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 아워스> 속 빈티지 공간 탐구
스티븐 달드리는 영국의 극연출가이자 영화감독으로 그는 첫 영화 데뷔작 <빌리엘리어트>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그럴까. 그의 영화에는 영국스러운 문화와 정서를 담고 있다. <빌리 엘리어트>에서는 영국의 광부 파업을, <디 아워스>에서는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보여준다. <디 아워스>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파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장면 때문에 당시 영화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여인의 세월이 너무나 가여워서 함께 가라앉는 것 같았다.
<디 아워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Mrs. Dalloway)」을 매개로 세 여인의 삶을 연결하고 있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한창 집필 중인 1923년의 버지니아 울프,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있는 로라 브라운, 그리고 소설 「댈러웨이 부인」 속 하루를 살고 있는 것 같은 2001년의 클라리사 본. 각각의 시대와 공간에서의 세 여인의 이야기는 교차하며 전개된다. 그녀들이 살고 있는 시공간은 달라도 그 안의 숨 막히는 삶은 어쩐지 닮아있다.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는 하루하루에 갑갑함을 느끼지만 이 권태의 끝은 없어 보인다.
영화 '디 아워스' 속 빈티지 공간 탐구
1. 1920년대, 버지니아 울프
2. 1950년대, 로라 브라운
3. 2000년대, 클라리사 보건
<디 아워스(The Hours)>에서는 세 여인이 누군가의 파티를 준비하는 하루를 보여준다. 버지니아 울프는 언니와 조카들을 위한 파티를, 로라 브라운은 아들과 함께 남편의 생일 파티를, 클라리사 본은 옛 연인이자 오랜 친구인 리처드의 문학수상 기념 파티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녀들을 이어주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 속 이야기 역시 남편의 파티를 준비하고 주최하는 하루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파티, 시대가 달라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 여성들의 공허함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역)는 우울증과 여러 번의 자살 시도로 결국 런던에서의 삶을 (강제적으로) 청산한 뒤, 교외 시골에서 요양하며 글 쓰는 삶을 살고 있다. 당시 그녀는 소설「댈러웨이 부인」을 한창 집필 중으로, 정신 질환과 싸우며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세상과의 관계를 탐구한다. 살림을 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에서 담배를 피우며 글쓰기를 할 수 있는 100년 전 영국이라는 시대에서 어쩌면 너무나 운이 좋은 여인이지만, 그녀는 늘 죽음을 생각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공간은 고풍스러운 영국의 시골집으로, 그 시대의 우아함과 동시에 울프의 내면적 혼란을 반영한다. 이 공간은 고요하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띠며, 그녀의 복잡한 정신 상태를 상징하는 듯하다. 플라워 패턴의 원피스와 페미닌 한 커튼과 카펫이 영국 시골의 평범한 공간처럼 보이다가도, 묵직한 가구와 어두운 실내가 이곳은 버지니아 울프의 공간이라고 재차 설명해 주는 것 같다. 그녀는 드넓은 시골 생활에 오히려 갑갑함을 느끼고 런던의 거친 도시 속 삶을 갈망한다. 문득 런던행 기차표를 끊고, 플랫폼에서 멍하니 기다리지만, 남편 레너드에게 발견되어 함께 돌아온다. 버지니아를 위해 출판사를 차리고 시골에 내려와 살 정도로 남편 레너드는 그 누구보다 그녀를 아꼈다. 그러나 둘의 뒷모습은 어딘가 쓸쓸하다.
영화 속 버지니아 울프는 내내 댈러웨이 부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지만, 소설 속 댈러웨이 부인은 살려두기로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시공간으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1951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주부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 역)은 외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가정에서 살고 있다. 아내를 위해 꽃을 사 오는 남편과 아빠를 위해 함께 케이크를 만들어주는 귀여운 아들, 뱃속의 아이까지 임신하고 있다. 로라의 하루는 남편을 위한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것이다.
로라 브라운의 집은 밝고 정돈된 미국 중산층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처럼 이 공간은 놀랍도록 정적이라 보고만 있어도 질식할 것 같다. (나는 영화 속 세 여인들의 삶 중 자살한 버지니아 울프보다 로라 브라운의 인생이 보기에 가장 힘들었다.) 이 시대의 빈티지 인테리어는 너무나 아름다운 동시에 당시의 사회적 규범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며, 로라의 내면적 갈등을 부각시킨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억압된 감정과 불만이 가득한 것처럼.
로라의 우울에는 결정적인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 가정적인 남편과 귀여운 아들까지 너무나 화목해 보이는 가정의 울타리 안에 있다. 그러나 그녀는 전리품으로 존재하는 여성으로서 삶에 숨 막혀하며 외톨이처럼 소외된 삶에 끊임없이 자살충동을 느꼈다. 로라가 침대에 옆으로 누워 어딘가를 바라본다. 시대를 넘어서 버지니아 울프 역시 숲 속 땅에서 옆으로 누워 어딘가를 바라본다. 두 여인들은 마치 시대를 넘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것 같다. 물이 차올라 수중으로 잠겨버리고 싶어 하는 충동을 느끼며.
로라는 내내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읽다가, 결국 덮는다. 결말까지 모두 읽었던 걸까. 그녀는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은 결국 살려둔 것처럼. 그래서 가족으로부터 도망친다. 로라는 감히 용서를 바라지도 않는다. 죽지 않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시공간은 마지막 여인 클라리사 본에게로 옮겨간다. 2001년 뉴욕에서 성공한 편집자 클라리사 본(메릴 스트립 역)은 옛 연인이자 오랜 친구 리처드의 문학 수상 파티를 준비한다. 가장 현대적인 시공간에 있지만, 그녀의 행동과 말투는 모두 소설 속 「댈러웨이 부인」의 하루와 닮아있다.
클라리사 본의 아파트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공간이다. 리처드의 아파트는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공간이다. 두 공간 모두 성공한 삶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그들의 감정적 고립과 복잡한 관계를 드러낸다. 현대적인 인테리어 속에서도 그들은 과거의 그림자와 현재의 문제를 직면하며 살아간다.
리처드는 에이즈로 고통받는 시인이며, 클라리사는 그에게 너무나 헌신적인 친구다. 동시에 리처드는 50년 전 로라에게 버림받은 아들이기도 하다. 영화 속 세 여인은 각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단 한 번도 함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점에서 그들은 옅은 실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클라리사는 리처드를 간병하며, 그를 끝내 놓아주지 못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앞선 두 여인들처럼 그녀 역시 감옥 속에 갇혀, 벽에 부딪히는 상태가 영원히 반복되는 것 같다. 리처드는 이제 삶의 의미를 잃었다.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 소설 속 셉티모어처럼 리처드 역시 창밖으로 몸을 내던져 자살한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디 아워스>는 그 단어의 뜻처럼 시공간을 넘나들며 세 여인의 고독한 세월을 촘촘하게 엮어낸다. 때로는 나와 비슷한 생각, 비슷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세 여인의 삶은 다른 듯 닮아있고, 수많은 여성이 이러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클라리사는 거추장스러운 옷과 액세서리를 빼고 편안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스탠드 조명을 끄고, 하루의 마무리를 한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삶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면 평화를 찾을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