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사원 에피소드
나의 신입 사원 시절을 돌아보면
나도 요즘 말하는 MZ세대 친구 같았던 것 같다.
물론 M에 가까운 MZ세대이긴 하지만.
1950년대에도 어른들은
요즘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했다고 하지 않은가.
나의 첫 사수는 그다지 멋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신기한 사람이었다.
막 입사한 신입 사원의 사생활을 꼬치꼬치 캐묻고
말도 안 되는 일들로 나를 혼내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죄송하다’고 했다.
그렇게 나의 첫 회사 생활은 꽤 힘든 국면을 맞이했다.
나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는 날이었다.
회의실에 사수와 내가 마주 보고 앉아 있었고
사수는 프로젝터로 본인 노트북 화면을 띄워
업무에 관해 상세한 내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신입 사원인 나는 노트와 펜으로 메모를 하고
간혹 노트북으로 체크를 하면서 듣고 있었다.
‘네’,
‘아 그렇군요’,
‘이런 건 이렇게 하는 건가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질문과 대답을 하면서
사수가 설명해 주는 내용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사수는 뜬금없이 나에게 반응이 왜 그러냐고 했다.
반웅이 왜 그러냐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잠깐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그랬더니 대답을 너무 생각하면서 하지 말라고 한다.
무슨 반응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결국 나는 답을 찾지 못하고,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인수인계를 받으며
반응이 왜 그러냐, 생각하고 답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줄곧 '죄송하다'라고 했다.
왜 죄송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계속되는 인수인계 속에서
사수는 나에게 또다시 반응이 왜 그러냐고 했다.
이때부턴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거의 두 달 동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표정 관리도 할 수 없었다.
뭔가 달라진 것을 감지한 사수는 나에게
괜찮으니 할 말 있으면 하라고 했다.
(알다시피 이런 회유에는 넘어가면 안 된다.)
나는 없다고 했고, 집요하게 할 말을 해보라던 사수에게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어떻게 반응하면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도 최대한 참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감정이 섞인 말투였다.
그러자 사수는 구체적인 방향성 없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반응이 왜 그러냐'는 질문에 '어떻게 반응하면 되냐' 물었으나
'어떻게'는 빠져있고 화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평가하겠냐’라며
노트북을 쾅 닫고 회의실을 나갔다.
당시 나는 신입 사원이었지만 인턴 기간이었다.
6개월의 인턴 기간을 거쳐야 정식으로 신입사원이 되는 과정이었다.
다만, 이 인턴십은 기본적으로 교육의 기간을 의미하고
실제 신입사원으로 전환되지 않은 인턴은 그동안 없었다.
하지만 이 사수는 그 인턴십 평가를 무기로 나를 협박한 것이다.
나는 이날,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다음날 출근한 사수는 뜬금없이 나에게
‘생각 좀 해봤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 무엇을요?‘라고 대답했다.
정말 내가 뭘 생각했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알겠다고 하더니 30분 뒤 나를 불러냈다.
그는 나에게 오늘이 인턴십 평가 제출 마감날이라고 했고
본인은 나에게 0점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나와 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인턴십이 모두가 합격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다시 나를 협박했다.
나는 마음대로 하라고 했고, 나도 당신과 일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팀장과 부서장에게 퇴사 면담을 신청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용기 있는 퇴사 신청이었다.
30살에 겨우 합격한 회사에서 반년만에 퇴사라니.
훗날 두고두고 왜 그런 이력이 남았는지 해명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여전히 어렸던 것 같다.
그렇게 면담은 팀장과, 부서장 순서로 진행됐다.
팀장, 부서장 모두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물었고
나는 그동안 사수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과는 일할 수 없어서 퇴사하기로 했다고 했다.
부서장은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며 삼자대면을 제안했다.
삼자대면에서도 그는 당당하게, 아니 오히려 화를 내며
‘고객이 부당하게 요구해도 이렇게 할 말 다할 거냐’라며
모두의 앞에서 또다시 화를 냈다.
본인이 한 행동이 부당하다는 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내가 운이 조금 좋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이미 그 회사에서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사수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을 때 모두가 알고 있다는 분위기였다.
또 다른 운이 좋았던 부분은, 인턴기간 동안 같이 협업했던
다른 팀 사람들이 나를 좋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팀장과 부서장은 다른 조직 사람들로부터
이미 나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에
사수 혼자 나에 대한 욕을 하고 일하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 사실도 나중에 다른 팀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결국 팀장과 부서장은 나에게 한 달만 시간을 달라고 했고,
한 달 뒤, 팀장은 나를 다시 불러냈다.
팀장은 단도직입적으로 여전히 퇴사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 사람이랑 일해야 한다면 퇴사하겠다고 했다.
그 사람이 없으면 일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뒤 그 사수는 팀이 재배치되었고
나는 그 사수의 자리에서 일하게 되었다.
해피 엔딩 같지만 마냥 기쁠 일은 아니었다.
내가 그 사람만큼의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지금이라면 별다른 걱정이 없었겠지만
막 입사한 신입 사원이 과장이 하던 일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부담감은 만만치 않았다.
그런 부담감 속에서 나름 열심히 업무에 임했고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적응하여 얼마 되지 않아 사내에서는
꽤 인정받는 사원이 되어 있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당시 나의 대응이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더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만 나열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냥 이런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해도
판단은 듣는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여전히 내가 믿고 있는 부분은
참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이야기라도 풀어낼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모든 이야기에 감정이 배제되어야 한다.
감정은 나의 판단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가끔 그때는 무척이나 고민스러웠던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신입 사원 시절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면 재밌기도 하고
그런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작금의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들에게 지금 힘든 일이 있더라도
지나고 나면 별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 같이 견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