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담아내는 시간
퇴근 후 사원증을 벗어던진 책상 위,
나는 조심스레 찻잔 하나를 올려둔다.
낮 동안 내가 만졌던 사물들이 주로 ‘속도’와 ‘효율’을 강요하는 것들이었다면,
이 찻잔은 정반대의 속성을 지닌다.
그것은 ‘느림’과 ‘기다림’,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집중할 것’.
사실 찻잔이라는 사물은 꽤나 비효율적이다.
종이컵처럼 한 번 쓰고 버릴 수도 없고
텀블러처럼 온종일 온기를 가둬두지도 못한다.
심지어 깨지기 쉬워 애지중지 다뤄야 한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1분 1초를 쪼개 살던 내가
이 번거로운 사물에 집착하는 이유는, 찻잔이 가진 그 ‘연약함’과 ‘단호함’ 때문이다.
뜨거운 물이 찻잔에 닿는 순간, 찻잔은 비로소 자신의 사생활을 시작한다.
차가운 도자기가 온기를 머금으며 미세하게 팽창하는 그 짧은 찰나,
나는 비로소 직장인이라는 껍데기가 균열을 일으키는 소리를 듣는다.
찻잔 속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딘 보이차 잎이 서서히 몸을 편다.
낮 동안의 지친 회사 생활로 잔뜩 움츠러들었던 나도
찻잎을 따라 함께 이완된다.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맡는 그 짙은 흙 내음은,
사무실의 인공적인 공조기 속에 무뎌졌던 나의 후각을 깨워낸다.
니체는 ‘자기 극복’을 말했지만, 사실 거창한 철학적 투쟁보다
더 힘든 건 찻잔을 든 채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산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병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은 잔 속에 담긴 차 한 모금을 넘기는 순간,
세상의 시계는 잠시 멈춘다.
찻잔은 비어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채워졌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
낮 동안 세상의 온갖 소음으로 가득 채워졌던 마음을 비워내지 않으면,
진짜 나만의 사유를 담을 공간은 없다.
그래서 나는 매일 밤 의도적으로 나를 비우고,
그 빈자리에 가장 맑고 뜨거운 나의 본질을 채워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