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 일이 좋은 순간

힘들지만 하는 거지

by Dean

매일 출근하면 같은 일을 반복한다

회의와 보고의 연속이다.


다른 팀들과 의사 조율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객과는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는지,

일정은 또 언제까지 마무리되어야 하는지


Project Manager로서의 업무는 ‘소통’이 제일 중요하다.


ISTP인 나는 이 ‘소통’이 많아질수록

소위말해 기가 빨린다.

그러다 보니 회의가 많은 날은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곤 한다.


나한테 맞는 포지션인가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일이 좋은 순간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마침표가 있다는 점이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어느 날은 정말로 제품이 되어 세상에 나온다.

긴 일정과 검토, 수많은 평가와 수정, 협의 끝에

실제 물건으로, 결과물로 남는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날이 떠오르고,

회의실에서 끝까지 설득했던 장면이 떠오르고,

안된다 했던 것들을 어떻게든 비틀어

가능하게 만들었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따라온다.


출시의 소식으로

나에게는 조용한 마침표가 찍힌다.


내가 참여했던 제품을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우연히 보거나

지인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그 물건을 쓰는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 제품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의지가 깃들었는지를.


티는 나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 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의외로 의사소통에서 오는 순간이다.

고객과, 다른 팀과,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힘겹지만 오랜 시간 줄다 기리를 할 때가 있다.


처음에는 각자 자기 입장만 이야기한다.

"이건 안된다", "왜 우리가 해야 하느냐",

"그 일정은 안된다"라고 말이다.


회의도 길어지고,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다.

서로의 표정도 점점 굳어지고, 공기도 무거워진다.

화상으로 하는 회의는

반대편의 마이크가 음소거가 되어 침묵이 흐른다.


이 과정이 솔직히 쉽지 않다.

중간에서 양쪽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중재하는 일이 쉽지 많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점에서 조금씩 균형점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럼 여기까지는 저희가 할게요"

"이 부분은 우리 쪽에서 검토해 볼게요"

"같이 만들어 보시죠"


서로 한 발씩 물러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엔 동시에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이다.


그렇게 몇 번의 회의와 수정,

주고받는 메일과 전화 끝에

드디어 정리된 안으로 합의가 모일 때가 있다.


회의실을 나오면서 모두가 박수를 치지는 않지만,

표정이 밝고, 목소리도 힘차다.

그때 느껴지는 작은 성취감과 묘한 뿌듯함이 있다.


"그래도, 이 복잡한 걸 어떻게든 풀어냈구나."


내가 하는 일은

누가 봐도 눈에 띄는 히어로가 되는 자리가 아니다.

앞에 나서는 사람은 따로 있고

실제 결과물에는 여러 사람의 이름이 들어간다.


그래서 더더욱 이렇게 조용하고 짧은 순간들이

내가 일을 하는 데 중요한 순간이다.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

그리고

여럿이 함께 한 배를 타는 순간.


회사를 다니다 보면

정말 많은 일들을 마주하고

그중의 대부분은 힘든 일 들이다.


끝나지 않는 회의와 갑자기 바뀌는 방향성,

위에서 떨어지는 새로운 요청들.

동료들과의 식사시간에도 주제는 항상

회사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들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세상에 나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스며든다는 생각,

함께 고생했던 동료들과 작게 웃었던 순간들,

힘들어도 결국 해냈던 기억들.


내 일에는 분명히 지치는 지점도 많지만,

그래도 좋은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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