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텍스트, 비판적으로 읽어보기
1.
가끔 가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거나, 지금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이 조금 재미있다거나, 아니면 기가 막힌 비유가 떠올랐는데 상대방도 이걸 바로 이해할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을 때 등등... 다양한 상황에 꺼내게 되는 말이 있다. 바로 "혹시 삼국지 좋아하세요?" 이다.
사실 나는 이 질문과 그다지 어울리는 인상은 아닌 듯하다. 내가 "농구 좋아하세요?" 하고 묻는 채소연 재질의 청순여리연약미소녀는 아니지만... 삼국지는 보통 4050 남성들의 로망을 담은 콘텐츠라는 인식이 강하고, 나는 늘 인스타 어디선가 본 듯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 20대 여성이기 때문이다. 뜬금없는 삼국지를 좋아하냐는 물음은, 긴 무채색 네일과 성수동 미용실의 허쉬컷으로 중무장한 젊은 여자가 묻기에는 다소 언밸런스한 질문으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삼국지는 내 정신의 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내 몇 안 되는 글을 읽어 준 이들이라면 (고맙게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삼국지에 관한 비유 없이는 글을 못 쓸 정도의 중증 삼국지무새이다. 스스로 각종 뜬금없는 보조관념을 끌어다 표현하는 비유 개그의 귀재라고 자부하는 편인데, 삼국지는 이 뜬금없는 보조관념의 천국과도 같은 존재였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다 난데없이 삼국지 에피소드를 들먹이는 화법은 평생 구사해도 질리지도 않고, 레퍼토리가 떨어지지도 않았다.
내가 이런 화법을 구사하게 된 기원은...초등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래된 책이 아주 많이 꽂혀 있었던 우리 집 책장의 맨 아래 칸에는 60권짜리 만화책이 있었다. 도원의 결의, 난세의 간웅, 손책의 쾌진격, 적벽 대전...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여자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한자어들의 조합으로 각기 제목이 붙어 있는 60권짜리 책. 그게 무슨 내용인지 너무 궁금해서 아버지에게 읽어도 되냐고 물어보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음.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그 60권짜리 만화책은 삼국지 덕후들도 꽤나 근본으로 쳐주는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였고, 마침 나는 TV에서 방영하던 고구려 사극들에 흠뻑 빠져 동네 검도장에 다니기 시작하며 공주보다는 장군이 되고 싶어 하던 시기를 보내고 있었으며, 마침 수많은 영웅들이 지략과 무용을 겨루는 이 콘텐츠는 9세 아동에게 신세계를 열어 주고 말았다. 물론 아홉 살짜리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어렵고 잔인하고 충격적인 내용이었지만... 그 여름 나의 우상은 티라노사우르스에서 관우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그 후 나는 초-중-고등학교 내내 다양한 버전의 삼국지 만화와 텍스트를 섭렵하며 훌륭한 삼국지 마니아로 자라났고... 나와 동생들이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고 나자 정말로 아버지는 자녀들과 인생을 논해 주시기 시작했다. 사실 나의 '뜬금없는 보조관념 끌어와서 굳이 빗대어 말하기' 습관은 아버지로부터 온 지독한 친탁인데, 아이들이 아버지의 삼국지 비유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자 대화의 재미 수준 자체가 달라졌고 우리 삼남매 모두 아버지의 그 기묘한 비유 화법을 물려받게 된 것이었다. '갑자기 삼국지 이야기 하기'는 나름의 가풍처럼 자리잡았고, 내가 서른을 앞둔 지금까지도 나의 화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2.
아홉 살 때 읽은 60권짜리 만화책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우선 수백 명의 인물이 등장해 뚜렷한 캐릭터성을 갖는 대작 콘텐츠를 그 어린 나이에 섭렵했으니, 자라며 자연스럽게 탐구할 만한 요소가 아주 많은 콘텐츠들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 결과... 좋은 말로 하면 나름 폭넓은 분야에 박학다식한 어른이 됐고, 나쁜 말로 하면 주류와 비주류를 아우르는 종합오타쿠가 됐다. 오타쿠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에 삼국지를 깊이 탐구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삼국지가 먼저냐 오타쿠가 먼저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질문으로 크게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저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이십 대 후반에 이른 지금 각종 서브컬쳐에 조금씩 고여 있는 오타쿠 어른으로 자라 버라고 만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그냥 패션 오타쿠인 줄 알았는데 진짜 오타쿠시네요.' 라고 말하면 기뻐해야 할지 기분나빠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런 사회인이 되고 만 것이다.
둘째로 삼국지는... 나에게 기개와 허세를 주입했다. 사주 자체가 장군 기운을 타고난 범띠라고는 하지만, 그러한 성향에 이 콘텐츠는 기름을 부어 버리고 만 것이다.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고 돌아오는 관우, 장판교에서 조조의 백만대군을 홀로 상대하는 장비, 주군의 아기를 안고 혈혈단신으로 적진을 돌파하는 조자룡... 이 영웅들의 모습은 독립성과 책임감을 중시하는 K-장녀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시련의 순간, 어디가 아프거나 너무 서러워 울어버리고 싶거나 할 때마다 생각했다. "관우는 화타가 마취도 없이 팔뚝 생살을 찢고 뼈를 긁어내는데도 태연하게 바둑을 두었는데, 내가 이깟 게 뭐라고 엄살을 부리지?"...
어느 순간부터, 직장 상사들은 나의 최대 강점으로 무슨 일이 닥쳐도 "하.. 그래도 해야죠 ㅠㅠ" 하고 저벅저벅 야근하러 오는 태도를 꼽는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이들에게 "여성분에게 보통 잘 안 쓰는 표현이긴 한데 성격이 상당히... 호방하시네요." 라는 말도 듣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급부로 늘 뭔가를 증명해 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놓여 있었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건 종종 독선적이거나 허세 있는 태도를 만들기도 했다.
3.
관우의 기백과 공명의 지혜를 동경하며 자랐지만, 현대사회는 제후들이 군마로 다투는 고대의 중원이 아니긴 했다. 어른으로서 생각의 중심을 잡고 살기 위해서는 고전에서 이야기하는 것 너머의 인사이트가 필요했다. 삼국지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 어떤 유형의 인간이 뛰어난 인물이고 그렇지 않은 인물인지 최초로 생각하게 만들어 준 콘텐츠였으나 일단은 거기까지였다. 고민해야 할 것 투성이인 세상을 살아가며 더 많은 것을 공부해야 했고, 그러면서 삼국지보다 더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수십, 수백 가지의 콘텐츠들을 마주하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점차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사리판단을 하게 되면서, 내가 중시하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또렷해졌다. 세상은 후한 말과는 다른 양상으로 어지러운 난세였지만, 나는 황실의 후손도 선택받은 호걸도 아니었다.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대와 투쟁이 필요한 시대였다. 노동, 정의, 지속가능성, 평등, 평화 … 산업사회의 발전은 한계에 도달하고 자본주의의 문제가 정점에 선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또한 여성이자 청년이자 지방 출신이자 노동자이자 아시안이자… 수많은 정체성을 가진 개인으로서 자연히 관심을 두게 된 키워드들이었다. 어떻게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나의 소시민적 태도에 실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됐다.
이러한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어린 나의 경전과도 같던 삼국지는 너무나도 나의 정의관과 동떨어진 전근대적인 텍스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른이 되고 나서 삼국지를 읽으면, 유비와 조조와 공명에 이입되기보다 그들이 작전을 한 번 쓰고 군사를 한 번 일으킬 때 죽어나가는 수많은 백성들이 보였다. 심심찮게 등장하는 ‘병사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처자식을 포함한 일족을 참수했다’ 따위의 건조한 표현이 신경 쓰였다. 연환계의 수단이 되기도, 공물이 되기도, 정말 가끔은 영웅을 위한 ‘고기’가 되기도 하는 그 텍스트 속의 여성들도 보였다. *삼국지연의에는 유비가 패주하던 도중 한 민가에 몸을 숨겼을 때 사냥꾼이 평소 흠모하던 유비를 대접하고자 하는데 고기가 마땅치 않자 자기 아내를 죽여 그 고기를 이리 고기라고 속이고… 대접하는 정신나간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걸 미담이랍시고…
어떻게 보면 삼국지는 봉건 사회의 구시대적 가부장제 미화와 남성중심의 영웅주의로 점철된 텍스트이고, 생명에 대한 존중이나 약자 보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고대의 잔혹한 잔재이다. 그냥 고전일 뿐이고 옛일을 다룬 콘텐츠이니 깊이 생각하지 말자고 하기에는 지금 이 순간도 지구 곳곳에서 전쟁과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위 촉 오가 패권을 다투던 시대에서 2천 년쯤 지난 지금, 여러 발전의 단계를 거쳐 온 인간은 더 이상 힘을 중심으로 약육강식의 논리를 따르는 존재가 아니게 됐다. 백성을 굽어살피어 성군으로 칭송받는 귀 큰 군주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인간 개개인이 모두 존엄함을 모두가 자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 깊이 생각해 보면, 머리가 참 복잡해진다. 여전히 세계는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더 약해지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내 눈에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대통령은 동탁으로 보이긴 한다.
결국 이 시대를 헤쳐나가는 길을 잃을 것 같을 때면, 그 전근대적이고 폭력적인 텍스트 속으로 또다시 도망치게 된다. 2천년 전에 다 함께 잘 살고 싶다는 고민을 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눈앞이 캄캄했을지 생각하고, 그 수많은 영웅 중에서 지금의 내가 벤치마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지 찾게 된다. 이것이 지금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고 윤리적이지도 않은, 구닥다리 텍스트를 자꾸만 다시 열어보고 인용하게 되는 이유다. 이게 바로 고전의 의미군. 클래식 네버 다이…
나는 그저 탁현 시절의 유비가 돗자리를 엮었듯 하루하루 광고를 만들고 트렌드를 좇으며 살아가는 소시민일 뿐이다. 다만 어지러운 세상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 게 맞을지 고민하는 일은 멈추지 않고 싶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이런 난세에 어쩌다 나에게 천하를 통일할 기회가 주어질지도…
(실제로 유비가 돗자리장수를 하다 황건적 토벌을 위해 군사를 일으킨 나이가 28세이다. 그리고 나는 올해 스물여덟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