어린 나에게는 옛날 사대부들은 왜 이름 외에, 호가 있고, 시호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군 했다.


집안의 막내인 나는 어릴 적 의사인 어머니가 당직을 서는 날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병원을 오가군 했다. 집에서 병원까지 걸어서 10~15분 정도의 거리인데 어머니는 나를 등에 업고 밤길을 걸을 때마다 옛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포은 정몽주의 이야기였다. 왜 정몽주라는 이름 앞에 '포은'이라는 두 글자가 오는지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방원에게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한 정몽주의 이야기는 늘 나로 하여금 의리와 충직을 가르치는 시금석 같은 거였다. 사실 어머니의 고향이 개성이어서 우리 집은 함경도임에도 겨울이면 개성보쌈김치도 담가 먹었다. 요즘 KBS에서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을 보니 더욱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근래에는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과거와 현재를 끝없이 오고 간다. 독자 여러분들은 그렇지 아니한가요??


아무튼 갑자기 호를 짓고 싶었던 나는 어떤 글자로 지을 것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았다. 사실 몇 년 전에도 호에 대한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딱히 떠오르는 字가 없어서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몇 달 전 갑자기 떠오르는 단어가 생각났다.


 "해 당 화"


나의 고향은 청진이다. 청진은 동해바다를 낀 해안도시다. 바다가 백사장에는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해당화가 곱게 피곤했다.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해당화는 장미과 식물로서 물이 잘 빠찌고 햇볕이 좋은 바닷가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고향 해변가에 늘 해당화가 있었나 보다. 어머니가 해당화 열매가 진통이나 소염에 효능이 있다고 하셔서 나는 해당화만 보면 빨갛게 익은 열매를 골라서 따먹곤 했다. 아마 간식이 풍요하지 않은 사회라서 어린 마음에 군것질하려고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 나무 위키

빨간 해당화 열매 안에는 작은 씨들이 털과 함께 있었는데 이를 털어내고 먹으면 새콤 달콤했던 기억이 난다.  해당화 꽃은 향기도 너무 좋아서 향수원료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해안가는 약 50분~1시간 걸어야 갈 수 있는 거리다. 나는 해안가를 갈 때마다 손을 가시에 찔려가면서 해당화 꽃도 따오고 열매도 익은 걸로 골라서 따먹었을 뿐만 아니라 덜 익은 주항 색 열매는 집에 따가기도 했었다. 어떤 때는 해당화 열매를 너무 많이 먹어서 변비가 온 적도 있었다.


언젠가 방송에 출연해서 고향을 소개할 때도 고향 동해 바닷가에 곱게 핀 해당화 이야기를 했다. 정말 의도하지 않고 무의식 중에 나온 말이었다. 그렇게 해당화는 나에게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또 내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 그 자체이다.


그렇다고 호를 "해당화"라 짓기는 너무 식상해서 해당화를 한자사전에서 검색해보니 화선(花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花仙 - 여러 가지 꽃 가운데 신선이라는 뜻으로, ‘해당화’를 달리 이르는 말.


 화선이란 뜻을 보고 옳다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고향을 떠올리기도 하고 나의 정체성도 나타내고 끝내주는 '호'가 아닌가!!

15년 전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우고 네이버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을 때 나는 생사를 오가면서 국경들을 넘고 넘어 한국땅을 밟은 것이 너무나 감격하고 고마워서 닉네임을 <삶은 축복>으로 지었었다. 두 번째 닉네임은 이 나라에 유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오아시스>라고 지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의 개성을 담은 닉네임의 필요성을 느꼈고 오랫동안 가끔씩 고민을 해왔던 터라 새롭게 지은  나의 두 번째 이름 "화선"은 꼭 맘에 든다.


독자 여러분들도 자신의 개성을 담은 호를 지으면 삶의 의미가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요? 물론 선택은 자유죠. 하하~


마지막으로 고향에서 즐겨 불렀던 노래 "해당화'를 소개한다. (링크를 클릭하면 북한 가수들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답니다.)

      해당화

해당화 붉은 꽃이라 곱네
해당화 붉은 꽃이라 곱네
호랑나비는 감돌아 들어
해당화 피여서 방긋이 웃네

아하아 좋구나 해당화야
너만 곱다 뽐내지 말아
붉게 핀 처녀 나에게도
고운 사랑 너와 같이 피여서
뱃사공 우리 님 날보려 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29Mecvzey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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