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기획의도
나는 도쿄에서 12년간 거주하며 오랜 시간 상업공간 디자이너로 일했다. 매일같이 도면을 그려댔고, 시공업자들과 실랑이를 이어가는 일에 익숙해 있었다. 작업물들이 잡지에 실리거나 주목을 받기도 하면서 한동안 쉴 새 없이 일했던 것 같다. 퇴근하고도 일정이 비면 지친 몸을 이끌고 핫플을 찾아다녔고, 휴일이면 집에 있기보다는 친구들과 어디든 나가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심신이 지쳐 쉴 곳이 필요해도 집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한다는 선택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면 집에 대한 환상은 가지기 어렵다. 집 계약이 끝날 때가 다가오면 갱신을 하거나 이사를 하거나 하는 양자택일의 선택지만 있으니까.
3년 전 결혼을 결심하고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 비로소 집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30대 중반에 들어서서 이제야 내 집 마련에 대해 생각하는 건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불안해졌다. 하지만 이내 시기는 상관없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든 없든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젊은 세대들이 집 사는 것을 포기한 최초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하며 유목민의 생활을 당연하게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에게 집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나 또한 그러했고.
나는 일본에서 상업 공간만 전문으로 작업했던 공간 디자이너였다. 주거 공간에 대해서는 신입의 마음으로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동네의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살아갈 동네를 정하고, 집을 고르고, 개조하고, 살아가면서 나의 취향대로 가꾸고 돌보는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오롯이 나를 위한 기록.
나는 평범한 아파트가 아닌 오래된 구옥 전셋집에 들어가 그곳을 개조해서 살기로 했다. 남들의 오지랖과 눈치 때문에 꿈꿔왔던 아날로그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이 진행됨에 따라 많은 현실에 부딪혔고 여러 경험을 하고 나니, 나의 경험들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 같았다.
낡은 집을 고쳐 나만의 페이스대로 천천히 빈티지 라이프를 즐기며 살아가려는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살아라'같은 가르침을 전수하는 이야기보다는 '이런 식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라고 천천히 손 내미는 그런 이야기를.
블로그에 써볼까도 유튜브에 올려볼까도 고민했지만 뭔가 존재하는 물건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그렇게 생각해낸 게 독립 출판.
나도 참 징하다. 성정이 의지박약인 나는 독립출판을 결심하고 미루고 미루다 몇년이 흘렀다.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라는 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밑져야 본전이다. 차라리 짧고 나쁜 책을 쓰겠다.' 너무 완벽한 책을 내려고 하면 멈춰버린다는 것이다. 그래. 죽이되든 밥이되든 일단 시작해보자! 이것은 여기저기 소문을 냄으로서 목표를 잡고 작업을 이어가기 위한 샤라웃(Shout Out)이 되겠다.