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질근질한 9년 차
직장인으로서 3/6/9년 차가 되면
마음이 붕 뜨면서 이직을 하고 싶은 타이밍이 온다고 한다.
그런 의미로 나는 올해 9년 차이다.
나도 근질근질하다.
사실 올해 초부터 틈틈이 이직을 준비해 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요즘 같이 모든 영역에서 AI가 화두가 되는 시대에
내가 몸담고 있는 제조업에서의 한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직원들에게 AI 교육을 열심히 하고
실제 현장에서도 AI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그럼에도 주변 동료들이 AI를 사용하는 방식을 보면
대부분 '조금 더 똑똑한 검색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무래도 업계 특성상,
IT 기반 회사들에 비해 변화가 느린 탓도 있을 것이다.
Agile이라고 부르는 문화는
지금의 회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긴 회의와 복잡한 보고 체계,
결정이 내려오기까지의 느린 속도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다른 세계'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환경을 바꾸기로.
아마 마지막으로 업종을 바꿀 수 있는 타이밍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더 경력이 쌓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테니까.
물론 단순히 지금의 회사가 싫어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은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덕분에 성장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함께 일한 고객사 사람들, 협력 업체 사람들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드는 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동료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함께 고민하고 함께 어려움을 견뎠다.
덕분에 회사에서의 전우애 같은 게 생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고민하는 이유는
결국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라는
조용한 질문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완전한 회의가 생겨서가 아니라,
내 가능성이 이 환경에 갇혀 있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금 더 큰 세상에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자주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도망일까, 선택일까."
지금을 피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인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방향을 향한 선택인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무작정 퇴사를 하겠다는 마음보다는
나를 먼저 더 들여다보려고 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몰입하는지,
어떤 순간에 성취감을 느끼는지,
어떤 일에서 성장한다고 느끼는지,
어떤 사람들과 있을 때
내가 나답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
이직 공고를 찾아보는 시간만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리하는 데에도 시간을 쓰려고 한다.
어쩌면 중요한 건
이직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그 결정을 내리는가 일지도 모른다.
회사를 옮기는 것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고민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서 아무 변화도 시도하지 않은 채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며 같은 불만을 반복하는 것도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실패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력서를 조금씩 수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하고,
관심 있는 업계를 공부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회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나의 다음 장을 준비한다.
내일도 출근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