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퇴사한아빠 Feb 20. 2024

퇴사한 아빠의 좌충우돌 성장기 #두드려라!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변방의 신학대학교를 졸업한 나는 지원하는 회사마다 서류전형에 통과하는 법이 없었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중소기업에서 벤처 기업까지 어떠한 회사에도 나를 도무지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갈 무렵 생계에 위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가난한 목사인 아버지에게 더 손을 벌리기엔 그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 보였다.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그래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해 보자”를 되새기며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나'에게 집중했다.

군에 있을 때 나는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더 많은 야근을 했었다. 행정병이었던 나는 군 간부에 호출이면 언제든 달려 나가 문서를 만들어야만 했었다. PC에 있는 모든 단축키를 외우고, 단시간 내에 기가 막히게 줄을 맞춰서 작업할 수 있게 혹독하게 트레이닝이 되어 있었다. 제대 후 학교에서 으레 남자들끼리 군대이야기가 시작되면 나는 꿀만 먹고사는 남자벌 취급을 받았지만 프레젠테이션 과제가 있을 때면 모두 문서 좀 만지는 나를 찾았었다. 거기다가 다른 설교문을 들고 읽어도 눈물을 흘리게 했던 말의 기술이 있지 않은가? 

 

 그럼 PC를 가르치는 일을 해볼까? 


 지금이야 사람인, 잡코리아, 링크드인등 많은 채용사이트가 있지만 당시에 우리 동네에서는 교차로 만한 것이 없었다. 교차로 신문의 단 한 개의 공고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한 장 한 장을 넘기던 중 직업전문학교에서 파트타임 OA 강사를 모집하는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신나게 이력서를 작성하던 중 아차 싶었던 것이 있었다. 행정병 출신이었을 뿐 당시에 OA관련 자격이 하나도 없어 이력서에 자격증을 쓸 수 있던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미 뽑은 칼을 도무지 넣을 방법이 없어 이력서 한 장을 들고 무작정 찾아갔다. 


 나의 이력서를 본 직업전문학교의 행정부장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무슨 생각으로 찾아왔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격증 기재 부분이 비어있는 것을 다시 한번 나에게 확인하던 그 표정. 여러 채용과 면접에 들어갔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기가 차다’란 말이 딱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래 일단 실력 한번 봅시다.” 가뭄이 들면 하늘이 비를 내린다고 했던가. 당시 사람을 구하기 어려웠던 그곳에선 강사 한 명을 확보하는 것이 가뭄에 단비 같았고 강의를 하며 자격증을 따는 조건으로 내 인생 첫 경력이 시작되었다.


다시 한번 두드려 본다.


 15년 만에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여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그때보다 호기롭지 않고 그때보다 건강하지 않은 몸뚱이지만 두드려본 돌다리가 많다는 것은 나를 희망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 대한 구분이 명확해지고, 객기를 부리지 말아야 할 순간에 말을 아낄 수 있게 되고, 나를 포장하는 것보다 내실 있는 것을 보여주는 돌다리가 조금은 더 단단해졌기를 기대한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 소속이 없는 사람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출신이 비루하다고 나를 표현한다. 왜냐하면 위에 언급한 것처럼 OA강사부터 시작했고, 공채가 아닌 파견직으로 직장커리어를 시작했었고 계약직, 정규직, 시니어, 파트장, 팀장까지 네곳의 회사를 거치며 성장해 왔다. 다시 말하면 직장 내에서 처할 수 있는 모든 처우를 경험해 보았다. 파견직으로 회사담벼락을 겨우 넘어 계약직으로 성장했고 정규직이 되었다. 시니어, 파트장을 거치며 중간자로서의 리더십을 경험해 왔고 결국엔 팀장으로 발령받아 전체영역을 리딩했었다. 


 그리고 이 커리어를 유지하는 동안 나의 직무는  ‘교육'이었다. 직장인의 꿈이었던 임원의 영역을 위해선 HRM 쪽의 경력을 추가하는 것이 더 좋았겠지만 나는 교육외길을 선택했다. 누군가 나에게 무슨일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교육쟁이입니다.라고 답을 하곤 한다. 내가 구성한 교육을 통해 신입사원이 제 몫을 하고, 현장의 일이 굴러가고, 리더들이 성장해서 기업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걸 보면서 내 마음속 한 곳에서 업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 만큼의 보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를 ‘좋은커리어를 쌓은 교육전문가'로 정의하겠다. 그럴듯하게 표현하면서 우쭐댈 마음은 전혀 없다. 그저 변방의 신학대학교 출신이 어떻게 회사에 자리 잡았는지, 승진을 해왔는지, 이직을 해왔는지, 교육직군에서 성과를 내왔는지, 팀장으로 팀원들에게 사랑받았는지, 그리고 어떤 실패들을 겪어왔는지를 가감 없이 공유하고 함께 좋은 답을 같이 찾아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론적으로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을 돕는 강연자이자 커리어 페이스 메이커'로서 프리랜서로의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책을 쓰고, 사업자를 내고, 강연을 하고, 수익이 발생하는 여러 희망적인 이야기도 있어야겠지만 퇴사 이후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일 때의 고민, 현실적인 준비과정에 집중해서 써려내려 갈 것이다.


 나의 도전스토리가 현재를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퇴사한 아빠의 좌충우돌 성장기 #홀로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