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gramable Life

촌스러운 그 감정 근데 내 가슴이 뛰어

by shotchuu


내 자신의 키 메시지이자 브랜드 슬로건 중 하나는 ‘느좋 대법관’이다. 나름대로의 취향과 센스를 가지고 줏대 있게 느낌 좋은 것들을 찾아 헤매는, 바쁘게 트렌드를 좇는 삶. 최근에 눈에 뜨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S/S 신상품 드롭을 기다리는 젊은 날. 뭐 딱히 인플루언서가 되거나 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지인들이 보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감각 떨어지는 사진은 올리고 싶지 않은… 그래서 트렌디하고 간지나게 사진 찍는 방법을 천 가지쯤 알고 있는… 그저 평범한 20대의 삶이다. 그런 나의 소비심리와 사회적 느좋 페르소나를 만들고 싶은 심리를 탐구하며, 그 인사이트를 돈벌이에도 조금씩 반영하며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지금까지 이만큼 쓴 내용은 전부 다 나 역시 평범하고 지독한, 허세에 가득찬 인스타충 젊은이라는 고백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나는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고 깊이 없는 세상이 싫다는 말을 늘어놓는다. 자본주의가 싫다 요즘 이 트렌드는 천박하다 어쩌구 저쩌구 고결한 척 불만을 쏟아낸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도 계속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모순을 담은 글을 쓴다.

바로 어제, 친구들과 Mundo Pixar 전시를 다녀왔다. 성수문화예술마당에서 열리는 픽사 몰입형 체험 전시였다. 뭐 다른 인생작품 몇 개 (삼국지 진격의거인 필리버스터 한 것처럼) 만큼 미쳐 있는 작품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꽤 평범하게 픽사 작품 몇 가지를 좋아했다. 어릴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에 위안을 주는 상상의 세계, 쓰레기 같은 미디어 세상에서 세계인의 동심을 책임지는 존재. 역시 돈을 쓸어모으는 거대 다국적 기업이지만, 나름대로 지구의 허파 아마존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미디어 업계 종사자이자 철이 덜 든 어른으로서 토이스토리나 인사이드 아웃은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까. 몰입형 체험 전시를 통해 그토록 아름답던 상상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면 참 좋긴 하겠다… 라는 생각이었으나.


막연히 그럴 거라고 예상을 하긴 했어도, 이것은 전시라기보단 포토존 대여 서비스에 가깝게 느껴졌다. 각 애니메이션을 테마로 한 13개의 공간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한 타임 인원으로 집어넣고 5분이라는 시간 제한을 준다. 그러면 다들 찍고 싶은 포토존으로 뛰어가서 줄을 서고, 공장처럼 사진을 찍고 다음 공간으로 이동한다. 테마 공간은 나름대로 각 애니메이션의 고유한 분위기를 잘 구현해 놓았으나, 사진을 찍고 뽕을 뽑으려면 그걸 감상할 여유는 전혀 없다. 인기가 유독 많은 토이스토리 방에서는 매 타임 앤디의 침대나 우디 옆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엄청난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픽사, 상상의 세계로‘ 라는 전시의 캐치프레이즈가 무색하게, 전시 공간에 온 우리 어른들은 사진 건지느라 상상의 세계로 들어갈 여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의 사진을 건져 주고, 내 사진도 건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기계처럼 구도를 잡아 주고, “야 2배 줌으로 몇 장 찍고 광각 하이앵글로 플래시 터뜨려서 몇 장 찍어줘 오케이 간다” 하고 달려가 포즈를 취했다.

어제의 포토존 대여서비스에서 건진 베스트 느좋 컷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가 걸리는 숫자는 아마 이 전시의 KPI일 것이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맡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인스타그래머블한 포토존을 만들어 메인 해시태그를 건 피드가 우후죽순 올라오도록 전략을 짰을 거다.

하지만 이 친구들과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삼만 원짜리 전시를 보고 왔는데, 남은 게 사진밖에 없다. 그마저도 나의 추구미에 100% 부합하지는 않는다는 게 나를 열받게 한다. 사실 나는 그동안 다른 인스타충 젊은이들과는 약간 다르다는 알량한 허영심이 있어서 (누누이 말했지만 다르지 않다) 이런 포토존 형태의 전시를 매번 기피해 왔는데, 이 악물고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리움 내지는 지역 시립미술관 전시만 다니며 고고한 척했는데, 지금까지 그랬던 건 나의 이런 모습을 마주하기 싫어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은 누구보다 인스타충인 주제에 인스타 포토존 전시 다니는 건 또 추구미에 안 맞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난브랜드마케터이자소비사회의모순을자각하고있는반자본주의자이자똑똑한힙스터젊은이이므로그러지않아”라는 비대한 자아는 그냥 또다른 인스타그래머블한 추구미일 뿐이다. 사실 나 미술관도 철학책도 예술영화도 정말정말 좋아하는 건 맞는데, 그건 추구미에도 맞고 가오도 사는 취미니까 인스타에 올릴 수 있는 거다. 미감이 떨어지거나 가오가 떨어지는 씹덕후 취미를 향유할 땐 굳이 피드에 박지 않으니까.

불안아 나에게 힘을 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