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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한 Oct 27. 2020

시청 산림과 출신의 중년, 만수 씨의 직업병

꼭 그래야만 속이 후련했냐? (3)

반려식물을 무지막지하게 사랑하는 60대의 중년 남성, 만수 씨는 공무원 출신이다.

그의 젊은 시절은 학연과 지연, 훈장과 감투로 주머니를 채우던 공무원들의 화려한 전성시대였다.

그는 잘 다니던 시청의 산림과를 박차고 나와 어느 날 갑자기 산속으로 들어갔다.

밤나무로 이루어진 산을 통째로 사들인 그는, 밤 농사를 시작했다.

시작은 아주 호기롭게, 누구보다 꿈에 가득 찬 젊은 아버지의 산은 그야말로 네버랜드였다.

닭들이 뛰어들고, 아름다운 조경으로 만든 호숫가에는 잉어들이 헤엄치고, 흑염소까지 새끼를 낳아주니,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뿐. 현실은 냉혹했다.


그 당시만 해도 농업은 스마트하지 못했다.

그는 건너 건너 주워들은 '유기농법'을 추구하려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약재도 사용하지 않고 병해충을 견뎌내는 밤을 얻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일꾼이라도 쓸라치면, 손익은 그새 마이너스를 찍고 더 깊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는 얼마 못가 중요한 이치를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구나.


이런저런 이유로 그는 밤 농사를 접기로 결정했다.

그에겐 꿈보다 지켜야 할 더 소중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쪽같은 두 딸과 월급쟁이 공무원 아내.

세 여자를 건사하기 위해서 그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선택했다.

그에게 해야 하는 일은 바로 돈 버는 일이었다.


어찌 보면 멋진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농사일은 말 그대로 최고 난이도의 노동력이 필요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밤산을 잘 가꾼 후 산을 몽땅 팔아버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에게 사업은 꽤나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이런저런 사업으로 중년을 다 보내고, 50대 중반쯤이 되었을 때였다.

그와 아내는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다.


자네도 고생 많았네. 이제 우리도 아파트에서 편하게 삽시다.


그와 아내는 이제 서울에서 사는 딸들과 손주들을 보기 위해 서울에도 자주 놀러 오고, 아내와 여행을 가기도 하고, 그는 은퇴한 아내와 느리게 사는 삶의 즐거움을 하나둘 배워가고 있었다.


각종 취미생활을 섭렵한 만수 씨.

그가 제일 사랑하는 취미활동은 바로, 반려식물 기르기였다.


옥탑이 딸린 아파트 꼭대기층에 살고 있는 만수 씨는 옥상과 연결된 문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인테리어 업체를 불러, 옥상과 연결된 곳에 출입문을 만들었다.

그리곤 옥상에 한가득 반려식물을 채워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관리실에서 연락이 왔다.

"저..., 신고가 들어와서요. 어떻게 나가신 줄은 모르겠지만, 옥상에서 자꾸 뭘 하신다고.... 저희 아파트 옥상은 안정상 출입금지입니다."


그러다 건축업의 법률이 바뀌면서 사람들이 만수 씨의 집을 직접 방문해, 옥상 출입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그 후로 만수 씨의 다육이들을 밑으로 이사를 했고, 아파트 창틀이며, 베란다며, 작은 방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눌러앉았다.

그럼에도 자꾸만 화분을 사들이는 만수 씨에게 아내의 잔소리를 점점 늘어갔다.


"이 노매 화분들 좀 그만 사라니까!"

"왜 그랴, 내 사는 낙이여!"

한 동안 아내와 만수 씨의 논쟁은 끊이질 않고 계속됐다.


여보, 도대체 이럴 거면 왜 아파트로 이사한 거야?




하루는 만수 씨와 아내가 서울에 올라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서울에서 딸들 내외와 저녁식사를 하게 된 만수 씨.

그는 저녁 7시가 지날 무렵부터 초조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시로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뭔가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불안해했다.

그런 만수 씨를 보고 딸이 물었다.


"아빠, 왜 그래?"

"아니야."

"아니, 아까부터 자꾸 시계는 왜 쳐다보는 건데?"

"아니, 자고 갈려고 했는데...."

"???"

"밤새 비가 온다잖아."

"그러니까, 자고 가면 되잖아."


만수 씨가 입술을 깨물며 "어떡하지?" 하는 눈빛을 보내자, 결국 아내가 나섰다.


"다육들이 비 맞는다고 저러신다. 베란다 창문 열고 나왔다고."

"뭐라고?"


만수 씨가 저녁식사 자리에서부터 초조해하던 이유는 바로, 소중한 다육이들이 때문이었다.

만수 씨가 서울에서 자고 내일 가게 되면, 그의 또 다른 자식들. 반려식물들이 밤새 비를 맞고 찬 바람에 덜덜 떨다 몽땅 얼어 죽어 버릴 거란 거였다.

그 날 결국 만수 씨는 아내를 서울에 두고 부랴부랴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그는 수백 개의 화분을 따뜻한 곳으로 옮기고, 다음 날 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이게 바로 '사서 고생이라는 거구나.' 싶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사서 고생' 사건 이후로, 두 딸은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반려식물 사랑을 존중하기로 했다.

만수 씨에겐 반려식물 기르기가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일 테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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