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퇴사한아빠 Apr 23. 2024

'팀장'하기 너무 힘들다.

팀장의 메모장


 기억이 미화되었겠지만 제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팀장님이라고 하면 거의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아침 출근길 벌떡 일어나서 인사도 드리고 매일 아침 컨디션 체크 담당도 있었더랬죠. 운수 좋지 않은 날 보고서를 들이밀면 빨간줄이 빽빽한 수정의견과 함께 지금은 상상할 수 도 없는 꾸중을 하시곤, 술 한잔에 깃든 '사랑한다' 한마디로 모든 사과를 대신하셨죠. 이렇게 이야기하니 아주 오래전 이야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불과 15년 전이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오늘날의 팀장은 위아래에 끼어있는 햄버거 패티 같다고 할까요? 개인 업무는 업무대로, 인원관리는 관리대로, 성과는 성과대로 모든 것을 잘해야 위아래가 만사형통하니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열정 가득한 나이스한 팀장이 되고 싶어, 하고 싶은 말의 90%는 어디론가 버려버립니다.


 특히, 성과 면담 시즌이 되면 말 그대로 고행이죠. 팀성과 측정 자료를 만들고, 한 명씩 인터뷰를 진행하고, 각각의 계획을 신나게 세우고 나면 성과입력툴에 '면담지 작성'이라는 빨간 불이 저를 압박합니다. 죽어도 복붙은 못하겠는 성격이라 밤늦은 시간까지 서로 다른 내용의 면담지를 작성하고 혹여나 서운함은 없을까 몇 번을 들여다보고 확인 버튼을 누릅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중간성과 면담시간을 갖으라는 메일이 오네요. 


 하루하루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아침에 아메리카노 투샷을 들고 자리에 앉습니다. 회의 몇 개 하고 팀원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퇴근할 땐 다섯 잔이 놓여있네요. 그런 날에는 낮에 써야 할 집중력을 밤에 쓰다 꼴딱 날을 셉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데이터를 이리 봤다 저리 봤다 유레카를 외치며 들고 들어갔는데 정량도 정성도 아닌 어딘가에 있는 피드백을 받고 돌아와 머리를 움켜잡습니다. 그럼 팀원들을 모아놓고 나도 알지 못하는 답을 이렇게 준비해야 한다고 일장연설을 하고 업무 분장을 시작합니다. "oo님은 이것을, oo님은 이것을 준비해 주세요!" 의심의 눈초리지만 그래도 결국엔 수긍하는 팀원들의 눈빛에 여러 가지의 감정들이 보이는 건 제 기분 탓이겠죠?


 어쩌면 빨간 펜을 들고 보고서를 지적하던 그 시절의 팀장님과는 다른 의미에서 절대적인 존재 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팀원들에게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성과의 숫자 뒤에 숨은 그들의 노력과 성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던 신임팀장시절을 기억해 냅니다. 저녁이 깊어가는 사무실에 남아 또 한 잔의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면담지에 적는 글귀 하나하나에 팀원 개개인의 이야기와 열정이 담겨 있음을 잊지 않습니다.


 더 나은 팀장이 되기 위해 계속해서 배우고, 실수하고, 성장하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내일의 팀장으로서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합니다. 이 모든 경험, 모든 순간들이 결국 나를 더 나은 리더로, 더 나은 동료로,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믿으며 말이죠. 그렇게, 하루의 끝에는 피로함 속에서도 만족감을 느끼며, 내일을 위한 희망을 품고 잠이 듭니다.


 혹시 내 이야기 같은 부분이 있으신가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팀장의 자리에 있다는 건 많은 부담감을 갖게 하죠. 이때부턴 엄연히 '사'측이니까요. 

어디에도 고민을 털어놓기 어려운 자리. 그 자리에서 현재를 사는 것 자체에 존경을 표합니다. 


 이 시대 모든 팀장님들 응원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