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간수집가 Oct 30. 2022

빈티지 하우스 살아가기

100년 전 버지니아 울프를 기억하며

100년 전 버지니아 울프의 방을 상상해본다. 삐걱거리는 낡은 나무 바닥,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종이들, 너무 많이 앉아 푹 꺼져버린 1인용 소파. 그리고 구석에는 마호가니 뷰로가 자리 잡고 있다. 뷰로의 뚜껑은 항상 열려있다. 정돈되지 않은 방의 모습이지만 그녀는 이곳에서 사색하고 글을 쓴다.


나는 영국에서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여자다.
...
나는 지금 습하고 푸른 저녁노을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저녁노을은 짜증스럽고 우울한 날에 대한 뒤늦은 회한이며, 지금은 사라졌지만 틀림없이 구름은 언덕 위에 금빛으로 빛나면서 언덕 꼭대기의 가장자리를 부드러운 금빛으로 장식했을 것이다.

[울프 일기] 1925년 9월 22일 화요일, 버지니아 울프, 솔출판사


100년이 지난 뒤, 한국의 어느 독자가 영국 앤틱 뷰로 앞에 앉아 [울프 일기]를 읽고 있다. 1925년, 영국에서는 한정적으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자유를 누렸지만 2022년에는 누구나 글을 읽고 쓴다. 100년 전 버지니아 울프의 시선과 생각이 또다시 나를 감정적으로 흔든다.


우리 집 거실에 한쪽에는 100년 된 마호가니 앤틱 뷰로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오래된 가구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구옥 거실에도 제법 잘 어울려주고 있다. 한껏 뽐을 내는 큰 가구들과는 다르게 수줍은 듯 조용히 자리를 잡고는, 아름다운 마호가니 나뭇결무늬를 비춰주고 있다. 부지런히 오일로 닦아 길들인 나무 냄새. 빈티지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이 들인 수고로움과 손떼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100년 가구의 찬란한 멋이 더해지는 것이다.


앤틱 가구는 우리 집 분위기를 담당하고 있다. 빈티지 소품은 집에 아기자기한 따뜻함을 선사해준다. 그리고 역사를 간직한 구옥 집은 그냥 거기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아늑해진다. 이 모든 것이 합쳐 나의 빈티지 하우스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집 개조를 끝냈다고 해서 빈티지 하우스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초록이 주는 싱그러움을 놓칠 수 없어 주기적으로 식물들을 돌봐야 한다. 매달 읽고 싶은 책들을 사서 책장에 예쁘게 진열해둔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책을 읽으며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진다. 찻잔은 그날 기분에 따라 고른다. 오늘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펼친다. 문장 하나하나가 유려해 곱씹어 보고 싶은 문장들을 필사해본다.


빈티지 하우스는 '완성'이란 게 없다. 매일같이 돌보고 가꾸어주어야 한다.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을 소중히 하고 오래된 것을 존중하며 빈티지 하우스에서 빈티지 라이프로 살기로 했다.


그래. 천천히 시작해보자.

이전 17화 햇빛 한가득 지중해 무드 욕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