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속 빈티지 공간 탐구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독특한 미적 감각과 정교한 디테일로 가득 찬 시각적 향연이다. 그중에서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눈에 띄는 보석으로, 1930년대 유럽의 황홀한 풍경과 함께 하나의 시대를 그려낸다. 그는 이 영화에서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에 대한 향수를 담아냈으며, 그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완성했다.
<판타스틱 Mr. 폭스>나 <다즐링 주식회사>, <문라이즈 킹덤>까지 그만의 정교한 미감과 유머코드를 사랑했던 나로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와서는 꽃을 피웠다고 생각했다. 수년이 지나 다시금 이 영화를 보니, 영화의 작품성이 화려한 미장센에 가려져 오히려 평가절하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좋았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세계에 들어가는 경험이다. 이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함께 그가 그리워한 시대공간을 탐험해 보자.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속 빈티지 공간 탐구
1. 삼중 액자 구조 - 4개의 시대를 보여주는 방식
2. 핑크빛 호텔과 카페 멘들스
3. 구스타브라는 인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독특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액자식 구조를 통해 4개의 시대로 계속해서 파고들어 들여다본다.
(첫 번째 액자: 현재) 핑크색 책을 손에 쥐고 작가의 동상을 바라보는 학생이 서있다.
(두 번째 액자: 1985년) 동상의 주인공인 노년의 작가가 책상에 앉아 '작가란 무엇인지'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작가가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해 스토리를 창조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작가가 하는 일은 그 정반대다. 작가는 그저 잘 지켜보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다"
(세 번째 액자: 1968년) 17년 전 젊은 시절의 작가가 호텔의 소유주인 나이 든 제로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네 번째 액자: 1932년) 어린 시절 호텔의 로비보이였던 제로와 호텔의 컨시어지 구스타브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이 네 번째 액자 속 이야기가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다.
4개의 시대는 모두 당시의 촬영기법을 그대로 사용하며 각기 다른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모두가 앤더슨 특유의 정서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웨스 앤더슨은 왜 이리도 복잡한 구성을 써가며 본론으로 들어간 것인가. 그것은 옛날 옛적의 이야기처럼 직접 겪어보지 못한 과거의 향수와 동경을 이야기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웨스 앤더슨이 그토록 동경한 과거는 어떤 곳일까. 가상의 나라 주브로브카 공화국은 특정 유럽국가를 칭하는 게 아닌,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영화로웠던 유럽이라는 관념의 세계다. 이제는 폐망해 버린 동유럽 제국을 호텔이라는 작은 세계를 보여주며 그리워하는 것이다.
1932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당시의 화려했던 시대를 화사한 핑크빛으로 묘사한다. 모두가 떠난 낡은 호텔이 되어버린 회색빛 호텔과 더욱 비교될 수 있도록.
마치 인형의 집이나 과자 집처럼 보일 정도로 예쁜 호텔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폭력적 사회와 더욱 대조되도록 해서 블랙 코미디를 보여준다. 모든 게 의미가 있는 웨스앤더슨의 미감이지만, 오로지 그의 댄디즘을 시각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카페 맨들스 역시 단순히 예쁘게만 보이려고 핑크빛 가게로 한 게 아니라, 감옥, 전쟁, 군대처럼 폭력적인 현실과 대비되도록 더욱 마술처럼 연출한 것이다. 특히 펼쳐지듯 열리는 패키지 상자는 감옥 교도관의 마음까지 풀어지도록 하는 매개가 된다.
무스 구스타브는 누구보다 우아하고 천박한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모두에게 '달링'이라고 말한다던가 시를 쓰는 낭만적인 사람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노년의 손님들과 사랑을 나누는 남창이기도 하다. 늘 드레스업 된 아웃핏, 곧은 자세,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 자제력을 잃을 때 나오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까지 캐릭터 확실한 이 호텔 컨시어지는 저물어가던 당시 제국 그 자체를 비유하는 인물이다.
이야기는 총 5가지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1. 무슈 구스타프
2. 마담 셀린느 빌뇌브 데고프 운트 탁시스 마담 디
3. 체크포인트 19 교도소
4. 십자 열쇠 협회
5. 두 번째 유언의 사본
1932년 11월 한 달 정도의 짧은 이야기지만, 기차 밖 추운 풍경으로 양차 세계대전과 제국이 끝나가는 것을 아스라이 보여준다. 무슈 구스타브의 인생은 유럽의 흥망성쇠를 말한다. 호텔의 최전성기는 구스타브의 전성기이기도 했고, 주브로브카 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사라진 날, 구스타브 역시 죽고 만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미감에 가려져 각본이 생각보다 이야기되지 못하고 있는 훌륭한 영화다. 웨스 앤더슨 특유의 정서와 스토리텔링으로 가보지 않은 당시를 함께 향수하게 된다. 최근 <프렌치 디스페치>, <애스터로이드 시티>까지 예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점점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 앞으로의 작품이 더욱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